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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해방공간에서 이승만, 김구, 김규식이 차지하는 위치는 중요하다. 이들은 큰 틀에서 우익진영에 속하면서도 동시에 기독교인이었다. 이 세 사람은 귀국하면서 다같이 기독교인으로서 활동했고, 기독교를 중요한 정치적인 배경으로 생각했다. 이런 우익 3영수의 대열에서 제일 처음 이탈한 사람은 김규식이었다. 원래 중도파였던 김규식은 제 1차 미소공위 이후 미국의 좌우합작 정책에 따라 중도파의 입장을 대변하게 되었고, 이렇게 되자 김규식를 우익의 지도 자라고 따르던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는 김규식의 노선을 이탈하였다. 이승만과 김구는 독립촉성국민회의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1948년 김구가 남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반대하자 기독교인들은 김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였고, 1948년 3월 이북인대회에서 김구는 강력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우익 기독교세력은 김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이승만을 지지하게 되었다. 한국 기독교는 우익 3영수가 기독교적인 정신으로 반공적인 민주주의 국가를 세울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들을 지지하였다. 특별히 공산주의의 학정을 체험한 월남 기독교인들의 발언권이 센 기독교에서 김규식의 좌우합작 주장이나, 김구의 통일지상주의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결국 이승만은 1948년 대한민국의 제1대 대통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