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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연세대 학술정보원에 소장되어 있는 『여유당집(與猶堂集)』을 대상으로 서지적인 측면에서 몇 가지 사항을 검토하여 본 것이다. 연세대본 『여유당집』은 1책으로 된 필사본으로 다산 정약용(丁若鏞 )의 시문(詩文)을 싣고 있는데 이 책 안에 다산의 형인 정약전(丁若銓)의 시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연세대본 􋺷여유당집􋺸은 형태적인 특징이 다산 자신이 만년(晩年)에 정리하였다고 하는 가장(家藏) 고본(藁本)의 체재와는 다르며 다산과 제자들 사이에서 생산된 친필본(親筆本) 계통에도 속하지 않는다. 필사기와 수록 작품의 내용을 보아 편집하고 필사한 년도는 1812년으로 보인다. 이 책의 구성은 <여유당집(與猶堂集)>, <여유당시집(與猶堂詩集)>, ‘의(議)’ 작품, 관문서(官文書)의 순으로 실려 있다. <여유당집>에는 중형인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 9편과 「잡설(雜說)」 1편으로 되어 있고 「잡설」에 대한 정약전의 글이 부록으로 들어가 있다. <여유당시집>에는 다산의 작품과 함께 정약전의 시 작품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의’ 작품들도 정약전의 「송정사의(松政私議)」와 함께 다산의 ‘의’ 3편이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 관문서 3편은 모두 정약전이 유배 생활을 하던 흑산도(黑山島)와 관련된 문서들이다. 본문 내용을 『여유당전서』와 대조하여 보면 연세대본 『여유당집』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의 어구들이 축약되어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수록되어 있고, 문자 상의 차이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여유당전서』에 나오는 어구들이 이 연세대본에는 생략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 다산 저술의 전승과정에 또 다른 이본(異本)이 존재하여 『여유당전서』의 편찬 과정에 수용되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연세대본 『여유당집』은 정약용과 정약전의 유배 시기에 이 두 사람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인물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정약전의 시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는 점 외에도, 정약용의 작품이 후대에 간행된 『여유당전서』와 본문 내용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다산의 생애나 작품의 연구, 다산 저술의 전승과정을 규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2.
        2012.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산문 몇 편만 알려졌던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의 시문집이 발견되었다.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된 뒤에 자주 시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번에 소개하는 『여유당집(與猶堂集)』은 두 형제가 이 시기에 지은 글들을 수집하여 필사한 책인데, 여기에 실린 글 가운데 「송정사의(松政私議)」를 제외한 정약전의 글들은 지금까지 소개된 적이 없었다. 『여유당집』의 첫 부분 「여유당집」에는 정약용이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上仲兄書)가 9편 실렸다. 그 뒤에 실린 「잡설(雜說)」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생활에 대한 보고서를 정약전에게 보내자, 정약전이 그에 화답하여 지은 것인데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실리지 않은 글도 있다. 두 번째 부분인 「여유당시집(與猶堂詩集)」에는 정약용이 강진에서 지어 정약전에게 보냈던 시 22제(題) 37수(首)가 실려 있다. ‘이하 손관(以下 巽舘, 가칭 정약전시문집)’에는 정약전이 지은 시 32제 40수가 실려 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보면, 「여유당집」과 「여유당시집」· ‘이하 손관(가칭 정약전시문집)’을 함께 필사한 편집자는 강진의 정약용이 흑산도의 정약전에게 보낸 시문과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지은 글들을 함께 편집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정약용과 달리 정약전은 섬의 어부나 나무꾼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지냈다. 또 이들과 시를 주고받기도 했다. 정약용은 그곳 주민들을 ‘오랑캐 같은 섬사람’이라 표현했지만, 정약전은 나무꾼 고기잡이들과 기쁘게 친구가 되었다. 왕조실록에 나오는 흑산도는 대부분 유배지였는데, 유배 온 문인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섬의 자연을 노래하였을 뿐, 그 섬의 사람들과 어울려 시를 짓지는 않았다. 자신과 섬을 별개로 여기고, 자신은 잠시 있다가 떠날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정약전은 흑산도와 하나가 되어, 흑산도를 문학의 현장으로 승화시켰다. 『玆山魚譜』가 어부들과 함께 쓴 물고기 생태학 보고서이고, 「송정사의(松政私議)」가 나무꾼들을 위해서 제출한 정책건의문이라면, 정약전 시문집은 어부나 나무꾼들과 친구가 되어 주고받은 흑산도 16년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