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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202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박생광이 1977년 이후 새롭게 제시한 다양한 소재 중 민족 수난의 역사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을 분석하고 그 속에 담긴 조형성, 색채, 기법 등을 통해 한국화의 현대화 과정 을 살펴보는 데 있다. 1970년대 후반까지 한국 채색화는 일제 강점기 때 유입되어 성행한 일본 화풍의 잔재로 인식되어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으 로 일부 작가들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1980년대 한국 사회는 세계로의 개방화가 시작되면서 민족 정체성을 찾으려는 국학 운동이 시작되었고 미술계도 이에 발 맞춰 변화하기 시작했다. 한국화의 채색 분야도 일본 화풍의 아류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민족 전통의 색채와 기법을 연구하 면서,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이를 계기로 일 군의 청년작가들은 과감히 장르의 한계를 넘는 독창적인 채색 화로의 변모를 꾀하였다. 1977년 이후 박생광은 이전에 사용하던 일본 화풍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미감이 서린 채색 화풍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였다. 이 시기에 보여준 그의 화풍은 전통 민화와 민속물, 무속과 무 속화, 불교와 불화, 수난의 역사적인 사건 등을 소재로 독창적 이고 혁신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작품의 구성 방법을 살펴보면 서구의 투시법과 원근법을 무 시하고 전통 민화나 불화, 무속화의 평면 조형법과 색 면 추상 법을 작품에 과감히 수용하여 새로운 화면을 창출하였다. 색채 를 살펴보면 서구의 색채 미에 경도되어 잊혀져 가던 전통 오 방색을 연구하여 작품에 과감히 사용하였다. 또한, 단청이나 불 화, 무속화에 나타나는 보색의 강렬한 대비 효과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이는 1977년 이후 박생광의 독창적인 화풍에서 중 요한 요소가 되었다. 기법적으로는 일본의 몽롱체가 유행하던 미술계의 사조를 벗어나 조선 궁중 진채 화풍을 복원하고 이를 기반으로 독자적으로 개발한 다양한 기법을 선보였다. 이 시기 박생광이 시도한 한민족의 전통적인 예술성을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들은 한국 회화사에 큰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생광은 1982년부터 이와 같은 도전적인 실험을 바탕으로 조선 말기부터 시작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으로 인해 우리 민 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를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전봉준>, 〈명성황후>가 있다. 이 작품들은 기존 의 기록물로 제작한 역사화 개념에서 벗어나 작가의 주체적 역 사 해석을 통해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당시의 사회적 화두 였던 일제 청산과 민족성 회복에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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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202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백남준의 위성아트 프로젝트 시리즈의 첫 방송인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에서 예술가, 미술관, 방송국 등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에서 실질적인 협력관계로 끌어내는 과정 에서 그의 ‘쌍방향 소통’의 개념에 대하여 실증적인 성찰을 시도한다. 백남준은 ‘TV’를 예술 매체 로 활용한 시점인 1960년대부터 ‘쌍방향 소통’의 가능성을 고민해 왔고, 디렉터이자 플레이어로 서 이러한 개념을 제시하는 퍼포먼스를 이어왔다. 이후 위성방송 시스템이 상용화로 그 개념을 실천할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이 조성되면서, 그는 스스로 플레이어 자리에서 내려와 1984년부터 2년을 주기로 위성아트 프로젝트 3부작을 제작하였다. 이러한 그의 탐구와 실험들이 위성아트 프로젝트에서 다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논리적 기반이 되었음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중 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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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202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중세 고딕 성당에서 시작된 스테인드글라스가 오늘날 중세와 비교해서 매우 다양하고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테인드 글라스’라는 명칭으로 통용되는 이유를 규명해 보는 것 이 본 연구의 목표다. 