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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2000.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focused to the historic changes of Yungnam-Ru(嶺南樓), which are based on the site layout, and architectural forms in architectural building history and historic periods analyzed with the historic reference, paintings, and photos. This study is to search the alteration of the types of axis and the formation of spaces in Yungnam-Ru which is the Ru-Gak(樓閣) The conclusion of the architectural changes from the historic period and architectural form which is the belows. The first Yungnam-Ru by name had been used to be called, before it was re-called Yungnam-Ru by Kim Ju in 1365. Therefore, the hypothesis in naming Yungnam-Ru form assumption that the building under the name of Yungnam-Ru was re-named by Kim Ju from the Old Budist Temple called Yungnam-Sa, should re-considered in history. The second, it is considered that Milyang-Sibyi-Kyungdo(密陽十二景圖) as the painting can only be seen the site layout in 1542. It could be compared the differences of the site layouts from in 1542 to the present time. At that time Nyungpadang(凌派堂) was connected the main buildings called Yungnam-Ru Chimrudang(沈流堂),building was seperated with the Yungnam-Ru at that period. In 1542, the main Building(Yungnam-Ru) was consist of 5 spans of columns(from the front) and 2 spans of columns(from the side). Now, the main Building(Yungnam-Ru) has the 5 spans of columns from the front, and two spans of columns short from the side, compared to the present facade. At the past, Chimrudang(building) has the two spans of columns and one span of columns short, compared to the present facade. The third, It supposed that main building, Nyungpadang and Chimrudang in the composite of facade was connected with Wolrang(月廊) and Hunrang(軒廊) after invatioin from japan in 1592. 1844, (Chosun dynasty, Hunjong 10) the Yungnam-Ru was re-builted by maintaining the same concept in site layout of the past, and finally the three buildings was put together with Wolrang and Hunrang. As a result, the plan of the Yungnam-Ru was expanded with many aspects. From 1542 to 1844, the present site-layout gradually completed with three buildings which was spatially connected. The forth, in the middle age of Chosun dynasty, after added Gaeksa(客舍), the building is for the government officer staying temporally from outside province) in the site, the site layout was greatly changed with volume of building. In 1844, the Yungnam-Ru as the Nugak belongs to Miljukwan(密州館) was expanded spacially and formally. After that time, the burned buildings could not have been re-built because of aspects in government ability and economical ability.
        5,400원
        44.
        199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consumers' purchase experiences of some imported agricultural products (rice, sesame, garlic, onion, jujube, red pepper, oak mushroom, apple, dried persimmon) and their consciousness for the labelling of the country of origin for agricultural products in Youngnam region were examined in this study. The sample consisted of 438 women who lived in Taegu, Pusan and other cities of Kyungpook and Kyungnam, and the self-administered questionnaire for the survey was used. The main reasons to purchase the imported agricultural products were the wide distribution and low price of them. Most of the consumers were concerned about safety of the imported agricultural products but only a few people experienced unsatisfaction of the products. The price, quality, package, container, label, and safety of the examined products were evaluated worse than those of the domestic products. Generally, although they suffered unsatisfaction, the consumers did not complain because they wanted to avoid troublesome work, which means the consumers did not assert their rights. Some people did not know the labelling system for the country of origin and the place to charge the market violating it. Therefore, it will be necessary for the consumers to receive education about the labelling system for the country of origin and the compensation criteria for consumers' grievances and damages. The current labelling method for the country of origin generally met the consumers' preference but the consumers wanted to improve the position and color of the label. Most consumers could not differentiate the imported products from the domestic products. The results obtained from the survey suggest consumer education for the labelling system for the country of origin and the compensation criteria should be activated through various ways such as mass media and consumer organizations.
        5,100원
        45.
