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청련사는 2010년 이전까지 서울 하왕십리 무학봉 바위절벽 아래에 있던 사찰이다. 태고종에 속한 청련사는 조계종과 소유권 분쟁 과정에서 조계종의 승려가 하왕십리의 사찰 구역을 건설업자에게 매각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양주로 이전 건립하게 되었다.
근래까지 안정사라고도 불렸던 청련사의 역사는 1940년대에 만들어진 「청 련사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지에 수록된 조선시대의 상량문 등의 기록에 따르면 청련사는 신라 흥덕왕대에 창건되었다고도 하고, 조선초기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하였다. 흥덕왕대 창건설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는 당시가 중국으로부터 선(禪)이 전래된 시기였다는 점에 주목하여 서술하였고, 조선초기 창건설의 배경으로는 무학대사가 종남산 서쪽 계곡에 있던 사찰을 동쪽으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서술하였다.
청련사는 조선시대에 다섯 번의 중창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 두 번의 중창이 있었다. 이때까지의 중창은 홍수 혹은 화재로 무너진 건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2010년 여덟 번째의 중창은 사찰 부지를 옮기는 대작불사였다. 이때의 중창은 주지로 있던 백우대사가 주도하였다. 이로써 청련사는 천년 동안 이어온 전통을 양주 계명산 자락에서 다시 계승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