우리가 흔히 ‘스테인드글라스’라고 부르는 예술은 중세 이후 쇠퇴하였 다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동안 영국과 미국에서 리바이벌되었다. 필자는 주요 연구 대상인 잡지 『더 크래프츠맨』 1903년 3월호에 실린 프레더릭 S. 램(Frederick S. Lamb)의 「채색창」과 찰스 H. 캐핀(Charles H. Caffin)의 「장식창」을 고찰하여, 그들이 공통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의 본질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음을 밝히고, 그러한 고민의 배경에 스테인드글라스 리바이벌을 이끈 영국 미술공예운동의 이론과 이상의 영향을 확인하였다. 램과 캐핀의 논쟁은 스테인드글라스의 본질과 고유한 특성을 되살리려는 노력 을 통해 창조적 예술 매체로서 스테인드글라스의 명맥이 현재까지 이어질 수 있었음을 알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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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202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제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노예선>은 인간 경험의 극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을 포착 하는 사례다. 1840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격렬한 폭풍 속에서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이 배 에서 밖으로 던져지는 비인간적인 장면을 묘사한다. 또한 이 작품은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의 잔인성과 경제적 이익을 위한 인간 착취의 윤리적 의미에 대한 회화적 증언이다. 그러나 노 예무역의 열악한 환경은 종 호 사건은 물론 노예무역을 둘러싼 복잡한 법적 문제를 발생시 켰다. 본 연구는 <노예선>이 ‘노예제 폐지’나 ‘노예무역폐지’와 같은 사안들과 결합하는 과정 에서 파생되는 메시지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는지를 사회사적 관점에서 분석 한다. 이를 통해 노예제도에 함축된 정치경제적 맥락과 작가의 조형 의식 형성 간의 관계성 을 조명하여 터너의 작품 세계에 대한 기존의 인식론적 지형도를 확장시키는데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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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202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원대 문인서화가로 유명한 조맹부는 부친 조여은의 취향과 감식안의 영향 하에서 초기 부터 사생과 같은 사실적 기법을 깊이 탐구하였다. 중기에는 희작과 같은 북송수묵화 양식들 을 폭넓게 수용한 뒤, 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변용하고 결합시킴으로써, 사생과 묵희의 개 념을 새롭게 확장시켰다. 장난삼아 사생한다는 뜻의 ‘희위사생’론은 ‘공필사생’과 ‘묵필희작’ 이라는 이질적 기법의 집성을 통해 ‘기운’ 혹은 ‘정성(情性)’을 얻는다는 혁신론이었다. 이는 〈이양도〉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고도로 복합적이고 균형잡힌 조형세계의 또 다른 층위를 해석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이렇듯 사실적인 회화세계의 토양 속에서 조맹부는 ‘전신의 묘’를 다하지 못한 당시 사부화가들에 대한 비판의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본고는 문 인화에 사실적 화법을 접목시키려는 조맹부의 탐구와 혁신적 방법론에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원대 회화 및 그 향방을 좌우한 그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새롭게 확장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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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2023.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남한 동해안에 유입된 북한 생활쓰레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동안 북한 쓰레기가 남한에 유입된다는 사실은 해양쓰레기 실태조사 관련 연구 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환동해권 해양쓰레기 유입 등에 관한 연구에서도 주로 한국과 일본, 극동러시아 등의 유입 현황에 관한 연구는 있지만, 북 한은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본 연구는 기존의 해양학 관점이 아닌 북한학 관점에서 남한 해안에 유입된 북한 쓰레기 문제를 다루었다. 북한 생활쓰레기 중 상품포장지는 직접적으로 북한 상품 생산 현황과 브랜드 등을 알 수 있으며, 간접적으로는 북한 내 경제 상황과 상품 유통 지역망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해안 지역에서 수거한 북한제품 포장지를 살 펴보면 대부분 생산공장은 평양으로 표기되었다. 이를 통해 평양에서 생산 한 제품이 동해안 지역으로 유통됨을 알 수 있다. 또한 동해안 지역은 북 한을 대표하는 대도시인 원산, 청진, 함흥, 라선 등이 있는데, 실제로 상품 포장지에는 이 지역 생산공장이 표기되는 사례도 있었다. 