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밤의 랩소디」의 공간적 배경이 현실이 아닌 악몽과 같은 꿈속이고 시간적 배경은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시간인 자정 열두 시에서 네 시 사이로 유령이 출몰하는 시간으로 알려진 시간이다. 그곳에 고독과 우울에 사로잡힌 화자가 있었다. 현실을 살아가는 화자의 꿈속에서 그가 기억의 밑바닥을 체험하게 된다는 줄거리는 자체만으로도 악몽과 같은 스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독자의 관점에서 베르그송의 기억원리를 대입하여 화자의 기억을 해체하고 해결점을 구하는 데 의의를 두었다. 가로등이 제시하는 순수기억 속에서 화자는 자신의 부분기억을 발견한다. 그의 기억은 어린 시절부터 있었던 도둑질과 살인이었는데 마치 세상 모든 만물이 그에 대한 기억을 망각한 듯하였다. 하지만 달과 기억의 현현에서 화자는 기억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아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달의 만물을 쓰다듬는 손가락과 가로등의 ‘생명을 준비하라’는 마지막 명령, 열쇠, 층계에 놓인 작은 등불을 통하여 화자에게 희망을 암시한다. 화자의 내면의 ‘칼의 마지막 비틀림’을 통해 모든 죄와 기억이 달의 순수기억으로 깨끗이 정화되어 바뀌는 일련의 기억과정들을 엘리엇은 「랩소디」를 통해 증명한다.
『바람 부는 밤의 광시곡』 은 T. S. 엘리엇의 초기시 중에서 가장 의미 파악이 힘든 시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는 전체의 이미지를 “비틀림,” “냄새,” “기억”이라는 단어들과 서로 연결시켜 놓았다. 『바람 부는 밤의 광시곡』 에서 화자는 바람 부는 밤 자정부터 새벽 네 시까지 도시의 가 로등 불빛과 달빛에 흔들리고 재배열되는 기억을 통해서 과거 속에 잠 자고 있는 또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본 논문은 엘리엇이 직·간접 적으로 베르그송의 시간 개념을 어떻게 광시곡에 펼쳐내는지를 살펴보 고자한다. 시인은 『바람 부는 밤의 광시곡』 에서 기억을 중심으로 비틀 어진 시간의 속성을 다시 흔들고 재배열하여 직선적 시간관을 극복해 보려한다. 본 논문은 『바람 부는 밤의 광시곡』 에서 엘리엇이 추구하는 베르그송적인 순수 기억이 순수과거, 즉 “버추얼”과 일맥상통하고 있음 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리고 시인은 “바람 부는 밤에”가 아닌 “바람 부 는 밤을 무대로” 해석할 만큼 시간과 기억의 타협 공간으로 “밤”을 사 용하였음을 보이고자한다.
『재의 수요일』이전의 전기시에서 엘리엇은 시적 화자의 자아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것은 자아를 발견하려는 또는 자아 없이 행하려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프루프록과 다른 관찰들 의 제사(題詞)의 마지막 2행은 시적 화자로서 자아인 ‘나’의 주체가 그림자같이 텅 빈 상태에 있으며, 이것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점을 요약하고 있다. 이러한 견고하고자 하지만 견고할 수 없는 프루프록과 다른 관찰들의 주체를 ‘주체적인 것’이라보면 이러한 ‘주체적인 것’이 이 시집의 시적 화자들의 주체의 공통된 특징이다. 1917년의 프루프록과 다른 관찰들에서 계속 의문시되었던 주체의 위상에 대해서 1920년의 시집은 질문하지 않는다. 시적 화자의 주체에 대한 내면적인 회의가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시집』의 시적 화자의 주체는 ‘주체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