        199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ntermediated-basic plutons in Jirisan area consist of Pre-Cambrian anorthosite and gabbro, and Jurassic diorite and syenite. Many of bodies of massif type anorthosite are multi-intrusion and intruded by gabbroic rock which compose gabbro, norite, troctolite and leucogabbro. Younger intermediated plutons intruded into older basic plutons and formed contaminated zone at margin of basic plutons. Plagioclase of these plutons is of labradorite(An_(56∼60)) to bytownite(An_(60∼86)) in anorthosite, andesine(An_(35∼49)) in diorite and andesine(An_(30∼41)) in syenite: Continuous variation of anorthosite amount in these plutons suggest that basic and intermediated plutons are a series of differentiated product from two co-magma. Pyroxenes are correspond to salite of CPX, and hypersthene of OPX, and show continuous variation of component diopside to hedenbergite in salite and enstatite to ferrosilite in hypersthene. Variation of these component indicate these plutons are also a series of differentiated product from co-magma. Two synchronous plutons plotted on Harker diagram and AMF diagram show mostly similar trend to Daly's values and calcalkali rock series. Accoding to REE(La/Yb)_(cn) and Eu/Sm, it is concluded that intermediated-basic pluton having enriched LREE than HREE and emplaced by the tectonic setting in continent and/or continental margin.
        6,000원
        50.
        1983.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영남지방의 보리 보리줄무늬병 분포 및 발생실태를 조사파악하여 보다 효과적인 방제 대책 수립과 저항성 품종 육성 및 재배법개선을 위한 참고자료로 이용하고자 1982년 5월에 경남북 19개 군에서 228개 필지의 농가포장을 대상으로 하여 지역별 품종별 토양환경 및 재배조건별로 구분하며 이병경율을 조사 분석 하였던바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영남지역의 보리 줄무늬병 발생실태를 지역별로 보면 경북지역보다 경남지역의 발병율이 높았으며 특히 함안, 미량, 월성, 의창등지에서 발병율이 높은 경향이었다. 2. 보리 품종별로는 밀양 6호는 거의 발병되지 않았으나 올보리 오월보리 등의 이병경율이 높은 경향이었다. 3. 토양조건별로는 배수가 불량할수록 이병경율이 높았으며 유효수분함량이 높은 토양나 식토양 및 식토에서 발병이 심한 편이었고 부분적으로 과습하기 쉬운 곡간지의 보리 재배포장이 평야지 포장보다 심하였으며 포장이 과습 할수 록 이병경율이 높았다. 4. 재배조건별로는 파종기가 빠를수록 발병율이 낮았으며 질소 시비수준별로는 보비 조건보다 다비 및 소비 조건에서 발병이 심한 경향이었다.
        4,000원
        51.
        2023.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내덕리 화강암과 농거리 화강암은 영남육괴 동북부의 태백-상동지역에서 분포하는 고원생대 화강암이다. 이 단보에서는 내덕리 화강암과 농거리 화강암에서 추출된 광물들에 대해 희토류원소의 함량측정 및 이들 광물들로 부터의 Rb-Sr 광물연대를 구함으로써 내덕리-농거리 화강암의 지구화학적 진화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틀을 마련 하고자 하였다. 운석으로 규격화한 희토류원소 분포도에서는, 저어콘을 제외한 흑운모, 장석, 석영, 전기석 등 모든 주구성광물은 경희토류가 부화되어 있고, 중희토류가 결핍된 희토류원소 분포도를 보여주고 있다. 저어콘의 경우 Eu의 강한 부(-)의 이상과 더불어 경희토류와 중희토류 모두 부화된 특성을 보여주는데. 이는 열수기원임을 지시 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Rb-Sr 광물연대에 있어서 광물분리한 시료만을 이용한 Rb-Sr 광물연대는 1.814±142(2σ) Ma의 연대치를 지시해주었고, 기존의 자료와 함께 통합하여 계산했을 때는 1,707±74(2σ) Ma의 연 대치를 지시해주었다. 이 광물연대값은 겉보기에서는 기존의 1.72 Ga Rb-Sr 전암연대보다는 더 오래됐고, 1.87 Ga의 Sm-Nd 전암연대보다는 더 젊다. 이와 같이 광물연대와 전암연대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저어콘의 희토류원소 분포도가 지시해주는 바와 같이 Rb-Sr 동위원소계가 화강암의 정치 후 열수변질을 받았음을 지시해준다고 해석된다.
        52.