김정은 집권 이 후 매년 국가적 차원에서 국가디자인전시회를 개최할 만큼 산업미술을 강 조하는데, 특히 상품의 고유한 특징을 표현하는 상표도안을 강조한다. 본 연구에서는 동해안 주요 도시에서 생산한 제품을 중심으로 같은 품목이지 만 공장별로 어떻게 상표도안이 다른지 살펴봤다. 북한 쓰레기에 대한 북 한학적 시각과 해양학적 시각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 남한에 유입되는 북 한 생활쓰레기에 대한 연구의 폭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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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2023.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연구는 미술치료에 대해 이론적, 과학적 기초를 제공해주는 정신역 동이론의 다양한 이론들과 실제 치료에 사용되는 검사방법들을 검토함으 로써 미술치료의 유효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미술치료에 대한 이론적, 과학적 근거를 검토하기 위해 문헌분석을 통한 질적 연구방법을 사용한다. 이를 위해 먼저 미술치료를 의학적 심리치료의 한 방식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주장을 검토한다. 미술치료가 과연 의학적 으로 유효한 방법인지 검토하기 위해 이론적인 근거 및 과학적 근거로 나누어 분석한다. 또한 오늘날 미술치료가 정신역동이론을 투영하는 과 학적 방식을 검토하고, 정신분석과 전이현상을 활용하는 미술치료에 대 해 살펴본다. 결론적으로, 미술치료에 대한 반대론이 심리과학과 연동된 미술치료의 이면에 대한 오해로 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미술치료는 정신 역동이론의 이론적 근거 및 그 축적된 임상결과로 인해 치료의 유효성을 입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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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2023.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에서는 국립박물관과 불교박물관들이 개최한 불교미술 전시현황을 정리하고, 대중 화에 성공했던 전시 사례로서 ‘창령사 터 나한상 전시’를 분석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불교 미술 전시의 대중화 방안을 제안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불교미술 전시는 1990년대 기획전시의 공간이 확보되고 큐레이터들의 역량이 성장한 이후 학술적으로 깊이 있는 불교미술 전시를 개최할 수 있었다. 2005년 용산 이전ㆍ개관을 기점으로 특별전시 운영시스템을 구축하여 국립박물관의 학예 연구 역량과 국 제적인 위상을 드러내는 불교미술 전시들이 개최되었으며 최근에는 기존 전시 형식을 탈피하 는 기획을 통해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한편, 불교박물관의 불교미술 전시는 사찰의 성보박물관과 불교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종교적 위상과 고승 대덕의 업적, 그리고 사찰의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고 있다. ‘창령사 터 나한상 전시’는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지닌 나한상을 설치 작품으로 재탄생 시켜 관람객이 불교미술에 빠져들고 사색에 잠길 수 있게 하였다. 다양한 전시연계 프로그램 의 운영과 SNS를 통한 홍보 역시 전시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나한상 전시 분석을 바탕으로 불교미술 전시의 대중화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첫째, 전시 주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전시연출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셋째, 새로운 디지털 매체를 활용해야 한다. 넷째, 도록을 다양화해야 한다. 다섯째, 연계 교육 프로그 램을 개발하고 운영해야 한다. 여섯째, 다양한 전시행사를 기획해야 한다. 일곱째, 불교미술 의 콘텐츠가 지닌 개성과 역사성을 반영한 ‘캐릭터’를 개발하여 보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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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2023.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청양 본의리 소조 불상 대좌의 제작기술은 지금까지 주로 육안관찰을 통해 해석되었다. 그러나 대좌에 존재하는 제작흔들은 상당히 미시적인 형태를 보이고, 다양한 시각적 간섭을 받아 육안이나 탁본을 통해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3차원 스캔데이 터를 기반으로 기하정보 매핑과 렌더링 기술을 적용하여 대좌의 제작흔을 입체적이고 가시적 으로 분석하였다. 