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14

        1.
        2022.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유학(儒學)의 핵심을 덕(德)으로 상정하여,『논어(論語)』의 덕(德) 과 연관한 도(道)⋅인(仁)⋅예(藝)와의 용례 분석에 기초하여 덕교육적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이는 도덕적 실천과 윤리적 가치의 다원성 및 사회공동체 의 역사문화적 배경 등을 견지하는 현대 덕 윤리학의 관점을 지지하는 연장 선상에서, 전통 교육이 표방하는 덕교육적 의미를 강조하고 지금의 교육을 성 찰하기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道)는 자연에 관한 이치를 표방하는 반면, 덕(德)은 인간을 주체로 하여 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공부를 하여 도를 이해하고 실행하 여 실제로 내 마음에 얻은 것을 덕이라고 하듯이, 공공(公共)의 가치와 지향점 을 체득하게 된다면 바로 도를 깨우친 덕인(德人)이 된다. 따라서 도는 덕에 의해 보다 구체화 된다. 인(仁)은 덕목 중의 하나로서 위계구조상 덕의 하위 범주에 해당하며, 덕의 속성과 특징으로도 논의된다. 그러나 『논어』의 핵심을 인으로 상정하고, 인을 구체적인 인간과 인간다움을 기반으로 이해하자면, 인은 모든 덕의 기초이자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 예(藝)는 예술이나 문예 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인을 중심으로 하 여 구체적인 실천 덕목을 이행하고 실현함으로써 덕을 함양하고자 하는 도덕 군자를 주체로 하자면, 예(藝)는 군자가 탐구하는 유학의 학문으로서, 도덕적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덕교육적 교과 영역이나 교과 내용이다. 『논어』의 덕은 구체적인 실천 덕목과 확연히 차별화되어 진술되고 있지 않 고 있으며, 덕과 덕목 간의 위계구조 역시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논어』의 덕은 인(仁)을 중심으로 하여 실천 주체와 대상 또는 덕목 간의 관계성 측면 에서 중층구조를 띄고 있으며, 도(道)를 이해하고 깨우침으로써 공공(公共)의 가치와 선(善)을 지향하고 언행일치를 도모하는 등 일상생활에서의 지속적인 이행과 함양을 촉구한다.
        6,600원
        2.
        2022.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와 그 제자의 언행을 기록 한 유가 학파의 경전이다. 그 내용의 대강은 공자의 정치사상 과 도덕 관념 및 교육 원칙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논 어』는 중화민족 문화와 지혜의 결정체이다. 그러나 그 속에 내포된 교육적 내용은 창조적 발전과 혁신적 전환을 거쳐 왔 다. 이러한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대학생들의 사상문화 교육을 융합시키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논어』 에 내포된 ‘인애’ 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당대 대학생들의 우수 한 품격을 함양할 것이며, 아울러 우수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양시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본문에서는 ‘인(仁)’이라는 글자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 ‘인(仁)’자에 대응하는 해석을 정 리하였다. 그리고 『논어』에 내포된 ‘인애’ 사상과 공자 ‘인애’ 사상의 현대적 가치를 분석하였다. 또한 『논어』의 ‘인애’ 사 상과 결합하여 현재의 중국 대학생들의 사상교육에 시사점을 제공하였다. 마지막으로 공자 ‘인애’ 사상이 사상교육에 이입되 는 경로에 관해 연구하였다.
        6,100원
        3.
