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7

        1.
        2022.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오영수의 「이사」 발표 지면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이사」는 1951년 발표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1951년 「이사」를 발표했다는 잡지 󰡔문예󰡕는 1951년에 발간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이 글은 「이사」가 들어있는 1953년 부산지역 잡지를 발굴하여 오영수 작품 연대를 보완하고자 한다. 「이사」가 발표된 지역 잡지는 남선전기주식회사에서 발행한 󰡔전우󰡕이다. 1953년 창간된 󰡔전우󰡕는 부산에서 나온 사외보로써 전기 문명에 대한 홍보와 더불어 구성원들의 소통과 교양을 위하여 창간되었다. 거의 절반 분량의 문예란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사」는 창간호 문예란에서 발견되었다. 이 글은 단편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오영수의 「이사」에 대한 서지학적 연구로써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발표 지면을 발굴하였 다. 이를 통하여 지역 문학 연구를 위한 지역 잡지 발굴의 중요성을 확인하였다
        5,400원
        2.
        202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Tay people are the ethnic minorities with the largest population in Viet Nam, mainly distributed in the Northern Uplands and Midlands, mostly concentrated in the provinces of Cao Bang, Lang Son, Tuyen Quang and Ha Giang. Over the long history of development, along with the development and improvement of their language, the Tay people have gradually created a type of writing system using the graphic, phonetic, and meaning elements of Chinese characters in combination with indigenous phonetic and linguistic elements, to create the system that is called the Nom-Tay scripts or the Nom script of the Tay ethnic group. Traditional Tay literature is mainly recorded in this Nom - Tay script. The article reliesupon the texts that belong to the genre of narrative poetry (in this genre, a story is written as a long poem) written in Nom - Tay- the most significant part of the written classical folk literature of the Tay ethnic group. Materials from the texts, currently stored at the Institute of Sino - Nom Studies (Vietnam Academy of Social Sciences), will be used to conduct an analysis of the usage and the method of writing of the Chinese characters in these texts. Thereby, the article strives to confirm the important role and the ample appearance of the Chinese characters in VietnameseNom- Tay texts.
        7,700원
        6.
        2010.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이상필 교수가 2008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남명집󰡕의 초기 간본들과 관련하여 김윤수 씨의 설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필자를 비판한 데 대 한 응답이다. 이 교수는 문경호의 기유본 발문 중에서 “순찰사 유영순 또한 공 역을 도왔다.”는 한 구절을 鐵案으로 삼아, 이 구절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필자 를 비난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유일한 논거인 까닭에 필자는 남명학파의 초 기 역사와 관련된 다른 자료들에서도 경상감사가 서원의 일에 관여했다는 기록 은 모두 󰡔道先生案󰡕과 어긋남을 증거로서 제시했던 것이다. 만약 이러한 지적 이 이 교수의 주장에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가 「덕천서원중건기」의 기록 을 왜곡하고 「신산서원기」 중 해당 부분의 贗作說을 제기하는 것과 같은 무리 를 범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남명집󰡕의 초간본이 임인년에 간행되었음은 기유본 발문에 명기되어져 있 으며, 󰡔고대일록󰡕 속에도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다. 임인 전해인 신축년 (1601) 조에 ‘留寺看役’ 등 해인사에서의 간행 작업에 관한 기록들이 보이는 점 이 그것이다. ‘看役’ 또는 이와 유사한 표현은 이후의 󰡔고대일록󰡕에도 많이 보이 고 있는데, 그것들에서도 이 용어는 타인이 하는 작업을 감독한다는 의미로 쓰이 고 있으며, 정경운은 벗들이 모두 귀가한 후에 혼자 해인사에 남아 이러한 일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판각이 아닌 편집 작업의 의미로는 해석될 수 없다. 필자의 󰡔남명집󰡕 판본 연구도 이제 완결 단계에 접어들었으므로, 차제에 전체 판본 계통과 판본명에 대한 그 동안의 성과를 정리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