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敎會史學會誌 제50집 (p.319-362)

배은희 목사의 해방 이후 정치활동 연구

Study on Political Activities of Rev. Bae Eun Hee After Liberation
키워드 :
배은희,이승만,독립촉성국민회,민족대표자대회,총선거,Bae Eun Hee,Rhee Seung Man,National Society for the Rapid Realization of Independence,National Representative Conference,General Election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해방이전 배은희 목사의 독립운동
Ⅲ. 해방 이후 전주에서의 활동과 독촉중앙협의회 지부들의조직
  1. 해방 후 전주의 자치위원회
  2. 독촉중협 전북 지부조직
Ⅳ. 독촉국민회 조직 과정 참여와 활동
  1. 독촉국민회 조직 과정 참여
  2. 독립운동으로서의 반탁운동 전개
  3. 독촉국민회 전국지부장회의와 장로교 총회장 선출
Ⅴ. 이승만 박사의 방미와 배은희 목사 감금 테러 사건
Ⅵ. 제2차 미소공동위 개최와 반탁운동전개와 민족대표자 대회 조직
  1. 제2차 미소공동위 개최와 반탁운동전개
  2. 한국민족대표자대회 조직과 총선거결정
Ⅶ. 총선을 통한 정부 수립운동
Ⅷ. 나가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국문초록

초록

배은희 목사는 대한제국 말기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숭덕학교를 운영하다 한일합병당시에 투옥되는 경험을 하였다. 이 투옥의 경험이 그의 독립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그는 3.1운동에 가담하였고 1919년 10월에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장로교 목회자 중심의 독립운동 조직인 대한국민회에 평의원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1921년부터 전주 서문외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유치원, 숭덕학교, 여성야학을 운영하였고 1927년 전주 신간회 회장을 하였으며, 1929년부터는 독신자선교회와 협동조합운동을 통해 농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반대하다 투옥당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그는 전주에서 임시시국대책위원회와 전주청년단을 조직하여 치안유지활동을 하였다. 그는 12월 28일 이후 반탁운동이 벌어지자 전주를 중심으로 이승만이 조직했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의 지부들을 조직하여 반탁운동에 참여하였고, 1946년 1월 13일에 전북지부를 조직하였다. 전북대표로 활동하며 2월 8일에 독촉국민회가 조직될 때 5명의 고문 아래 있는 18명으로 구성된 참여의 구성원이 되었다. 그는 독촉국민회에 가담한 이후에 이승만의 반탁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고 1947년 10월에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1947년 7월에는 이승만의 승인을 받아 민족대표자대회를 조직하였고 김구의 비상국민회의와 통합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비상국민회의는 임정의 법통론을 주장하였던 반면에 민족대표자회의는 총선거를 통한 정부수립을 주장하여 통합에 실패하였다. 통합에 난항을 겪자 민족대표자대회와 독촉국민회가 연합하여 총선거를 통한 정부수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나섰고, 배은희는 총선거 실시를 위한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배은희는 총선거를 통한 정부수립운동을 추진했던 이승만의 정책에 독촉국민회와 민족대표자대회를 통해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목회자였다.
Rev. Bae Eun Hee converted to Christianity at the end of the Korean Empire, and he was imprisoned at the time of the Korea-Japan merger when he was operating Sungdeuk School. This imprisonment became the seed of his independence movement. He participated in the 3.1 movement and participated as a council member in the Korean National Assembly, an independence movement organization centered on Presbyterian pastors who supported the provisional government in October 1919. Since 1921, he has been working as a church minister in Seomun church. He has been managing a kindergarten, Sungdeuk school, and female night school in the church. He has been president of Jeonju ShinganHoe in 1927. From 1929, it tried to solve the problem of rural area through the single person mission society and cooperative movement. When the Japanese forced the Shinto shrine, he was imprisoned because he refused it.
After the liberation, he organized a temporary current situation measure council and the Jeonju youth group in Jeonju to conduct policing. When the anti-trusteeship movement took place on December 28, he participated in it through the local branches of the Central Council for Rapid Realization of Independence organized by Rhee Seung Man. On January 13, 1946, he organized the Jeonbuk Province branch. As a representative of Jeonbuk Province, he became a member of the 18-member group under the five advisors when the National Society for the Rapid Realization of Independence (NSRRI) was organized on February 8. He actively supported the activities of Rhee Seung Man after he participated in it and was elected vice-president in October 1947.
In July 1947, he organized the National Representative Conference(NRC) with the approval of Rhee Seung Man and tried to integrate Kim Ku's Emergency National Assembly(ENA) with it. However, while ENA insisted on the Cause of Provisional Government, because NRC insisted on the establishment of the government through general election, the union failed. As a result of the difficulties in integration, NRC and NSRRRI actively promoted the establishment of a government through general elections in league. Bae Eun Hee was the central figure for the general election. Through NRC and NSRRI he was a pastor who was most actively supporting the policy of Rhee Seung Man, which was promoted in the government-building movement through the general e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