        2018.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이므로 孝는 전통사회의 秩序 維持에 매우 중요한 要因으로 작용해 왔다. 孝의 槪念은 『論語』이전에 이미 존재했었지만 중국사회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논어』에서 起因한 것이라 보며, 이론 정립도 孔子에서 비롯되었다. 孝 槪念의 多樣性에서 보면, 全人性, 宗敎性 및 生命性이 있으며 효 개념이 함의한 生命 重視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孝 思想은 儒學의 근본이 되는 德目으로서, 孔子에 의하여 심화되고 동 아시아 사회에 영향을 끼쳤으며 가정에서의 부자관계에서 출발하여 사회에서의 忠恕로 이어지고 국가에서는 孝治로 연결되어 갔다. 공자 사상은 ‘人間의 社會性’에 있으므로, 仁道에 기반을 둔 ‘孝와 忠恕의 精神’을 바르게 구현한다면, 온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는 原動力이 될 것이다 『논어』에서 효의 範圍는 ‘生前의 孝’ 와 ‘死後의 孝인 追遠’으로 분류하 고, 人性敎育의 영역까지 확장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효의 方法은, 養口體 에서 시작하여 養志에 까지 이르러야 하며, 愼終追遠을 통하여 德治로 나아갔으니, 공자의 治國의 기본은 바로 孝 思想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효의 최종 目標는 인간의 본질인 仁을 구현하는 것이다. 『논어』에 나타난 효행을 고찰해 보면, 민자건·증자의 효행을 통해 칭 찬을 하였고, 17명의 제자들의 ‘효란 무엇입니까?’ 라는 30개의 질문에, 孝는 無違, 以禮, 恭順, 恭敬, 色難, 敬忠勸, 爲政, 見義不爲 無勇也, 祭 如在祭, 不怨, 遊必有方, 三年無改, 父母之年, 德治, 不敢毁傷, 不敢不 勉, 人不間, 聞斯行之, 君君, 臣臣, 父父, 子子, 崇德, 直, 三年之喪을 지키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대답하셨다. 孔子의 核心 思想은, 仁과 孝인데, 이를 실천하는 근본 덕목으로는 克己復禮, 孝悌忠恕, 有敎無類, 正敎一 致, 正名思想, 奴隸制度, 述而不作, 道德心 回復, 感恩意識, 推己及人, 父慈子孝, 追養繼孝 등이 있다. 『논어』에 나타난 효행들을 고찰하여 “내 부모를 잘 섬겨서 남의 노인에 까지 미치고, 내 아이를 사랑하여 남의 자녀에게 까지 이르게 한다.” 면 한국의 사회문제, 청소년 문제, 환경문제 등이 해결될 것이다. 時代에 맞는 자발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함으로써 개인의 人格完成과 社會秩序의 확립 및 人類愛까지를 孝로 간주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형식적이고 비효율적인 효를 止揚하고, 자발적이며 실천이 가능한 ‘효 실천방안’을 마련하여 한국인의 효를 學問的으로 體系化하 고 普遍化시키며, 倫理的인 덕목으로 개발시키는 데에 그 意義를 두었다.
        7,000원
        4.
        2016.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修辭(수사)의 사전적 의미는 修辭가 文彩(문채: figure)의 분류 기준이 됨을 뜻하므로, 사실 상 修辭의 범위를 문법학적으로 제한함을 뜻한다. 그런데 孔子(공자)는 修辭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고 나아가 언어적인 측면보다 실천의 측면을 더욱 강조했으므로, 사전 적 의미로서의 修辭 개념에 전면적으로 대치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左傳(좌전)에서 공 자는 오히려 말을 하지 않으면 그 뜻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강조하며, 언어표현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修辭學(수사학)에 있어서 ‘修辭’는 “修辭立其誠(수사입기성)”이란 구절에 기 인하고, 이는 “말을 닦음에 그 성실함을 세운다.”는 것이니, 이는 그간 인지되어온 修辭의 사 전적 의미와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修辭의 어원과 그 의미 나아가 修辭가 활용된 空間(공간)의 유형에 대해서까지 섭렵하기로 한다.
        4,800원
        5.
        2016.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작품과 본인의 뜻이 완전하게 부합되는 경우는 引詩 본연의 존재의의이자 주된 목적이라 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引詩의 목적이 자신의 말에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논리적 인 측면이나 이해도 측면에서도 모두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論語』에서 孔子와 그의 제자들은 자신의 뜻을 보다 명확하게 피력하기 위하여,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지 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응용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전혀 맥락이 상통하지 않는 즉 앞뒤가 서로 통하지 않는 斷章取義나 牽强附會의 방법까지도 쓰고 있다. 여기에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공자는 그러한 제자의 모습을 보고 극찬을 아끼 지 않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論語』의 引詩 용례들을 먼 저 살펴보고, 그 본연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파악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나아가 引詩 용례와 중국 고대의 수사학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4,900원
        6.
