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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19세기에 중국에서 󰡔依經問答󰡕, 일본에서 󰡔美以敎會問答󰡕, 그리고 조선에서 󰡔미이미교회문답󰡕이라는 제목으로 순차적으로 번역된 미 북감리회 교리문답서를 그 연구 대상으로 하여, 각 판본의 번역 및 출판 과정을 밝히고, 번역 과정에서 기독교 용어가 어떠한 창출·변용·적용의 과 정을 거쳤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865년 매클레이가 번역한 중문본은 영문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기독 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중국인 독자들을 위해서 문제의 내용을 바꾸거나 첨언하는 경우가 있었고, 새로운 문항도 2개 추가되었다. 1876년 소퍼가 번역한 일문본은 영문본을 기본으로 하되 중문본도 함께 참고하면서 용어 에 있어서 약 45%가 중문본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글본에는 2가지 번역본이 있는데, 그 중 플랑시가 수집한 번역자 미상, 연대 미상의 󰡔미이미교회문답󰡕은 1885년 이수정에 의해 번역된 것임이 본 논문을 통해 밝혀졌으며, 이수정역은 일문본을 저본으로 하여, 용어의 약 68% 가량이 일문본과 일치하였다. 이후 1889년 존스가 다시 번역한 󰡔미이 미교회문답󰡕은 영문을 저본으로 하였지만, 중문본과 이수정역에서 차용한 용어가 각각 37%, 17% 정도 되는 등 앞선 번역본들도 참고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수정과 존스가 한글로 창출한 단어들은 현재 대개 사용되지 않고 있 으며 한자 용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이는 용어의 유통에 있어서 는 번역자 뿐 아니라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대중의 역할이 더욱 크다는 것 을 보여준다.
        2.
        2018.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한국 개신교의 초기 출판은 동아시아에서 기독교 선교 역사가 가장 깊은 중국의 출판물들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 뿐 아니라,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계도 일본 출판계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중국 기독교 출판계의 영향력은 한반도에서 서서히 약화되어 갔으며, 「구미 → 중국 → 일본 → 한국」이라는 근대 기독교 출판계의 영향 구조가 「구미 + 일본 → 한국」이라는 도식으로 변화해 갔음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는 「구미 → 한국」이라는 구조로 재편 되면서, 나름의 주체적 기독교 출판의 역량 확보를 도모해가게 된다. 일제하 한국 기독교 출판은 그러한 한계들과 미숙함 속에서도 해방 이후 한국교회의 창출신학이 움트는 모판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감당했으며, 해방 이후 현대 한국교회의 역동적인 신학담론과 저술들이 출판될 수 있는 기틀을 다지는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3.
        2016.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930년대에 접어들어 일본기독교계엔 바르트에 대한 열풍에 가까운 관 심으로 다수의 바르트 신학 관련 번역서들이 출판되었다. 그와 비교할 때, 한국의 기독교 출판계는 선교사들의 통제 하에 기초적인 단계의 신학 및 신앙서적들의 번역소개에만 머물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에 비해 당시의 최 근 신학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 신학 서적들의 번역 소개는 충실히 이 루어지지 못했다. 한국교회에 본격적으로 칼 바르트에 대한 사상이 소개되는 것은 1930년대 초반부터이며, 주로 신문과 잡지에 바르트 신학의 기초 적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해방 전후 한국교회에서 활동한 대부분의 신 학자들은 ‘바르티안’(Barthian)들이었으며, 대부분 1930-40년대에 유학한 일본의 여러 신학교 출신들이었다. 해방 직후 신진 학자들의 칼 바르트 대 표 저작의 번역출판 시도가 있었지만, 6.25전쟁의 발발로 지체되었고, 이후 1950년대까지는 바르트 등의 최근 신학 저술들이 번역 소개되어도 대부분 이미 출판된 일본어 번역서를 모본으로 삼아 한글 번역을 시도한 결과였 다. 그러나 1960년 전후부터는 일본어 번역문의 피동적 수용 자세를 탈피 하기 위해 독일어 원문과 영문 텍스트를 직접 한글로 옮기는 등의 주체적 수용 노력을 보인다. 비록 일제강점기의 한국교회와 기독교 출판은 일본의 신학계와 기독교 출판계의 성과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해방 이후부터는 구미의 신학을 직접 배우고 익혀, 한국인의 정신사와 종교문화에 걸 맞는 번역과 연구 성과들을 출판물로 산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