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는 제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대체로 동란의 시대에 자생적으로 형성 된 것이라 본질상 ‘탈중심적’이고 ‘반사회적’인 성향을 지닌다. 본고는 협의 서사가 ‘탈중심’적이고 ‘반사회’적 성질을 보유하고 있는 사기의 「자객열전」과 「유협열전」 의 협의 서사를 궁구한다. 상기한 협의 고사에서 인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행동의 연쇄를 살피면, 혹은 ‘(조건 걸기)–주고–받고–답례하기’라는 조건부 증여가 서사를 끌어가고 혹은 ‘주고-받기’라는 순수 증여가 반복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답례’의 발생 여부에 주의하여 ‘주고–받기’의 과정에 천착해서 조건부 증여와 순수 증여가 어떻게 서술되어 의미를 형성하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상하이는 국제도시로 세계의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중국 그 어느 도시보다 지식인들이 집결하는 도시로 성장하였다. 상하이의 진보적 지식인은 국제정세 속에 서 중국이 처한 상황을 깨닫게 되었고, 서구 열강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자연스럽게 상무정 신을 고취하였다. 많은 지식인은 중국 역사와 민간의 전통 속에서 협객을 발굴하였으며 그들 의 상무정신을 찬양하였다. 한편, 상하이는 노동 이주민의 도시였다. 세계대전 후 서구의 자 본이 상하이에 몰리게 되면서 국제도시 상하이는 중국 최대의 상공업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이에 상하이에는 다양한 국가, 인종, 지역민이 모여들었다. 이주민들은 그들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업종별, 출신 지역별로 다양한 조직을 결성하였고, 이들 조직은 조직의 결속을 위해 민 간의 협의정신을 적극 수용하였다. 결론적으로 근대시기 상하이에는 위로는 상류층 지식인의 엘리트문화에서 아래로는 하층 노동자들의 하위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협의정신을 찬양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는 근대시기 상하이가 지식과 지식인, 자본과 노동자를 끌어들이는 동북아해역의 인문네트워크 중심도시로 성장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1920-30년대 상하이에 협의서사가 흥성하게 된 주요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