본의리 대좌에 존재하는 포목흔, 지두흔, 받침모루흔, 타날흔, 접합흔, 절 단흔, 명문과 문양, 손잡이, 이음 구조 등으로 볼 때 성형-분할-건조-소성-조립의 체계적인 설계를 바탕으로 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워낙 대형의 크기를 가져 자연건조와 소성 과정 중 수축과 뒤틀림이 발생하여 실제 사용은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전체적인 규모와 제작기술로 볼 때 국내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벡제 토제 기술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가시화 기술은 본의리 대좌뿐만 아니라 향후 토제 유물의 제작기법 해석에 있어 중요한 방법론으로 활용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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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2023.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나한신앙은 나말여초 시기 중국 절강성 천태산에서 유입되어 고려시대 성행한 불교신앙 중 하나이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나한이 천태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나한재 를 통해 祈雨, 國難克服, 長壽 등 현세와 관련 깊은 소원을 빌었다. 고려시대의 나한상은 천태종이 발원한 중국 절강성 지역 나한상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자 세로, 다양한 지물과 함께 조성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동시기 중국의 나한상에선 볼 수 없는 ‘두건’을 쓴 나한도상도 등장하였는데, 이러한 도상은 승가대사상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 으로 생각된다. 이 영향에는 천태종단의 배경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천태종의 본산인 국청사에서는 북송시기 지자대사, 승가대사, 그리고 나한을 함께 모셨다는 기록이 전한다. 관음신행을 중시한 천태종단에서는 관음의 화신인 승가대사를 수용 하였으며, 나한과 관음을 동일시하였기에 세 존상을 함께 모신 것으로 보인다. 국청사를 방 문하였던 고려의 승려들은 두건을 쓴 승가대사와 지자대사를 보았을 것이다. 지자와 승가 모 두 두건을 쓴 신이한 승려이므로, 신이한 승려인 나한에게도 이 이미지가 적용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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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2023.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백제 사비시대 부여와 익산의 왕실사찰인 정림사지, 제석사지, 그리고 미륵사 지에서 출토된 3점의 塑像에 대한 분석을 통해 6세기 후반~7세기 전반 백제 미술의 對中交 流 양상을 고찰했다. 구체적으로는 3인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 세속 인물상의 자세 및 의복, 그리고 두 보살상의 두발 표현 등을 중국 남북조시대 및 隋唐代 자료와 비교분석하였다. 3인상의 경우, 남북조의 출행도 및 예불도와 유사성이 지적된 바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기존 연구가 남북조시대 출행도에서 나타나는 지역적 차이를 간과했음에 주목했다. 3 인의 자세, 인물 구성, 侍者의 성별과 역할, 그리고 폐슬과 소매가 넓은 포복의 형태 등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실마리로 백제 3인상이 북조가 아닌 남조 문화와 더욱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무왕이 건립했다고 전하는 제석사지와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두 점의 보살상 頭部에는 連 弧形 髮際線이 출현한다. 연호형 발제선은 중국에서는 이미 4~5세기부터 출현했지만, 중국 전역으로 보급된 것은 대략 6세기 말부터이며, 그 연원은 장안양식과 관련이 있다. 연호형 발 제선은 삼국에서는 7세기에 비로소 등장하며, 이후 통일기 신라에서 유행한다. 그러므로 백제의 두 사찰 출토 소상에서 출현하는 연호형 발제선은 6세기 말부터 백제가 행한 적극적인 수 당 교류의 결과이자, 백제 미술에 미친 수당대 장안양식의 한 사례로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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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2023.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宋代 瓷器에 보이는 嬰戱紋의 시기별, 소재별 유형과 金과 高麗로 전파된 이 후 수용과 변화된 양상을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자기 뿐만 아니라 회화, 금은기 등 과의 비교를 시도하였다. 영희문은 아이가 놀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문양으로, 南北朝時代 금속기에서 처음 보 이기 시작한 이후 唐代 長沙窯에서 자기의 장식요소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송대에 이르면 南ㆍ北方 여러 窯址에서 자기장식요소로 활발히 제작되기 시작하며 다양한 소재와 결합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송대 영희문이 다수 확인되는 耀州窯와 定窯, 磁州窯, 景德鎭窯 등을 중심으로 시기별 변화 확인을 통해 송대 전기에는 거의 확인되지 않던 영희문이 중기에 이르러 북방지역의 요 주요와 남방지역의 경덕진요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후 송대 후기부터 요주요를 중심으로 도상과 소재가 다채로워지기 시작하였으며, 북송말-남송초에는 영희문이 확산되어 많은 요 지에서 제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확인되는 송대 영희문은 결합되는 소재에 따 라 화훼, 과실, 불교, 민간생활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營造法式과 같이 관에서 반포한 서적의 보급과 함께 多子多孫, 子孫蕃盛 등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송대 영희문의 확산과정에서 금과 고려도 영향을 받아 영희문 자기를 제작하게 되는데, 금은 결합된 양상과 구성에서 북송대와 유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주요에서 북방 민족의 복식으로 변화되는 양상이 확인되며, 이와 함께 당시 ‘百子圖’, ‘嬰戱圖’ 등의 회화에서 확인되는 아이들의 유희소재가 단독으로 나타난다. 