        2022.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영남육괴는 광역적인 고온-저압의 변성작용과 부분용융을 경험한 한반도 지각을 대표하는 기반암 중 하나이다. 이 논문에서는 지금까지 보고된 영남육괴 고온 변성암류에 기록된 백립암상의 변성작용과 부분용융 과정 을 통해 고원생대(1.87-1.84Ga)의 고온조산운동 기록을 살펴본다. 특히 열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산청-하동지역 회장암질 마그마를 비롯한 고철질 화성활동과 고온-저압 변성작용 사이의 시공간적 연계는 영남육괴의 광역변 성작용과 지각용융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지각용융은 주로 함(含)유체 부분용융과 백운모/흑운모의 탈수용융에 의해 발생하였으며, 다양한 형태의 우백대와 우백질 화강암을 형성하였다. 이차이온질량분석기를 활 용한 저어콘과 모나자이트의 암석연대학적 결과는 영남육괴의 고온변성작용과 부분용융이 약 1870-1854Ma의 ~15Ma 기간 동안 지속되었음을 지시한다. 또한, 초기 차노카이트로 대표되는 유체유입 사건이 약 1840Ma에 발생하였다. 이와 같이 영남육괴 내에는 고온변성작용과 부분융용, 그리고 유체유입이라는 고온조산대를 대표하는 일련의 지질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영남육괴에서 확인된 고온조산대는 북중국 지괴에서 흔히 보고되는 고원 생대 조산운동과 연계되어 있으며, 고원생대 콜럼비아/누나 초대륙 진화의 최후기 산물이리라 판단된다.
        53.
        2021.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독도교육은 독도의 영유권확보를 위한 선결적 수단 가운데 하나로서, 그 중요성은 따로 강 조하지 않더라도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본 논문은 지난 3년 동안의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의 독도교육의 운영사례를 중 심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가장 효과적인 독도교육의 모델을 찾는데 목 표가 있다. 이러한 목표 하에서, 본 논문에서는 아래의 몇 가지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영남대 학교를 비롯한 지역대학에서의 독도교육의 현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둘째 영남대학교에서 수행해온 독도교육의 내용을 검토하고, 그 한계를 분석하고자 한다. 셋째 법학전문대 학원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가장 효과적인 독도교육의 모델을 구하고자 한다. 끝으로 결론에 갈음하여 법학전문대학원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독도교육의 나아갈 방향을 기술하고자 한다. 이상과 같은 검토와 분석을 통해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법학전문대학원에서의 독도교육은 독도 관련 법률전문가의 양성 및 국가의 전략적 차원에서의 기여라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일이라는 점이다. 둘째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독도교육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초・중・고교에서 의 독도교육과 연계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교육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독도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전문가양성프로그램이 요청된다는 점이다. 넷째 독도교육을 위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다섯째 가칭 ‘독도교육공동연구회’와 같은 민간 주도의 위원회를 설치하여, 독립적이고 중 립적인 틀 속에서 관련 논의를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독도에 관한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지속된다면, 독도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으 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54.
        2020.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연구는 영남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고지도 자료 중 총 48점의 울릉도․독도 관련 지도를 통해 독도가 한국의 영토인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지도 자료를 통해 독도의 영토주권을 재확인하고, 영남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독도 관련 고지도의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독도 연구의 구심점으로서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데 그 의의를 두고 있다. 18세기이후 한국의 고지도, 특히 강원도 폭상에 나타난 ‘독도’의 위치는 ‘독도’가 울릉도의 오른쪽(동쪽) 또는 왼쪽(서쪽), 아래쪽(남쪽), 아래왼쪽(남서쪽), 아래오른쪽(남동쪽)에 각기 다르게 표시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독도는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 것인지, 각기 다른 위치로 표시된 독도가 현재의 독도위치와 같은 곳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도 지도의 현황 조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영남대 소장 독도 관련 지도의 현황과 특징을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지도 가운데는 독도와 울릉도의 위치가 현재의 위치가 아닌 경우도 있었는데, 이것은 당시의 지도 제작법의 유형에 따른 현상으로 당시 고대 시대의 사람들은 독도와 울릉도의 위치와 크기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후대 시대로 오면서 지도로 나타난 증거자료가 되었다. 영남대 소장 독도 관련 지도는 이미 조선시대 이전부터 당시 사람들이 동해 바다에는 두 개의 큰 섬(울릉도·독도)이 있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어로활동 등을 통해 두 섬과 인근해역을 이용해왔다는 명백한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자 증거라고 볼 수 있다.
