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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제주도(濟州島)는 바다로 고립된 절해고도(絶海孤島)로서 고 려 후기부터 조선 말기까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유형(流刑)에 처해졌던 유배지였다. 제주도는 원(元)에 의해 점령된 후 100여 년 동안 이민족의 유배지였던 역사적 사실도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당론과 정치 적으로 최고형을 받은 유형수들을 최고 멀리 떨어져 있는 제주 도를 유배지로 선택했다. 유배되어온 사람들은 정치인, 왕족, 문인, 관리, 학자를 비롯하여 경중(輕重)의 범죄자들을 정치적 으로 격리하기 위한 최적지의 유배지였다. 주로 외부와의 차단 형벌인 집 주위 울타리에 가시를 둘러쳐 그 안에 살게 하는 위 리안치(圍籬安置)와 절해고도에 살게 하는 절도안치(絶島安置) 의 형벌에 처해졌는데 제주도 유배는 외부와 단절된 절도안치 에 해당하는 최고의 무거운 형벌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에 기사환국(己巳換局)과 여러 차례 어려운 일들을 걸쳐간 숙종시대 문인 북헌(北軒) 김춘택(金春 澤)의 제주 유배지에서의 후학 양성, 그리고 유배지에 남긴 흔 적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북헌 김춘택은 숙종의 비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조카이자 구 운몽(九雲夢),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를 지은 김만중(金萬重)의 종손자이다. 어려서부터 김만중에게서 수학하였고 재질이 탁월 하여 김수항(金壽恒)의 탄복을 받기도 하였다. 정쟁 때마다 항 상 서인 · 노론의 중심가문에 속해 있어 힘든 고초를 겪었다. 제주도 유배는 1706(숙종32) 9월에 제주로 유배되어 1710년 (숙종36) 임피(臨陂) 소안역(蘇安驛)으로 이배되면서 제주를 떠 났다. 제주에 유배되는 동안 부친 김진구(金鎭龜)가 제주유배 시 거주했던 곳에서 거주하며 부친이 가르쳤던 제주 유생을 가 르쳐 과거에 급제하는 성과를 낳았다. 학식과 지식이 불모지였던 제주에서 후학양성 측면에서 재조명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고 판단된다. 그간 많은 사람이 북헌(北軒)에 대해 논하였으나 제한적이나마 제주에 남긴 북헌의 흔적을 고찰해보고자 하며 후학들의 남긴 문학적 자료도 연구가 필요할 것이나 워낙 파편 적이고 제한된 고증 자료로 인해 어려움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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