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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일제식민지책임의 국제법적 검토 KCI 등재

International Legal Review on Japan's Claim to Dokdo and its Colonial Responsibility

  • 언어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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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연구 (The Journal of Dokdo)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Dokdo Research Institute)
초록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1952년 이래 한국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으며, 고유영토론, 선점론 그리고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을 근거로 한 3대 권원에 대한 주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오고 있다.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영유권은 17세기 중반에 확립되었고, 1905년 각의 결정을 통해 재확인되었으며,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 의해 국제적으로 공인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은 시계열상 1905년 선점론에서 시작하여 1952년 고유영토론을 경유한 뒤 최근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으로 무게 중심을 전환하는 과정속에서, 국제법상 요건의 충족 여부 문제로 환치 및 축소, 역사적 권원으로서의 사실에 대한 왜곡에 더하여 국제법상 법리의 정합성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근본적으로 일제식민주의의 침략이라는 본질을 은폐하고자 하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일본의 주장이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를 바탕으로 이미 결정했거나 실행한 불법행위를 사후적으로 합법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자 명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요컨대,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은 메이지 유신이래 제국 형성을 위한 대외팽창적 침략정책과 연동됨으로써 1875년 운요호사건,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등 동아시아 전역에 걸친 일본의 침략전쟁 가운데 한국의 독도주권에 대한 침탈을 무주지선점이란 이름으로 합법화한 것이다. 그러나, 운요호사건을 통해 1876년 2월 26일 근대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에는 국경획정문제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한 태정관(太政官)의 1877년 3월 29일 결정으로 ‘독도 외 1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 외무성의 홈페이지에는 이러한 메이지 정부의 중대한 결정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1962년 7월 13일 한국에 보내온 일본의 의견서에는 오히려 “메이지 초기에도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를 일본의 고유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선점론과 고유영토론의 이러한 상충적 한계를 전제로 최근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영유권 주장의 핵심은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으로, 그 기초과정에서 독도의 이름이 누락되었으나 일본이 제공한 정보에 입각한 딘 러스크(Dean Rusk) 서한을 전제로 실질적으로 일본 영토로 남게 되었다는 논거 역시 일제식민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제기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의 성격이 징벌적 조약에서 냉전을 전제로 한 반공조약으로 전환됨으로써 1905년의 가쓰라-태프트밀약으로 상징되는 식민주의를 기저에 둔 독도주권 침탈행위의 합법화로 이에 대한 국제법적 불법성과 문제점의 규명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일본정부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관련 조약의 경우 무력을 사용한 강박 하에 체결된 조약으로서 법적 효력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제식민지책임의 면탈을 위해 ‘당시의 법’에서는 합법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반면, 한일간 협약체제를 일탈하여 주장하고 있는 독도영유권은 선점론에서 시작하여 고유영토론을 경유한 뒤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으로 무게중심을 전환해 옴으로써 국제법상 시제법의 적용에 있어서도 상충되는 법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전제에서 일본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논거에 대한 비판에 주목하게 된다. 고유영토론의 실체에 대한 부정론과 그 논거로서 인용되는 1696년 쓰시마번의 도해금지령 및 메이지 정부의 태정관지령을 비롯하여,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공포 및 관보 게재에 상충되는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은 국제법적 효력이 부재하며,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의 논거로 제기되는 딘 러스크 서한 역시 1905년 일본의 독도편입 이후 일본이 제공한 제한된 정보에 입각하고 있는 점에서 법리적으로 무효인 것이다. 더욱이 와다 하루키(和田春樹)의 ‘일본의 독도포기론’, 세리타 겐타로(芹田健太郎)의 ‘한국의 독도개방론’, 히로세 요시오(広瀬善男)의 ‘비식민지화 법리론’ 등은 모두 일제식민지책임을 전제로 한국의 독도주권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반면, 독도 주변의 한일공동조업과 독도에 대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기점의 불용(不容)을 동일하게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일제식민지책임으로서의 독도주권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일본의 이익에 대한 사전적 보장을 전제로 하고 있는 해결방안의 타당성은 의문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제에서 와다 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한국의 1948년 쓰시마 영유주장 철회’와 동일한 일본의 조치가 필요하며,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식민지배가 국제법상 합법이라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아라이 신이치 교수가 제시한 바와 같이 일본이 한국을 강제병합해 간 시기의 국제법은 국가실행을 중시하는 법실증주의가 주류였던 19세기의 국제법과 달리, 보편적 국제규범에 입각하여 구미의 국제법에도 법의 규범성을 둘러싼 새로운 변화가 제시되던 시기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일제식민주의 침탈사의 연장선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은 ‘폭력과 탐욕’에 의해 약탈한 영토의 포기라는 가장 기본적인 식민제국주의의 역사적 청산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일본은 21세기 동북아평화공동체 구축을 위한 진정한 국제법적 책무를 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Japan began claiming territorial sovereignty over Dokdo since 1952 and has since strengthened its argument on the three grounds: inherent territory from the 17th century, the doctrine of terra nullius and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In other words, it argues that territorial sovereignty was established in the mid-17th century, reconfirmed with the Cabinet decision of 1905 to incorporate Dokdo, which was internationally recognized through the Peace Treaty.