        2016.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한자교육을 정규교육과정으로 편성하여 교육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자교육을 통해 어휘력을 신장할 수 있고 문해능력 및 학습능력이 향상될 뿐 아니 라 우리의 정체성 확립과 인성교육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자교육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적절한 교재의 선정과 교육방법 등의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초등학교에서는 한자와 관련된 교육과정 자체가 부재하고 국가적 수준의 교육용 기초 한자마저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활용되어 온 교재에만 머물지 말고 한자문화권 아동들이 사용하는 초보적인 교재에도 눈을 돌리는 시도가 필요하다. 현재 중화문 화권의 아동들의 경전교육의 가장 기초교재인《弟子規》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에게 적용할 만하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교과를 재구성하고 창의적 체험활동의 자율활동 시간 등에 실험적으로 접근해 본 결과, 보완을 거친다면 충분히 적용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弟子規》는 청나라 때부터 현재까지 아동경전교육의 기초교재로 중화문화권에서 애용되고 있 는 책으로 3字1句, 4句1意의 형식으로 전체가 360구, 1080자밖에 되지 않는다.《弟子規》는《論語ㆍ 學而》 제6조를 근간으로 하여 공자의 핵심사상을 서술하였다. 《弟子規》는 우리 아동들에게 필요한 한자학습을 쉽고 재미있게 인도하는 기초 입문서이며 도덕 교과서이기도 하다. 이 책의 장점은 우선 첫째로 단순히 한자의 낱자를 배워 익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 글자만으로도 여러 형태의 문장이 만들어지는 것을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운율과 일정한 대우ㆍ대구 규칙이 있어서 암송과 한문 문장의 구조파악이 쉽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우리나라 교육용 한자와의 상응도가 아주 높고 비교적 획순이 적은 한자를 사용하였 기에 아동들이 입문기에 알아야 할 상용한자를 쉽고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점이다. 셋째,부모님과 주변 사람을 대하는 태도, 바람직한 행동과 생활태도 등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여 지식 축적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성교육까지 함께 도모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사상 및 문화와 관련이 깊은 유가의 핵심과 기초사상을 알 수 있고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서 동양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궁극적으로 한자 교육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계몽교재로 《弟子規》를 초보적인 단계에서 활용할 것을 적극 제안한다. 이를 위해 뜻을 같이 하는 교사들과 연구자들이 모여 아동들의 발달 단계와 교과내용을 고려한 교재 연구 및 효과적인 교수방법ㆍ교수 자료를 함께 계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6,400원
        7.
        2014.0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茶山의 나이 52세 때인 1813년에 완성된『論語古今注』는 실로 二千年 論語學史에 있어서 획기적인 저작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당세와 후세에 끼친 영향력에 있어서는 주자의 『논어집주』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탐구의 깊이나 철저한 고증 력에 있어서는 『논어집주』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 大作이라 해도 전혀 과언이 아 닐 것이다. 이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과 검증은 茶山 論語學의 성격을 더욱 명확히 하고 가치를 밝히는데 있어 굳건한 토대를 만들어 줄 것이다. 본고에서는 [質疑 68]에서 [質疑76]에 대해 검토하였다.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질의68]은 주자의 仁在心內說을 부정한 것이다. 