고려에서는 12세기 중반 이후부터 영희문 자기가 제작되기 시작하며, 결합 소재와 아이 의 복식 양상을 통해 요주요의 영향을 받은 이후 정요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고 려 영희문 자기는 크게 넝쿨과의 결합구성, 단독소재 구성, 회화식 구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그중 회화식 구성은 송대 회화의 영향과 함께 남송대 금은기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 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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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2023.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중국에서 북송(960~1127)과 남송(1127~1279) 시기에 유행하였던 점다법(點 茶法)에 사용되었던 금속제 다구를 통해 송대의 차문화의 역사적 의미와 고려 차문화를 살 펴본다. 차의 정수는 차 거품이라는 의견은 당대의 육우에 의해 주장된 바 있다. 이 차의 거품을 맛있고 멋있게 만들기 위해 점다문화가 투다문화로 발전한 것은 차의 정치사를 행했던 송대 사회의 문화적 특징으로 이해된다. 일반 백성에서 황제에 까지 공유되었던 점다문화는 차의 질과 다구의 질을 계층에 따라 달랐고 사치가 극성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칠기, 주석, 흑자와 청자 그리고 백자의 도자기, 주석, 금은기 등의 다양한 재질로 다도구가 제작되었고 특히 금은기는 감상수준으로 발전하 는 원동력이 되었다. 금은제 다도구는 송대 이전의 황실의 다도구인 법문사 지궁의 의종의 공양품을 통해 살펴 보았다. 바로 이 법문사의 다구를 통해 차의 포말을 즐기는 점다법으로 이해되는 다문화의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송대의 점다법에 구사된 금속제 다기에 대해서는 그간 연구된 바가 없었다. 이글에서는 금은기로 만든 주자와 잔과 탁의 기형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고찰해 보았다. 13 세기 팽주 교장의 금은기를 통해 두립형의 잔과 끼우게 되어 있는 구조의 탁, 그리고 절견형 의 주자는 다기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송대 점다법을 수용한 고려의 금속제 다구들의 존재를 은숟가락과 미국 보스턴박물관 소 장의 금도은제주자와 승반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 다구들에서 동시대의 국제적 흐름을 타면 서도 고려만의 독자적인 미감이 파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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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2023.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중국에서 시작된 목판 인쇄술은 부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한 방법으로, 처음에는 글자 위 주였으나, 글자 속에 삽화로 판화가 결합되면서 강력한 포교의 수단으로 등장하였다. 책속의 삽화를 한 장의 판화에 모아 불화 형태로 제작되어 보급되기도 하였으며, 삽화 형태를 벗어 나 한 장의 만다라 형태로 극락의 세계를 표현하여, 불자들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지옥 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악을 멀리하여 선을 행하여, 고해의 바다인 사바세계를 벗어나 극락 세계에 태어나길 염원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하였다. 한국 고판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중국, 일본, 티벳, 베트남 등의 ‘정토’ 관련 소장품은 목판(木板)과 전적(典籍)과 불화 판화(佛畵版畵), 민속판화 등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각 나라에서는 책속의 삽화와 불화, 명 절이나 조상을 천도하는 제사 등에 사용된 지전(紙錢)이나 부적 등으로 다양하게 발전되어 사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정토의 모습을 책 속의 삽화 형태로 발전시킨 정토삼부경인 아미타경(阿彌陀經)이나,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무량수경(無量壽經) 등 이 한국, 일본 등에서 복각復刻되어 발간되었으며, 일본에서는 정토삼부경이 만다라 형식의 불화 판화로 독자적인 형태로도 발전되었음도 알 수 있다. 