        55.
        2020.0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영남(岭南) 고전 원림의 건축, 첩산(叠山), 이수(理水)와 식물 배치는 해당 스타일 특징의 4가지 구체적인 표현 형식이다. 본 논문은 중국 청나라 시대에 건설된 영남(岭南) ‘4대명원’(四大名园)을 체계적으 로 연구하였고, 주로 공간 레이아웃, 관상 노선 등의 측면에 대한 비교 분석을 진행하였다. 또한 영남 (岭南) 전통 정원의 건축, 연못, 산석, 화목(花木) 처리의 특징에 대해 자세히 고찰하였다. 중국 청나라는 영남(岭南) 정원 발전의 전성기이며,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2천 년 전 남월국(南越国) 의 궁궐 유적에서 ‘어화원’(御花园)을 발견되었다. 서기 1995-1997년 사이에 발견된 서한 남월국(南越 国) 궁서(宫署) 어원(御苑) 유적은 현재 중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궁중 화원이다. 역사 자료의 기록 에 따르면 남한 시대(南汉时代) 광저우에 ‘선호’(仙湖) 어화원(御花园)이 존재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는 일부 유적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현재 광저우 남방희원(南方戏院)은 바로 ‘선호’(南方戏院)의 주요 경관인 약주(药州) 구요원(九曜园) 수석경(水石景)의 유적으로 천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오랜 시간을 통해 영남(岭南)의 정원은 지속해서 발견되어 중국 원림 건축 예술의 3대 체계에서 중요한 일부를 형성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중한 건축 유산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만, 영남(岭南) 정원에 대한 청나라 이전 문헌의 기록과 전해지는 실물은 매우 적으며, 현존하는 실물은 모두 청나라 중기 혹은 청나라 말기에 건축된 것으로 비교적 유명한 4개의 정원으로 순덕청휘원 (顺德清晖园), 번옹여음산방(番禺余荫山房), 동완가원(东莞可园)과 불산(佛山)에 위치한 양원군성초당(梁 园群星草堂) 등이 있다.
        56.
        2018.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영조대의 하동 안계 마을의 학자 하대관의 가문계승의식과 향촌사회활동을 알아 본 것이다. 시기는 1748년부터 1758년까지 10년에 걸친 기간이다. 하대관의 글이 오로지 이 시기에 걸쳐 남아 있기도 하지만, 이 시기의 그의 활동이 1759년 가을부터 전개되는 종천서원 시비의 배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문집의 분석을 통해 볼 때, 하대관은 부친으로부터의 가학을 통해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업적을 알게 되어, 그의 학문은 선조들의 전통과 남명학을 이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에 그의 학문은 향당에서 충절과 효행, 경의를 중시하는 성격을 갖는다. 그는 영남남인 외에도 기호 남인과의 교류를 강화하여 자신의 가문과 진주 사족들의 위상을 높이려고 했다. 『겸재집』 간행, 족보편찬, 교육과 교화활동, 부당한 조세징수 반대, 『진양지』 간행 등은 모두 이러한 그의 사상을 반영한다고 할 것이다.
        57.
