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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林養正(1716-1777)의 문집인 『수분와집』을 텍스트로 하여, 그의 생애와 가학을 계승하고 실천한 양상을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守分窩集』은 별도의 목차 없이 그의 지향을 밝힌 문장인 「守分窩 序」와 관련 기록 부분, 시편과 간찰을 모아놓은 부분, 家狀 관련 부분 등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양정은 남명학파의 학자였던 임진부(1586-1658)의 후손으로, 三嘉 지역의 학풍을 이끌어나가는 지역 명문가 출신이다. 어린 나이에 부친과 조부를 여의었으나 평생 충과 효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고, 가학 을 잇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받아들였다. 이는 성현이 남긴 文義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으로, 이를 후학에게 자신이 터득한 문의를 정확히 전수 하는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아울러 가학의 전수는 임진부의『禮略』을 실천하여 誠禮의 정신을 체득하는 것으로 실현되었다. 이를 실질적으로 적용시켜 선조의 가훈을 誠孝와 公正이라는 정신으로 확립시켰다. 임양정의『수분와집』은 남명학파의 한 지파인 임곡 임진부의 후손이 향촌의 명문가로 자리 잡으면서 선조의 가훈을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시켰고 윤리규범으로 작용하였는가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2.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의 목적은 동와 조휘진(1729-1797)의 생애와 활동을 밝히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正祖가 남명 조식에게 사제(賜祭)하였던 시기를 남명학 부흥의 시발점으로 일컫는데, 그는 이때 남명학파의 중심인 덕천서원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각종 진주 관련 지리지에 그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고, 출중한 인물로 많은 인물과 교유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으나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진 바가 아직 없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함안에 세거하였다. 조선 건국 후 출사를 거부하고 함안에 은거하였던 趙悅, 단종 때의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趙旅, 임진왜란 때 순사한 趙宗道가 그의 선조이다. 그는 평소 효를 실천함과 동시에 선조의 忠을 드러낸 것 역시 효의 실천으로 보았다. 선조 열 명의 업적을 기록한 『趙氏十忠實錄』은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남명학의 전수자로서 덕천서원을 중심으로 유림을 규합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의 문집인 『東窩遺集』에 보이는 창화시 및 만사를 통해 그의 교유범위가 퇴계학파와 중앙의 남인까지 포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개와 절조를 숭상하고 處士的인 학풍을 견지하던 남명학파의 유풍을 그대로 견지하였던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