다산은 여러 저술에서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측은․수오․사양․시비지심이고 理가 밖으로 발현되어 行事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인의예지라고 생각하였다. [질의69]는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의 ‘歸’에 대해 주자가 집주에서 “歸, 猶與也”라고 한 것에 대해 이의를 표시한 것이다. 주자에 의하면 여기서의 ‘歸’는 ‘허여하다’․‘칭찬하다’․‘칭탄하다’ 등의 의미가 된다. 다산에 의하면 ‘歸’는 ‘歸化’ 의 의미가 된다. [질의70]은 주자가 “爲之難, 言之得無訒乎?”의 句에 대한 주자의 풀이가 공자 의 원뜻과 합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다산이 이의를 표시한 것이다. [질의71]은 “膚受之愬”에 대한 주자 注에 이의를 표한 것이다. 주자의 해석에 의하면 “부수지소”는 현재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고, 앞의 “浸潤之譖”은 현 재는 그 현저한 효과가 없으나 서서히 그 효과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다산은 “침윤지참”과 “부수지소” 모두 그 효과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으로 종국에는 엄청 난 파국을 낳는 것으로 보았다. [질의72]는 “足食, 足兵, 民信之矣.”에 대한 주자의 주에 다산이 이의를 표한 것이다. 주자는 足食과 足兵이 民信의 선결조건으로 보았다. 그러나 다산은 이 세 가지가 각각 하나의 일로, 서로 연관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질의73] 역시 (12-7)의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에 대한 주자의 주에 동의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주자는 임금과 백성이 지배와 피지배라는 수직적 관계를 중시하여 이 구절을 이해하였다. 그러나 다산은 백성과 지도자는 신뢰를 가운데 두고 대등한 관계에서 상호 작용하는 존재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질의74]는 “惜乎夫子之說君子也駟不及舌”의 句에 대한 주자의 독법에 대해 다산이 이의를 표한 것이다. 주자에 따르면 이 구절의 표점은 “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이 된다. 다산은 “惜乎夫子之說君子也.”를 9자 一句로 보았 다. 다산에 따르면 표점은 “惜乎! 夫子之說君子也.”가 된다. [질의75]의 논의는 文質論의 일단이다. 경문에 따르면, 극자성은 重質輕文論者 에 속하고 자공은 文質幷重論者에 속한다. 주자는 文質을 本末 관계로 보았기 때 문에 자공의 문질론은 공자의 문질론과 어긋나는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다산은 자공의 뜻이야말로 공자의 문질론과 일치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질의76]은 “誠不以富, 亦祗以異.”에 관한 程子의 착간설에 이의를 표한 것이 다. 다산은 정자나 주자처럼 착간으로 보지 않고 본문 가운데서도 단장취의로서의 의미로 충분히 성립되는 것임을 증명하였다.
        8,100원
        8.
        2011.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女論語≫是由唐代宋若莘和宋若昭姐妹所纂的一部女性訓誡書籍。宋 若莘根據儒教經典≪論語≫來作了≪女論語≫十章,後來宋若昭注解訂正了 十二章,這就是現存的≪女論語≫。 作者宋氏姐妹是獨身女性。根據≪舊唐書≫卷五二≪后妃傳≫和≪新唐 書≫卷七七≪后妃傳≫,她們是書香門第,從小受到父親良好的教育之後, 爲了揚名顯父,不結婚入宮作為學士先生。她们入宫之前寫成≪女論語≫。 到了明末清初,王相把中国封建社會四種歷代代表性女性教育書(東漢的≪ 女誡≫,唐代的≪女論語≫,明代的≪內訓≫,≪女範捷錄≫)編輯在一 本,起名為≪女四書≫。 ≪女論語≫全书共12章:〈立身〉、〈學作〉、〈學禮〉、〈早起〉、 〈事父母〉、〈事舅姑〉、〈事夫〉、〈訓男女〉、〈管家〉、〈待客〉、〈和 柔〉、〈守節〉,其核心内容主要包括:女性自身的修養,跟家人親戚鄰居 之間的人人際關係和處世,家庭裏的家事和責任。 全書的內容主要通過對比形式來強調著婦女要堅持的態度,這種表現手 法除了第九章和第十二章以外,大部份都適用這種對比方式。還有書的特徵 之一是先提示婦女們該遵守的賢婦的事項,然後告訴我們婦女“莫學”的內 容。特別把懶婦、愚婦、蠢婦、潑婦等的特徵來,提醒著中國古代賢婦女性的 生活態度。 這種女性教導教材的出現,跟中國悠久的封建社會的傳統認識和文化有 密切的關係。其核心有像“乾剛坤柔”、“男陽女陰”的傳統宇宙觀和把女子不 太重視的儒學思想。向後對≪女論語≫的多樣的研究結果,讓我們提醒男女 平等的意義和價值。
        5,800원
        9.