정토 불교가 발전되었던 일본에서 는 그림으로 교리를 설명하는 에토키(etoki)로 다양한 정토 불화 판화가 보급되어 예배와 교 화의 도구로서 사용되었으며, 중국에서는 조상을 천도하는 의식에 사용된 지전이나 부적의 형태로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음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불교 포교의 새로운 수단으로 고판화를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으며,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인들의 생사관(生 死觀)을 고판화를 통해 더욱 쉽게 이해 할 수 있어 동양 문화를 더욱 심층적으로 연구 발전 시키는 데 동아시아 각국의 고판화의 수집과 활용이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직시할 필 요가 있다. 더 나아가서는 불교 회화의 연구를 위해 동아시아의 손으로 그린 불화와 판화로 찍은 불화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불교회회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 필요가 있다.
        7,800원
        55.
        2022.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Krzysztof Wodiczko, 1943-)의 공공 프로젝션 작업을 <나의 소원 My Wish>(2017)을 중심으로 살펴본 연구이다. 폴란드 태생 예 술가인 보디츠코는 산업디자이너로 활동하며 국가의 검열과 정치제도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바탕으로 정형화된 이데올로기를 공공장소에서 폭로하고자 했다. 사회 비판 적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던 보디츠코는 고국의 탄압을 받게 되고 1977년 캐나 다로 망명하게 되는데, 이후 본격적으로 공공 프로젝션 형태의 공공미술 작품을 제작 하기 시작했다. 그의 공공 프로젝션 작업은 특정 장소나 오브제가 갖는 의미와 맞물 리며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가 보다 함축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되기에 공공미술 연구 에서 중요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보디츠코의 공공프로젝션 작업 배경과 작가의 예 술관이 반영된 <나의 소원>(2017)을 파레지아(Parrhesia)적 구성과 공론장 형성, 공 공 프로젝션과 트라우마 극복의 함의, 공적 공간의 이데올로기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평생에 걸쳐 고민해온 보디츠코에게 공공 프로젝션 작업의 파레지아적 구성은 매우 효과적이다. 예술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 해 각종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상호소통의 도구가 된다. 따라서 보디츠코의 작품은 관객과 상호소통적인 장치이다. 그의 공공 프로젝션 작업들은 가시성의 창조적 확산과 강화를 위해 매개물로 작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다. <나의 소원>은 보디츠코가 2017년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 회고전을 개최하며 출 품한 작품으로 갈등과 상처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발화를 담으며 사회 변혁적 실천의 방식을 제시했다. 이때 장소 특정적 맥락을 보여주던 과거의 작업에서 나아가 미술관 을 전시공간으로 선택하며 제도적 기관이 또 다른 공공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의지를 피력했다. 결국 보디츠코의 공공 프로젝션 작업은 사회 비판적 개입이 공적 공간을 사회적 이슈를 논쟁하는 민주적 공간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진보된 형태 의 공공미술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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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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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영국의 미술가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1963 ~ )의 〈나의 침대〉 를 다룬다. 〈나의 침대〉는 에민이 이성과의 이별 후 나흘간 머물렀던 그의 침대를 전 시실로 옮겨 놓은 것으로, 매트리스와 프레임으로 구성된 하나의 침대와 침대 주변에 다양한 오브제를 배치한 작품이다. 에민의 작업은 주로 그의 사적 생활과 감정을 주 제로 삶을 이야기하며, 그가 겪어온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나의 침대〉에는 에민의 불안정한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삶의 고통이 드러난다. 〈나의 침대〉에는 모성 의 상실이 드러나거나 임신에 대한 두려움과 이별에 대한 고통과 불안감, 슬픔을 나 타난다. 에민은 〈나의 침대〉에서 그의 상처와 고통을 숨김없이 표현하였고, 그의 혼 란과 고통을 고백하는 행위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며 치유의 순간으로 전환된 다. 에민이 작업 과정에서 갖게 되는 치유의 경험은 관람자에 전달되며 상호 관계적 소통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본 연구자는 에민이 〈나의 침대〉를 통해 자신의 상처 를 어떻게 치유하는가의 과정을 연구할 것이다.
