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슬러가(家)는 한국 상황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오늘날 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프랜시스 킨슬러(Francis Kinsler)는 미북 장로교 선교사(1928-1970)로 일제 강점기에 학교와 교회를 섬기면서 빈곤 아동들을 대상으로 성경구락부(Bible Club) 운동을 하였다. 그는 해방 이후 교회와 학교 재건, 한국전쟁 시 피난민 구호사업을 하였다. 아내 도로시 킨슬러(Dorothy Kinsler)는 장애아동과 고아들을 위하여 사역했다. 아들 아서 킨슬러(Arthur Kinsler)는 미남장로교 선교사 (1972-2011)로 성경구락부, 숭실대, 등대복지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아서 부부는 1998년 북한 방문을 계기로, 특별히 아내 수 킨슬러(Sue Kinsler)는 킨슬러 재단 대표로 민족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이들의 선교는 ‘현지인 중심적 선교’로 요약된다. 킨슬러가의 선교사역 은 철저히 기독교 정신에 토대를 두고, 현지인의 필요에 부합하는 선교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현지인 중심의 성육신적 정신이 제대로 이양되지 못한 면이 있다. 한국의 해외 선교는 킨슬러가의 선교를 모델로 삼아 현지화 선교와 전략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