        2011.01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一、序言 茶山丁若鏞(1762-1836)是能代表朝鮮儒學者。他在52歲時(1813),以自己精湛無比的知識,完成了一共四十卷的《論語古今注》。雖然,此書還沒能在中國和日本等漢字文化圈學界廣爲流傳,但對《論語》每一字句縝密而精確的分析研究,毫不遜色於多達兩千餘種的古今所有的有關《論語》的任何專著。筆者認爲,丁若鏞的此書與何晏的《論語集解》、朱熹的《論語集注》可以媲美的。何晏和朱熹與歷來注釋家一樣,潛心於探究《論語》每一字句中所蘊含的孔子的本義。但是,如衆所周知,何晏的解釋深受風靡當時的玄學的影響。朱熹的解釋也多處可見當時盛行的道學派的性理說思想。因此,從某種意義上講,他們是爲了宣揚的自己的思想而借用了《論語》的威望。但是,丁若鏞像乾嘉年間的一些訓詁學者一樣,沒有受任何思想上的影響。正如他本人所說一樣:“唯是是求,唯是是從,唯是是執”1 對這一章節衆說紛紜,因此不好把握其原義意。崔述在《洙泗考信錄》,趙翼在《陔餘叢考》進行了比較詳細的辨證。他們認爲;這事與史實不符,是《論,這是他所堅持的基本態度,所以比較接近于孔子的原義。筆者在這篇小論文,擧出能看見丁若鏞論語說之特色的三條來與讀者一起討論。二、本論 1) 丁茶山說: 曰東周者,東魯之隱語也。公山弗擾畔季氏,以扶公室,故孔子欲遷公室,據費邑以爲東魯,如東周也。 這條精義是對陽貨篇的「公山弗擾以費畔,召,子欲往。子路不說,曰,“末之也已,何必公山氏之之也?”子曰,“夫召我者,而豈徒哉?如有用我者,吾其爲東周乎?」而發的。對這一章節衆說紛紜,因此不好把握其原義意。崔述在《洙泗考信錄》,趙翼在《陔餘叢考》進行了比較詳細的辨證。他們認爲;這事與史實不符,是《論1見《與猶堂全書》第一集十九卷二十九頁〈答李汝弘載毅〉語》的編撰者們濫錄後來捏造的文章,所以不可取。陳天祥在《四書辨疑》中主張公山弗擾和公山不是一個人。相信這是歷史事實的學者當中,對公山弗擾邀請孔子的時間持不同的態度。定公五年說是孔安國,邢昺等的主張,定公八年說是江永, 黃式三,錢穆,範希春等的主張,定公九年說是翟灝,劉寶楠,方騎齡等的主張。 丁若鏞同意五年說。其中劉寶楠的論證最爲切實,但《論語正義》中有詳細的記載,故在此省略引文。 對“吾其爲東周乎?”也有截然相反的兩種主張。 一個是‘興周道于東方說’,是邢昺,朱熹等後世學者比較贊同的孔安國主張。 這裏又有問題,‘興周道’的主體是誰?是把當時周王請到費,興起周道的意思呢,還是幫助公山弗擾實現周道的意思?丁若鏞則認爲魯定公就是興起的主體。再一個就是把‘其’認爲‘豈’的通假字,把東周理解爲當時衰敗的周朝,理解爲“如果有人錄用我,我怎麽會讓那個國家象衰落的東週一樣呢?” 這是程顥和程頤的 “不爲東周說”。2 夷狄,謂用夷狄之道也。諸夏,謂用諸夏之法也。君不君,臣不臣,是亦夷狄丁若鏞否定了以上兩種解釋,提出了新的主張。說: 吾其爲東周者,欲以魯君,東遷於費,以爲東魯。寧以魯國付之三家,如西周之賜秦然,猶有愈於今日。……時三家分魯, 祿去公室。……不狃之畔,畔季氏, 非畔魯也。孔子欲往, 雖其戲言,本不害義,其畢竟不往者,陽虎本是亂人,不狃亦出私怨,皆非公正之憤,終恐事敗徒取禍耳。 然若使不狃能深信聖人,一聽其計,則孔子當迎定公,遷都費邑,盡收魯東郊之地,以強公室。仍以故國付之三桓,即田賦子弟,悉反公室,而三桓徒擁虛器,不久自殘,此必然之勢也。 曲阜在魯西偏,一失費則魯不足觀。 聖人心上,有此商量。直以虎與不狃, 皆不足與謀大事,故戲言欲往,而畢竟不往。其雲欲往者,戲也。其雲吾其爲東周者,非戲言也。…… 竊嘗思之,當時三桓,族黨甚盛,蟠根錯節,久於曲阜,一朝不可盡殺。