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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爲己之學이라는 용어는 爲人之學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쓰인다. 위인지학은 출세가 목적인 반면 위기지학은 聖人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남명이 위기지학을 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면 이는 출사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는 그가 강조했던 엄정한 출처관과도 직결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명이 이처럼 중대한 의미가 있는 위기지학으로 학문의 방향을 전변한 시기가 과연 언제였던가 하는 점을 「書圭菴所贈大學冊衣下」를 중심으로 논증해 보았다. 그 결과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남명이 위기지학으로 학문의 방향을 전환한 것은 처음으로『성리대전』을 읽으면서 허형의 언급을 접하고 크게 자극을 받은 것에 기인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둘째, 다만 이 시기가 25세냐, 26세냐, 31세냐의 문제인데, 이는 요컨대 행장과 연보의 말이 본인의 기록과 어긋날 때 어느 것을 근거로 삼을 것이냐의 문제라는 점에서, 행장을 바탕으로 제기된 25세설과 26세설은 남명이 기록한 「書圭菴所贈大學冊衣下」의 31세설에 대해 설득력을 잃는다. 셋째, 「書圭菴所贈大學冊衣下」의 ‘已三十餘矣’라는 말이 科擧에 여러 번 낙방하고 난 뒤라는 곳에만 연결되고, 그 뒤 『성리대전』을 본 것과는 연결시켜 볼 수 없다는 견해는, 「書圭菴所贈大學冊衣下」라는 글을 남명이 기록으로 남긴 이유와 관련시켜 이해하면, 당연히 그 뒤에 『성리대전』을 가져다 읽었다고 함이 순리라는 점에서 역시 설득력을 잃는다. 이 문제와 관련한 논의를 통해서 원전비평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고, 특히 2차 자료에 근거한 기록이 아무리 오래 되었다고 하더라도 1차 자료의 기록과 어긋날 경우에는 1차 자료에 따라 마땅히 수정되어야 함을 확인하 였다. 더구나 남명의 위기지학으로의 전변 시기에 대해서 필자의 견해를 참조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중국의 熊禮滙 교수도 필자와 같은 결론을 낸 것에서도 31세설의 정당함이 충분히 드러났다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