        2017.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17세기에 활동했던 林眞怤(1586-1657)의 학자적 삶을 분석한 것이며, 궁 극적으로는 조선후기 南冥學派의 다양성을 해명하는데 주안점이 있다. 그 다양성 이란 강우 남명학파권에 지역적 연고를 두고 曺植 및 그 문인들과 일정한 학연을 맺 으면 기계적으로 남명학파의 범주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임진부를 양성한 학문적 물줄기 속에 남명학파적 요소가 충만해 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삶과 학문을 규정할 수는 없다. 그는 조식을 매우 흠모 했고, 南冥學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평생을 부심하면서도 뇌리 한 편에는 항상 李滉 을 담아두고 있었다. 임진부는 남명학과 退溪學의 절충을 모색하고 있었고, 퇴계학 이 절충의 종속 요소가 아니라는데 중요성이 있다. 순혈성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남 명학파 연구에 있어 임진부의 존재는 향후 연구의 새로운 시각으로서 깊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58.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가 중점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은 “독도학 정립을 위한 학제간 연구”이다. “독도학 정립을 위한 학제간 연구”의 기본과제는 제1과제(인문사회과학 분야) ‘독도 영유권 확립을 위한 연구’와 제2과제(자연과학분야) ‘독도의 생태보전과 독도해역의 생물상 연구’로 구성하여 1) 독도가 한국 고유영토임을 다학문간 통섭적 연구, 국제 공동 연구를 통해 재확인하고, 2) 독도 영유권 확립을 위한 매뉴얼 개발을 통해 만일의 경우 ICJ(국제사법재판소)나 국제중재재판이나 제3자 소송 등의 국제소송에 임하게 되었을 때를 상정하여,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한국측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한 반박문과 답변서를 비롯한 재판에 임할 매뉴얼(Manual)을 만든다는 데에 초점을 두면서 3) 국제사회에서 용인되는 이론 개발을 통해 일본 측 주장의 허구성과 부당성을 증명할 수 있는 ‘독도학(獨島學)’을 정립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런 목적 하에서 역사, 지리학·문화인류학과 국제법, 정치학의 학제간 통섭연구를 지향한다. 이러한 학제간 연구 성과의 한 사례로 「울릉도쟁계의 타결과 쓰시마번(對馬藩)」(필자:송휘영)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의 국내의 울릉도쟁계에 대한 연구가 주로 국내자료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데 반해서 이 연구는 『죽도기사』 및 『죽도문담』 등 일본측 1차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쓰시마번의 내부에서도 일본측의 무위(武威)라는 위협을 바탕으로 한 강경책에 대해 반성이 일기 시작하였고 조선에 대해 인교의 도리로써 대응해야 한다는 스야마 쇼에몽과 같은 온건파의 주장이 대두하였으며, 결국 그의 설득과 번내 여론 주도로 말미암아 에도막부가 조선 어민의 죽도도해를 금지하라는 당초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결과인 「죽도도해금지」를 명령하게 되었다는 것을 고찰하였다. 이러한 고찰은 국내자료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연구에서 남구만 정권의 강경노선이 그 타결을 주도하였다는 결론의 지평을 확대하여 유학자이자 쓰시마번의 유력번사였던 스야마 쇼에몽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의 역할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 지평의 확대야말로 독도연구소의 강점이자 앞으로의 지향점이기도 한 것이다. 또 다른 논문인 「죽도고 분석」(필자: 김호동) 또한 도토리번의 번사인 오카지마 마사요시가 1828년에 지은 『죽도고』를 인용서목의 분석과 함께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한일 양국의 독도 논문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죽도고』 자료를 인용할 때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측 학자들의 논리와 역사 왜곡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일본 고문서의 철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면에서 이러한 일본측 사료의 비판적 검토는 앞으로 더욱더 본격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바람직한 독도교육을 위해 ‘내러티브’에 주목해야 한다. 독도의 자연 환경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이나 독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법제적인 접근 모두는 독도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생동하는 삶과는 멀리 떨어진 죽어있고 굳어있는 한갓 돌덩어리 섬으로 바라보게 한다. 독도는 우리 영토라는 영웅담에 기초한 애국주의적인 위인전식 접근 또한 한국인들에게 하나의 도덕적인 교훈을 제공하는 하나의 모범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이렇듯 생태학적 접근과 법제적인 접근의 진실성을 살리는 한편, 위인전식 접근에서의 ‘그들의 이야기’가 곧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으로서의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내재화함으로써 독도를 동시대 한국인들의 삶과 함께 살아있게 할 수 있는 접근방법이 곧 ‘이야기체 역사’로서의 접근이다. 이를 통해 생태학적 접근과 법제적인 접근, 그리고 위인전식 접근과 같은 여러 영역을 뛰어넘는 다양한 방식의 내적 관계의 총체를 하나의 단일한 전체로 나타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체 역사’로서의 내러티브를 통해 무수히 많은 내적 관계를 맺고 있는 ‘독도’ 문제를 둘러싼 일련의 역사적 사실을 하나의 이야기로 내면화하게 된다.