In the course of Japan‘s changing focus in its assertion over Dokdo―from acquisition of the land in 1905, its statement made in 1952 claiming Dokdo being the inherent territory of Japan from 17th century, to recently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it fundamentally reveals limitations in time series. By using the ground of occupancy, it changes and minimizes the issue into an international legal condition; its claim of Dokdo being the inherent territory of Japan distorts historical facts; it attempts to conceal its colonial aggression by arbitrarily interpreting conformity with the international legal principles. This series of assertions are a mere justification used to legitimize the assertions and illegal acts that have already been decided or executed based on the dynamics of international politics.
In essence, as its claim to sovereignty over Dokdo was integrated with its aggressive expansionist policies to build an empire since the Meiji Restoration, it was intended to legitimize its claim under the doctrine of terra nullius amid wars of aggression in East Asia including the Unyoho Incident of 1875, the Sino-Japanese War of 1894 and the Russo-Japanese War of 1904. The unequal treaty signed as a result of the incident between modern Joseon and Japan on February 26, 1876, known as the Treaty of Ganghwa Island, did not state territorial demarcation. The order of Dajokan, the Grand Council of State, issued to complement the treaty on March 29, 1877 stated ‘Takeshima and the other island’ did not belong to Japan. This significant decision of the Meiji government should be noted because the order cannot be found on the website of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because the letter sent by Japan to Korea on July 13, 1962 made a contradictory argument that the early Meiji government recognized Takeshima as its territory. Under the premise of contradictory limitations of arguments for acquisition of the land without sovereignty and that Dokdo was the Japanese territory from the Meiji government, the gist of the assertion Japan recently makes is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and Dean Rusk letter: the name of Dokdo was omitted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e treaty but the island remained the territory of Japan as evidenced by the Dean Rusk letter, which was written based on the information given by Japan.
It should be noted again that the basis of such argument is in line with Japanese colonialism. As the nature of the San Francisco Treaty of 1951 changed from a punitive treaty to an anti-communist treaty based on the Cold War, Japan’s claim to Dokdo is being legitimized based on colonialism as symbolized by the secret Taft-Katsura Agreement of 1905, and this calls for a review on illegality under international law. In other words, Japan strongly argues its acts were legal under the law at that time in an effort to be exonerated from its colonial responsibilities even when the Japan-Korea Annexation Treaty of 1910 holds no legal effects as the treaty was forcibly signed. In contrast, it claims sovereignty over Dokdo, deviating from the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by changing the ground of argument from acquisition under terra nullius, being the inherent territory of Japan, to the San Francisco Treaty. Such arguments and their grounds are contradictory in applying the international intertemporal law.
Against this backdrop, it is noteworthy to review the criticism on Japan’s claim to Dokdo sovereignty raised in the Japanese academia. The bases for denying the claim that Dokdo belonged to Japan from the early Meiji era include the border crossing prohibition on Tsushima domain of 1696 and the order of the Grand Council of State. Shimane Prefecture’s incorporation of Dokdo, which is in contradiction to the Korean Empire’s edict no. 41 published in the official gazette, lacks international legal effect. The Dean Rusk letter used to support the ground of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is also null under the legal principles as the document was based on the limited information given by Japan after it incorporated Dokdo in 1905.
Haruki Wada’s proposal for Japan to give up Dokdo, Gentaro Serita’s theory of opening up Dokdo and Yoshio Hirose’s legal principles on decolonization recognize Korea’s sovereignty over Dokdo and Japanese colonial responsibilitiese while they uniformly suggest that it is not acceptable to use Dokdo, an islet, in drawing the baseline for the exclusive economic zone (EEZ) and that joint fishing around the islet be allowed. It is natural to question the legitimacy of such solutions which intend to assure national interests even when they commonly recognize Dokdo and their colonial responsibilities. Under this premise, it is necessary for Japan to have the equal action as Korea’s withdrawal of sovereignty over Tsushima in 1948, as proposed by Haruki Wada.
Regarding the argument that colonial rule was legal before World War I, as Shinichi Arai pointed out, international law which was effective when Japan forcibly annexed Korea was undergoing a new change in the West surrounding the norms of international law, which saw a depart from the 19th century international law where legal positivism ruled. Recognizing this change, Japan’s claim to sovereignty over Dokdo asserted in line with Japanese colonialist history runs counter to the most basic undoing of colonial imperialism, that is, abandoning the land exploited by greed and violence. As such, Japan is left with responsibilities to fulfill under international law to build the Northeast Asian peace community in the 21st century.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일본의 독도에 대한 고유영토론의 검토
 3. 무주지선점론에 입각한 독도영유권의 검토
 4.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상 독도영유권 주장의 검토
 5.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한 시제법적 검토
 6. 일제식민지책임 관련 독도주권 연구의 검토
 7. 결론
 참고문헌
저자
  • 도시환(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Doh See-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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