        5,100원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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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엘즈워스 켈리(Ellsworth Kelly, 1923-2015)의 창문 이미지에 대한 연구이다. 켈리는 일상의 사물인 창문을 발견하고, 그것의 구조를 그대로 캔버스로 옮기는 전이를 통해 추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실험했다. 작가는 전이된 창문 이미지 를 기호로 지표화했고 창문의 실제적 이미지를 연상할 수 없을 정도로 구조의 핵심 적 본질에 접근하여 자율성을 갖춘 새로운 이미지로 탄생시켰다. 새롭고 독립적인 것 으로 창문 이미지를 제시하고자 했던 그의 작업 과정은 시뮬라시옹과 유사한 맥락으 로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창문 이미지는 순수한 대상인 시뮬라크르로 해석가능하다. 켈리는 창문과 중세 미술의 도상을 결합하였다. 예수의 모습과 결합된 창문의 모 호한 형태는 관람객이 작품의 구체적인 형상과 의미를 단번에 파악할 수 없게 만들 었다. 또한 켈리는 목재와 노끈 등의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여 리얼리티의 문제를 실 재적 관점으로 확장시켰고 2차원과 3차원의 결합을 시도했다. 한편 오브제적 특성을 갖게 된 켈리의 창문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비교되기도 하였다. 켈리의 작업은 이미 만들어진 사물인 창문을 선택하고 창문의 기본적인 구조만 드러나게 한 다음 완벽하 게 재창조한 ‘올레디메이드(already-made)’로 차별화된다. 또한 켈리는 우연히 발 견한 사물이었던 창문 그 자체보다 그리드 같은 창문의 구체적인 구조에 흥미를 느 꼈다. 즉 켈리가 사물을 선택하는 행동에서 미적 흥미를 배제할 수 없었다. 켈리의 창문 이미지는 작가에게 새로운 예술 형식을 위한 기호로, 현실 세계로부 터 얻을 수 있는 시각 언어이자 추상으로 향하는 조형적 언어였다. 본 연구는 켈리의 작업 세계에서 창문 이미지가 예술형식의 확장을 가져오는 시작점이라는 것에서 의 의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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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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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포드 스틸은 1904년 노스다코타의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을 알바타, 케나다, 스포켄, 위싱턴의 거친 사막과 높은 산맥, 황량한 대초원과 오래 된 메사 지역에서 보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한 그의 초기 작품은 지역주의 관점에서 태곳적부터 이어온 성장, 투쟁, 소멸을 포함하는 날씨와 땅의 자연적 순환을 정확하 게 직접 다룬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자연과 문화, 환경과 자아의 구분은 무의미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즉 그의 미학은 이러한 원시적인 최초의 감동에서 저 절로 진화한 것이었다. 이로써 스틸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도래하고서야 본격적으로 신화적 주제에 의존하게 된 뉴욕의 도시적인 추상 표현주의자들보다 먼저 경험을 바 탕으로 예술을 형성하는 데 앞장서게 되었다. 스틸은 1943년 후반부터 1945년 초반 버지니아의 리치먼드 교사 시절, 그곳에 서 그는 처음으로 지금 우리가 추상표현주의라고 생각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1946)과 베티 파슨스 갤러리(1947, 1950)와 같은 뉴욕에서의 세 번의 개인전 전시는 스틸을 가장 독창적이고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인 추상표 현주의의 계통의 초기 예술가이자 세계 최고의 살아 있는 화가 중 한 명으로 급부상 시켰다. 그러나 스틸은 문화 기관에 대해 가장 의심이 많았고 비평가, 딜러, 수집가, 박물 관에 대한 그의 불신은 전설적이었다. 