        59.
        2015.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Recently, concerns have been voiced about the high eating quality rice in the market. To cope the high quality demands in rice market, a rice cultivar ‘Jinsumi’ which is showing high grain quality and multi-resistant to diseases was developed by the National Institute of Crop Science, RDA, Miryang, Korea. ‘Jinsumi’ was derived from a three-way cross of ‘Milyang165’and F1 plant of YR16195-B-B-B-21-1/Milyang169. The pedigree of ‘Jinsumi’ was YR21999-B-B-B-17-3-1 and designated as ‘Milyang 218’ in 2005. Heading date of ‘Jinsumi’ was August 15 as mid-late maturing ecotype. ‘Jinsumi’ showed multi resistant to rice stripe virus (RSV), bacterial blight races of K1, K2, K3 and moderately resistant to leaf blast disease. The grain appearance of ‘Jinsumi’ was translucent and showed 96.6% of head rice ratio. The milled rice yield of ‘Jinsumi’ was 5.74 MT/ha at ordinary transplanting of local adaptability test. ‘Jinsumi’ would be adaptable to the plain area of Yeongnam provinc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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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향전은 英祖대 이전부터 기존 사족간의 당파적 대립에서 시작된다. 이런 갈등으로 인해 사족층의 지배질서가 균열을 보이자, 그 틈새를 비집고 신흥세력들이 鄕權에 참여하면서, 향전이 점차 신․구세력간의 갈등의 모습까지 덧씌워진다. 영남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사족층의 지배질서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지만, 고을에 따라 사족층의 지배질서의 강약이 달랐다. 지배질서가 약한 고을에서는 일찍부터 새로운 세력이 新鄕으로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컸다. 또 영남을 좌․우도로 나누어 볼 때, 좌도보다는 우도가 향전이 더 심했다.영남지역 중 우도, 특히 경남 서부지역을 근거지로 하고 있던 南冥學派는 원래 大北의 입장을 취하다가 仁祖反正 이후 침체하면서 대거 南人화해 갔다. 게다가 南冥集판본 훼손사건 등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발생한 소외그룹이 西人化하면서, 남명학파 내부에 서인(老論)․남인의 당파적 대립양상이 점차 확산되었다. 이런 갈등은 진주 인근의 고을에도 영향을 미쳤고, 좌도의 여러 고을에서도 당파적 갈등으로 인한 향전이 전개되었다. 18세기 중반 이후 영남에서도 新鄕․舊鄕의 대립으로 인한 향전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때의 신향은 鄕案에 새로 진입하려는 같은 사족층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후 영남에서는 수적으로 열세에 있던 신향들이 중앙의 老論세력의 지원 하에 자기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다른 계층의 세력을 끌어들이면서 서얼층이나 다른 계층의 진입도 점차 확산된다.17세기 말 18세기 중엽 향안을 둘러싼 대립과 파치 현상은 이전부터 향촌사회 내의 재지사족간의 당파적 대립이 격화되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 같은 사족반열에 있으면서도 향안에 입록되지 못한 인물들은 점차 중앙의 서인․노론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향안에 들어오게 되고, 이에 따른 분란이 신․구향의 향전으로 발전한 것이다.영남에서의 교원을 둘러싼 갈등도 일찍부터 기존 사족간의 당파적 대립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지만, 영조대부터는 신․구향간의 대립이 점차 부각되기 시작한다. 신향도 향교․서원에 대해서도 똑같은 참여를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通淸운동을 전개하던 서얼들도 교원에 참여하게 되면서 영남 각 고을에서도 기존 사족과 서얼간의 갈등이 격화된다.향임을 둘러싼 향전에서도 처음에는 기존 사족간의 당파적 대립으로 향전이 일어났다. 그러나 후대로 가면서 영남에서도 향임을 둘러싼 신․구향간의 향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런 향전은 19세기 말에는 사족층뿐만 아니라 향리층까지도 노골적으로 파벌을 형성하여 향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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