況先王之法,公族不翦,孔子雖得勢,必不欲濫殺公族。然則坐於曲阜, 革其僭亂,反其田祿,雖聖人不能爲也。必遷邑於巖險之城,別剏朝廷,以新一世之耳目,然後乃可以定其局,此所以東周爲上策也。東周者,東還之隱語也。 興周道于東方,豈知痛癢之語乎? 據丁若鏞的主張,孔子要應於公山弗擾的邀請是假的,把曲阜讓給季氏,和魯定公一起,去費建立新的國家的想法是真的。這說明瞭丁若鏞對當時季氏的僭濫懷有強烈的不滿,與把八佾篇的“夷狄之有君,不如諸夏之亡也。”句所論同軌。丁若鏞在八佾篇說:2參考程樹德《論語集釋》 1195頁. 而已。安于夷狄,而苟保君位,不若遵先王之法,修華夏之禮,而不保其君位也。昭公二十五年,祭於襄公,舞列不備,只二人而舞公,盡赴季氏以舞大武,衆萬于季氏。昭公怒,欲誅季氏,議於子家駒,事敗,公奔齊,孔子亦適齊,魯遂無君。國人皆咎昭公,孔子明其不然曰,與其君不君臣不臣,安于夷狄而苟保君位, 不若誅亂討賊,以修諸夏之法,而失其君位也。 於此可見,丁若鏞解釋經文時,非常重視歷史背景的傾向。但丁若鏞把東周解釋爲魯之隱語的主張,與其說是根據事實,不如說是依據蓋然性的推論。 2) 丁茶山說: 曰上智下愚,非性品之名。守善者,雖與惡相狎習,不爲所移,故名曰上智。安惡者,雖與善相狎習,不爲所移,故名曰下愚。若雲:人性原有不移之品,則周公曰:“唯聖罔念作狂,唯狂克念作聖。”爲不知性者也。 這是對陽貨篇「子曰,“性相近也,習相遠也。”子曰,“唯上知與下愚不移。”」章的詮釋。首先,丁若鏞認爲上智和下愚不是品行的名稱,從而否定了荀悅,韓愈等的性三品說。孔子旣說了上智和下愚,後人認爲既然有上下,自然也會有中,因此才有了性三品說。錢坫的《論語後錄》裏,有著翔實的紀錄。3 性者,本心之好惡也。習者,聞見之慣熟也。……好德恥惡之性,聖凡皆同。以此之故,本相近也。兩人之賢不肖,本相近,親賢狎小之習,甲乙有殊,以此之故,終相遠也。兩人之賢不肖,隔千里。…… 明於利害曰知,暗於利害曰愚。知愚所以謀身,非性之品也。上知,雖與惡人相習而不受染汙, 下愚, 雖與善人相習而不受薰陶, 是不移也。…… 孔曰: “君子慎所習。”案孔之此注,深中經旨,毫髮不錯。……習也者,親習也,熏習也。非謂本人習於爲善,習於爲惡也。周書數紂之惡曰:“乃惟庶習逸德之人, 同於厥政。”月令曰:“貴戚近習,毋有不禁。”孔氏之雲慎所習,此之謂也。不移,謂不爲人所移,非謂本人堅坐一處也。……下愚之不移者,不移於善也。今乃曰下愚之人,生於下層,到死不移一步,有是理乎。……知愚者,知慧之優劣,知愚非丁若鏞認爲,這裏的智愚是“明於利害曰知。”“暗於利害曰愚。” 因此,知愚是關於處世的態度而不是性品說。 所以他說:“智愚所以謀身, 非性之品也。” 他又對性和習也提出了獨特的見解。即 “性者,本心之好惡也。習者,聞見之慣熟也。” 因此,把“性相近”解釋爲“好德恥惡之性, 聖凡皆同。以此之故,本相近也。”下面引用一下丁若鏞的主張。3言性者三家, 孟子言性善, 荀子言性惡, 揚子言性善惡混. 三家混者也, 劉向合之, 荀悅因向意定性三品, 蓋兼用三家矣. 性也。上知下愚一節,只就習遠上立論,非就性近上添說也。上知下愚,其性亦相同,特其知慧有優劣耳。執孝子而問之,舜曰善,蹠亦曰善。執叛臣而問之,舜曰惡,蹠亦曰惡。此以是非之心,明性善。譽之曰廉,則暴客亦悅。駡之曰淫,則冶婦亦恥。此以羞惡之心,明性善。上知下愚之同一性如此。惟舜習見頑嚚而不爲所染,蹠習見惠和而不爲所化,斯其所謂不移也。若論其進德修業之層級,則舜自耕稼陶漁,以至爲帝,無不取於人爲善。其步步移動,一息不停可知,何以謂之不移也。惡人之日進其惡,亦當如此。世豈有生來成熟,無復可移者乎? 對“唯上知與下愚不移” 章的闡釋,雖然多半是爲了達到孔子的原義意。 但也不能否定是基於自身的主觀哲學。