필자는 교차편년으로 설정된 기존의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연대와 출현 과정에 오류가 있음 을 발견하였다. 이에 방사성탄소연대를 이용해 기존의 견해와 다른 새로운 연대 안과 출현과정을 제 시하고자 하였다. 또한 현재 학계에 뚜렷한 견해가 없는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성격에 대하여도 새로 운 시각으로 접근하여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는 BC 12세기 무렵, 비파형동검과 동시에 출현하였으며, 이후 후기 청동기시 대 송국리문화, 역삼동후기문화, 검단리문화 등과 기원전 2세기 무렵까지 장기간에 걸쳐 공존하였다.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문화 집단은 요동지역‘정치집단’의 이주민이 아니라 청동기시대 조기부터 형성 되어 있던‘요동-서북한-남한’의 네트워크를 통해 남한에 들어온‘청동장인집단’이다. 이들이 남겨 놓은 유적 중‘수석리유적’,‘교성리유적’등은 당시 청동의 원광석을 채광·선광했던 장소로 추정 되며,‘동학산유적’,‘방동리유적’등은 청동을 제련·주조 했던 장소로 추정된다. 이‘청동장인집단’은 재지 사회의 지배층에게 비파형동검 등의 청동기를 제작·공급해서 생계를 유지하던 기술장인들이었으나 점차 정치력을 갖게 되면서 세형동검단계에 이르러서는 당시 사회의 지 배층인‘제사장’이되고, 결국 삼한 사회의 최상위 지배층으로 성장한다.
한반도의 석기-금속기 전환 과정은 청동기시대 중기 후반부터 원형점토대토기 문화를 거쳐, 삼각형점 토대토기 문화까지로 말해지고 있다. 이 과정 중에서, 위신재는 석기에서 청동기로, 실용기는 석기에서 철기로 대체되었다고 이야기되며, 이러한 인식에는 청동기시대 중기부터 삼각형점토대토기 문화까지 동일한 문화 계통, 생업경제를 영위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 고고학적 양상은 그리 명확하지 않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구의 재질 변화는, 기존의 재질은 점차 줄어들고 새로운 재질이 점차 증가하는 ‘과도기’ 또는‘이행기’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재질이 완전히 정착되는 흐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석기에서 철기로의 변화는 그러하지 않다. 철기가 등장하기까지는 수백 년간의 시간적 공백이 존재한다. 또한 원형점토대토기 문화는 토착의 청동기시대 중기 문화와는 계통을 달리하는 것으로, 이후 삼각형점토대토기 문화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석기에서 철기로의 전환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원형점토대토기 문화이다. 즉 청동기시대 중기 에서 원형점토대토기 문화를‘석기의 감소’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청동기시대 중기의 석기 기종과 수량의 풍부함과 대비되는 현상으로 원형점토대토기 문화의 석기 양상을 확인하고 그 배경을 검토해야 한다. 본고에서는 호서지방 원형점토대토기 문화의 석기 조성을 검토하고, 석기 기종 구성의 편중은 목기의 사용과 일회적인 석기 제작·사용 방식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