특히 스틸은 자신의 작품 이해를 위한 미술사 를 거부하고 미술계 관계자들의 중재 노력에 적대적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는 추상표 현주의와 같이 그의 예술에 있어서 일반적인 비판 또는 해석적 범주에 맞추려는 시 도조차 거부함으로써 연구의 어려움을 가져왔다. 그리고 추상표현주의자들과 달리, 스틸의 예술적 업적은 실제로 그들과 학문적으로 연구되고 출판되는 카탈로그 연대 기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뉴욕화단에서 벗어난 자발적인 그의 은둔은 학문적 성과 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본 논문은 스틸의 위상을 재고하고자 하는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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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2022.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15세기 말 활동한 플랑드르의 대표적인 화가 쿠엔틴 마시스(Quentin Metsys, 1465/66-1530)의 초상화, <환전상과 그의 부인>(1514)에 관한 도상학적 연구 이다. 현재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된 마시스의 <환전상과 그의 부인 Moneychanger and his wife>(1514)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앤트워프의 환경을 토대로 제작 된 그의 초기 대표적인 초상화이다. 당시 일상을 배경으로 작업을 한 마시스의 표현 대상은 얀 반 에이크,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초상화와 비교해 볼 수 있는 부분인데, 앤트워프 지역에서 활동하는 도시의 환전상에 주목한다. 특히 당대사회의 환전상의 역할과 시대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소품과 대상이 작품의 의미를 비판적 시 각을 함축시킨 맥락으로 이해시키는데 중요한 알레고리를 제시한다. 이는 도시의 환 전상으로 일상적인 풍경의 재현을 넘어서 마시스는 작품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고찰 시키는 토대를 제공한 것이다. 이에 본 연구를 통해서 마시스의 <환전상과 그의 부 인>으로부터 환전상의 역할과 이미지의 알레고리로 제시한 금전과 권력, 부패와 타 락의 맥락을 바탕으로 당시의 일상에서 경제적 활동의 부흥과 함께 부의 의미를 상 징적으로 드러내는 환전상의 역할이 이 시기의 생활직업으로 얼마나 비중있게 다뤄 지고, 소재로 표현대상에 투영된 상징적 의미를 파악하여 마시스의 작품의 특성을 고 찰하고자 한다.
        6,900원
        60.
        2022.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미술가 정규(鄭圭, 1923-1971)의 미술비평에 나타난 시대의식을 통해 그가 구 상한 전후 새로운 한국 현대미술을 분석하여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둔다. 창작 활동 이외에도 비평, 교육, 행정 등 미술의 다방면에서 활약한 그의 예술관 중심에는 전전(戰前)에 대한 종합적 반성을 토대로 전후(戰後)라는 새 시대에 적합한 한국 현대미술의 모색이 있었다. 전후 한국미술계는 거 대한 흐름을 형성한 한국 앵포르멜을 중심으로 실존주의의 불안과 부조리를 내적으로 탐구했다. 반면 정규는 실존주의의 휴머니즘에 주목하여 극복의 징후로 이해한 뒤 동시대 한국의 현실에 반응 한 미술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러한 지점은 그가 회화를 중심으로 재편되어가던 한국미술계에서 낮은 장르로 취급되던 판화, 도예 등 독자적인 활동을 펼치게 추동했다. 본 연구는 초기 한국 현대 미술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다각도로 이해하기 위하여 전후 시기 새로운 차원의 미술을 시도한 정규를 주목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전후 시기 주요 논객으로 활동했던 그의 저술을 분석하여 그가 궁극적으로 정립하고자 했던 한국 현대미술을 체계화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 기인 전후 시기 미술에 관해 보다 입체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을 제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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