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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俛宇 郭鍾錫은 조선 말기의 유학자로 대 변혁의 시대를 살았다. 위태로운 나 라를 구하라고 임금이 불러도 벼슬에 나가지 않았고, 의병 봉기에는 실효성이 없다며 동참을 거절하였다. 그러면서 임금에게 상소나 독대를 통해 끊임없이 나라의 위기 극복을 꾀하였고, 파리장서 의거를 주도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런 면우의 처신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의 판단대로 흔들림 없이 자기 갈 길을 갔다. 그의 처신이 옳았건 아니건 간에 조선말의 가장 전형적 유학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경륜은 우리 근대사에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면우의 진면목은 흥미롭고 연구해 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면우가 그렇게 온 나라의 촉망을 받는 인물이 되기까지 그 玉 成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수신과 학문 자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면우에게 수 신과 학문에 대한 견해를 밝힌 저술이 유난히 많은 것에 주목했다. 면우의 저술 「晦窩三圖」·「言難」·「行難」·「爲勿說」·「染解」·「靜坐說」·「知難」·「讀書說」·「學賊」 등이 그것이다. 본고는 면우의 수신과 학문에 대한 견해가 응집되어 있는 이런 저술들을 통하 여 그의 수신관과 학문에 임하는 자세가 그의 操行과 인간상에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저술을 통하여 면우는 자신의 몸을 닦는 수신이야 말 로 儒者의 기본 바탕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해야 하며, 말은 오직 天命에 순응하여 人事에 달통한 사람만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면우는 또 ‘利慾에 물드는 것’ 등 나쁜 것에 물드는 5가지로 자신 을 경계하고, 고요히 정좌하여 겸허한 자세로 내면의 원기를 기르며, ‘爲己의 학 문’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또, 공부를 해치는[學賊] 5가지를 들어 경계하였 고, 특히 유례가 없는 그의 독서설 4편은 3가지 독서의 형태, 5가지 독서의 요령 등 독특한 기준과 분석 기법을 적용한 논리적 체계였다. 이렇게 면우는 수기치인을 위한 爲己의 학문을 실천하는데 남다른 발상과 방 법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면우의 학문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그 자신의 말 대로 옥의 조탁과정에 비견되는 것이었고, 면우가 한 시대를 풍미한 큰 학자로서 설 수 있었던 바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