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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19세기 후반 경상우도 宜寧에 살았던 송파 강우영의 생애와 시세계를 고찰한 글이다. 송파는 忠孝로 이름나고 南冥學派를 연원으로 하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치적으로 남명학파가 몰락함으로써 張福樞와 金道和를 스승으로 섬겨 남인계열이 되었고, 張錫贇・ 張升澤・田珪鎭・安鼎漢 등과 당색을 초월하여 교유하였다. 만년인 60세 무렵에 鳳里精舍를 지어 考槃亭 등의 이름을 붙이고 隱居自靖하였다. 송파의 은거는 19세기 후반 대내외적으로 혼란을 겪다가 일제치하로 변한 시대에 대한 현실인식과 대응방식이었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송파는 시를 통해 드러내었다. 송파는 101題에 112수의 시를 남겼는데, 시세계는 크게 세 가지 양상을 띤다. 첫째, 松節 지향은 복잡다단한 世事와 일제치하라는 시대현실의 파고를 넘기 위한 修身의 표상을 소나무로 설정하고, 根固・晩翠・直幹 등의 소나무 본질을 자신이 지향하는 덕목으로 표현한 것이다. 둘째, 隱居求道의 志趣는 격동하는 시대현실에 대해 鳳里精舍를 지어 隱居自靖으로 대응하면서, 持敬工夫를 통한 心수양 등의 道學추구를 표출한 것이다. 셋째, 報本追遠의 정성은 충효가문의 후손으로서 선조에 대한 추모를 다짐하며 정려 도모, 비석 설립, 묘지명 찬술, 제각 수리 등의 사업을 실천하여 선조의 미덕을 현창한 것이다. 이러한 송파의 모습은 19세기 후반 의령지역 士人들의 현실인식과 대응방식의 일면을 견지한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