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3

        1.
        2018.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개명산(開明山)에 위치하는 청련사(靑蓮寺)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대표 사찰이다. 청련사는 원래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988번지 종남산(終南山) 무학봉(無學峯) 기슭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다가 근ㆍ현대기 불교 종단의 갈등과 해결책으로 2006년 왕십리에서 양주로 이건(移建) 결정이 이루어졌고 마침내 2010년 6월부터 경기도 양주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청련사에 봉안된 불화는 12건이 현전되고 있다. 현재까지 청련사 불화에 대해서는 학위논문을 비롯한 여러 보고서에 일부 소개된 바 있다. 이 글은 필자가 2017년 청련사 소장 불화를 전수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19세기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는 청련사의 역사를, 불화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청련사에 소장된 불화는 1866년 <치성광여래도>로부터 1970년대 <팔상도>에 이르기까지 주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조성된 불화가 주를 이룬다. 그 가운데 가장 이른 연대의 기록을 보이는 <치성광여래도>는 화기에 복장시주(服藏施主)로 두 명의 상궁 이름이 확인된다. 이어 1880년에 조성된 <아미타불회도>, <현왕도>, <감로도> 세 점은 여러 상궁의 후원 속에 조성된 불화로 의미가 있다. 짜임새 있는 구도, 세밀한 필치, 표현 기법 등에서 불화승 축연의 기량을 살필 수 있는 불화로도 주목된다. 이 외에도 민간인들이 시주와 후원 속에 조성된 불화도 봉안되어 있다. 청련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청련사지(靑蓮寺誌)」에는 1849년 중창에는 시주를 권면하는 상궁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어 5년 뒤에는 왕실의 인척인 홍현주와 영의정을 역임한 권돈인이 불사를 시주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불화의 조성 기록에서 1880년 조성 불화 이외에 상궁이나 왕실의 인사가 후원 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청련사는 왕실 인척이나 당대의 권력가, 왕실과 관련된 상궁들의 불사(佛事) 후원을 집중적으로 받았으며 불화와 불전(佛殿)의 구조상 왕실의 원당으로서의 특징을 보인다. 청련사 불화는 19세 말~현대에 이르기까지 청련사의 역사를 고증하는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19세기~20세기까지 불화의 도상과 양식적 특징, 후원자와 화승을 총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중의 하나로 의미가 깊다.
        9,800원
        2.
        2018.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양주 청련사의 조선후기 불교조각 가운데 1670년에 조성된 대웅전의 아미타삼존상과, 1651년에 조성된 원통보전의 관세음보살상을 다룬 것이다. 이 두 조각상은 2017년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친 복장 조사를 통해 제작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웅전의 아미타삼존상은 1670년(강희 9, 庚戌)에 수조각승 녹원(鹿苑)을 비롯한 인종(印宗)ㆍ도운(道云)ㆍ유경(唯敬)ㆍ사운(思運)ㆍ성심(性諶) 등 6명이 참여해 조성한 17세기 후반의 불교조각으로, 확실한 조성 연도와 조각승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청련사 아미타삼존상은 1670년에 조성된 이후 1913년과 2000년에 개금불사가 이루어졌으며, 1940년에 복장품 일부는 도난되었다. 청련사 관세음보살상은 1651년(효종 2, 辛卯)에 전라도 흥양현 팔영산(八影山) 지장암(地藏庵)의 좌협시보살로 조성된 사실이 조성발원문에 기록되어 있다. 조성발원문의 내용을 통해 아미타삼존상 가운데 좌협시보살로 조성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1940년에 개금ㆍ중수하였던 원문(願文)이 발견되었다. 청련사 원통보전의 관세음보살상이 어떠한 이유로 청련사로 이안(移安)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조선 말기에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왕실 관련 사찰에 여러 지역의 불상들이 이동된 경우가 많았던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양주 청련사의 관음보살상도 화계사와 흥천사처럼 왕실과의 인연으로 고흥능가사의 지장암에서 청련사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9,000원
        3.
        2018.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양주 청련사는 2010년 이전까지 서울 하왕십리 무학봉 바위절벽 아래에 있던 사찰이다. 태고종에 속한 청련사는 조계종과 소유권 분쟁 과정에서 조계종의 승려가 하왕십리의 사찰 구역을 건설업자에게 매각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양주로 이전 건립하게 되었다. 근래까지 안정사라고도 불렸던 청련사의 역사는 1940년대에 만들어진 「청 련사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지에 수록된 조선시대의 상량문 등의 기록에 따르면 청련사는 신라 흥덕왕대에 창건되었다고도 하고, 조선초기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하였다. 흥덕왕대 창건설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는 당시가 중국으로부터 선(禪)이 전래된 시기였다는 점에 주목하여 서술하였고, 조선초기 창건설의 배경으로는 무학대사가 종남산 서쪽 계곡에 있던 사찰을 동쪽으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서술하였다. 청련사는 조선시대에 다섯 번의 중창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 두 번의 중창이 있었다. 이때까지의 중창은 홍수 혹은 화재로 무너진 건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2010년 여덟 번째의 중창은 사찰 부지를 옮기는 대작불사였다. 이때의 중창은 주지로 있던 백우대사가 주도하였다. 이로써 청련사는 천년 동안 이어온 전통을 양주 계명산 자락에서 다시 계승할 수 있게 되었다.
        8,3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