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一蠹 鄭汝昌(1450-1504)의 삶과 학문적 특징이 무엇이며 그의 생활 및 강학 공간인 지리산권, 그 가운데서도 하동의 악양정과 함양의 남계서원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것을 따진 것이다. 정여창에게 있어 하동과 함양은 대표적인 삶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하동은 악양정을, 함양은 남계서원을 중심으로 살폈다. 악양정은 그가 은거하며 심성수양과 강학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곳이라는 측면에서, 남계서원은 정여창 사후 이곳을 중심으로 추모사업이 적극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정여창은 김종직 문하에서 『소학』을 중심으로 한 실천유학을 배워 김굉필과 함께 도학의 선구가 되었다. 하동의 악양정은 중요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는데 李澄이 그린 「花開縣舊莊圖」나 한말 정재규의 「岳陽亭會遊記」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함양의 남계서원은 북인, 남인, 노론의 장악이라는 정치적 변화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그 중심에는 정여창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굳건히 유지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수많은 시문이 창작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