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해외 선교지와 국내 이주민 선교 현장에서 한국어 학습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주민 선교는 유형별로 선교전략을 달리하여 접근해야 한다. 국내 외국인 유학생들은 초기 정착과정에서 한국어 공부에 대한 필요가 크다. 한국어 공부는 선교의 좋은 접촉점이 되지만 큰 수요에 비해 선교를 위한 한국어 교재개발과 공급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선교목적 한국어 교재개발은 학습자인 외국인 유학생, 한국 인 교사, 성경과 일반 내용을 융합한 텍스트와 유학생들의 삶과 학업 현장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한국의 유학생 전도용 한국어 공부 교재로 개발한 본 연구자의 졸고 『세계관 한글공부』 교재를 분석했다. 한국 유학생인 학습자 상황, 세계관 연구방법과 한국어 교육을 접목한 특징, 내용과 구성을 중심으로 교재를 분석하고, 유학생 선교현장에서 교재를 활용한 선교적 적용 및 활용 방안을 제시하였다.
This study is to find out the process of changes concerning the cadastral records that consist of the cadastre, the cadastral map and various registers of land in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cadastre and cadastral map were the most important part of them and became the basis of cadastral records. These two registers were first made out according to the Project of Colonial Land Survey in the year 1912. As the influx of foreign Weights and Measures was greatly influenced by the foreign concession since 1876, the traditional units of the Weights and Measures had abolished finally. The extortion of sovereignty led a rapid change to the Weights and Measures in 1910. Japan compelled us to change into Japanese System of Measurement. From that time on, Lot(筆地) and Pyeong(坪) were settled down on the registers of land.
Wang Hahn-sok. 2015. “A Reflective Confession on my Scholarship: Its Origins, Characteristics, and Achievements”. The Sociolinguistic Journal of Korea 23(3). 3~32. This paper builds on the special lecture that I gave at the 2015 Fall Meeting of the Sociolinguistic Society of Korea. The overall paper takes a kind of narrative form with reflective confession. Specifically, it consists of (1) scholarly genealogy of my study, (2) main characteristics of my study, (3) major achievements of my study, and (4) my special relationships with the Sociolinguistics Society of Korea.
본 연구는 저소득 가정 청소년의 자아존중감이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적 전제하에 강북구 내 방과후 공부방을 이용하는 청소년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교 1․2학년 56명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의 상․중․하에 따른 학생의 자아존중감과 학업성취도 간, 성별에 따른 자아존중감과 학업성취도 간의 상관분석을 하였다. 그 결과 저소득 가정 청소년의 자아존중감이 학업성취도와 유의미한 관계가 있음이 나타났으며 또한 자아존중감이 학업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다중회귀분석을 하여 자아존중감이 학업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이 58.9%로 나타났다. 자아존중감 요인 중 사회적 자아존중감과 가정내 자아존중감, 일반적 자아존중감 순으로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들 요인이 클수록 학업성취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 가정 청소년의 자아존중감과 학업성취도와의 관계를 살펴본 결과 자아존중감을 높게 지각할수록 성적에 대하여 만족하고 있으며 학업성취도 또한 높게 나타났다. 이상과 같은 결과를 통해 본 연구는 자아존중감과 학업성취도 간에 상관관계가 있음이 나타났고 이를 통해 저소득 청소년에게 긍정적 자아존중감과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찾고자 한다. 본 연구의 대상은 강북구 관내 방과후 공부방을 이용하는 56명의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으로 연구결과를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본 연구는 조선후기 실학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고 평가되는 五洲衍文長箋散稿의 구성상의 특징을 살피고, 이와 관련하여 五洲 李圭景(1788-1856)의 공부법 가운데 하나를 밝힘으로써 조선후기 일부 지식인들에게 보이던 지적 풍토를 究明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다음 사항들이 검토되었다.첫째, 기존에 알려진 五洲의 작품 五洲衍文長箋散稿 五洲書種 詩家點燈 이외에 五洲의 손에서 이루어진 다른 서적이 있는가를 검토하였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 대한 분석만으로도 이상 3종 이외에 약 20여종의 서적이 五洲의 저작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그렇다면 이 많은 저작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어째서인가? 이는 무엇보다 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보이는 構成上의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즉, 이 책은 일정한 주제에 관해 沈潛된 사고를 바탕으로 저자의 견해를 피력하는 데에 주안을 두었다기보다는, 일정한 주제에 관해 기존의 관련정보들을 갈무리해두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짧은 기간에 많은 저작을 남긴 것은 오히려 깊이 있는 沈潛이 결여된 成冊 방식이 큰 몫을 한 듯 하다. 셋째, 정보를 갈무리하는 성책방식은 단순한 독서를 통해 이루어진다기보다는 해당 정보를 직접 ‘보유’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크게 활용된 공부법이 바로 抄였으며, 抄는 抄하는 과정에서 정보의 습득을 가져오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정보의 구축, 즉 성책의 수단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五洲衍文長箋散稿라는 책은 五洲가 지녔던 癖에 가까운 抄라는 공부법이 이루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南冥 曺植(1501-1572)의 「神明舍圖銘」은 한 인물이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수양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이겨내는 과정을 다룬 것 으로, 그의 엄격한 수양론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고에서는 남명의 「신명 사도명」을 계승한 남명학파 학자들의 문학 작품 5편을 통시적으로 살펴봄으로 써, 지리산권 가운데 하나인 진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남명학파의 마음 공 부를 이해하는 일단의 실마리로 삼았다. 대상으로는 삼은 작품은 龜巖 李楨의 「神明舍賦」, 東岡 金宇顒의 「天君傳」, 寒沙 姜大遂의 「神明舍記」, 台溪 河溍의 「神明舍記」, 俛宇 郭鍾錫의 「神明舍賦」 등이다. 이 5편의 문학 작품이 가지는 재해석의 면모와 시대적 의미를 고찰해 볼 때, 크게 두 가지 정도로 그 결론을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남명의 「신명도사명」을 각기 계승하되 그것이 함유하고 있는 의미와 중 요성을 저마다의 입지와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5편의 작품 들은 자신의 관점과 시대적 필요에 의거해 「신명사도명」의 핵심을 파악하는 해 석의 각도가 차이를 빚게 되었다. 따라서 부각시키려 한 중심 내용이 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둘째, 남명학파의 계보상에서 저자들을 구분해 볼 때, 그들의 작품이 가지는 의의를 남명학파의 시대적 상황과 연관시켜 가늠해 보게 된다. 구암과 동강의 작품은 ‘남명학의 계승과 전파’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한사와 태계의 작품은 인조 반정 직후 남명학파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봉착하여 ‘학 맥의 수호’라는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면우의 작품은 외세의 침략과 국 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시기에 유학적 마음 수양의 指南으로서 ‘남명의 심학을 천양’한 것이라고 규정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