因此,丁若鏞之以性善說爲基礎的性嗜好說,也是一種主張。因爲,從孔子的這一句話,無法判斷孔子是性善論者,還是性惡論者,或者是性有善有惡論者,還是性無善惡論者。但是,性三品論者主張性是天生的是不可改變的,以及“所謂性者,兼氣質而言也。氣質之性,固有美惡之不同”的朱熹的見解,似乎與孔子的原義之間都有一段距離。丁若鏞作爲其例子舉論了《尙書多方》中的周公之言“唯聖罔念作狂,唯狂克念作聖。”是說, 一個明哲的仁,若凡事不能常加思慮,就會變成一個狂妄的人,一個狂妄的人,若能凡事思慮,一樣能成爲明哲的人。孔子不會理解不了周公的這句話。如《尙書》中的〈堯典〉〈皐陶謨〉〈甘誓〉等篇是在孔子以後之作,但〈多方〉以及〈大誥〉〈康誥〉〈酒誥〉〈梓材〉〈召誥〉〈洛誥〉〈多士〉〈無逸〉〈君奭〉〈立政〉〈顧命〉等 12篇, 無疑是西周時期的作品。4 4參照屈萬裏《尙書釋義 ․ 敍論》 那麽上智和下愚就有可能不是 ‘不移’或 ‘不能移。’ 而是‘不肯移。’ 這‘不肯移’三個字, 是丁若鏞說的核心。丁若鏞主張“不移”不是‘不可移’,而是 ‘不肯移’。幷舉出了‘不可移’說的弊端曰: 生而聰慧者,將自傲自聖,不懼其陷於罪惡。生而魯鈍者,將自暴自棄,不思其勉於遷改。今之學者,以聖爲天,決意自畫,皆此說禍之也。丁若鏞的此主張, 可能是很接近孔子的原義。 三、 結論 1)丁若鏞認爲“爲東周”,表現了把被三家奪去主導權的魯國首都,遷至公山弗擾挑起叛亂的費地,重建了第二個周室的孔子的政治希望。 這主張雖沒有決定性的證據,很可能是歷史的眞實。 2)丁若鏞主張‘上智’是守善者,下愚是安惡者。上智者,雖與惡相狎習,不爲所移,下愚者,雖與善相狎習,不爲所移。我們以後世人的眼光,考察了丁若鏞的論語說。首先,丁若鏞拋開所有的成見,以“唯是是求,唯是是從,唯是是執”的返本主義的態度,探究了論語的原義。結果,原義求索上,取得了一定的成果。但是,因爲有關這些的孔子的言論過於簡略,並且時隔孔子的年 代太遠。因此,不管怎樣標榜原義,不知不覺之間,會加進去自己的主觀見解。丁若鏞的論語學的卓越性是不能否定的,但他也沒能從這些問題得以擺脫。1參照屈萬裏《尙書釋義 ․ 敍論》
        4,000원
        11.
        1996.11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0,800원
        12.
        1994.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7,000원
        13.
        200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곽종석(1846-1919)은 조선이 멸망할 즈음에 살았던 문장가이자 사상가이며 또한 애국지사였다. 곽종석은 사서오경에 대한 경학적 견해를 다양하게 남겨놓 았는데, 특히 그의 논어학은 주목할 만하다. 곽종석 논어학의 특징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주자학파의 주석 에 대한 정밀한 검토이며, 둘째는 경문의 독자적 해석, 셋째는 ‘心卽理’사상에 의거한 『논어』 해석 등이다. 곽종석 논어학의 이러한 세 층위는 그의 논어학이 가지는 특징인 동시에 조선논어학사에서 일정한 위상을 점유하고 있다. 이 중 첫 번째 특징인 주자학파의 주석에 대한 정밀한 검토는 조선주자학파 논어학의 보편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경문에 대한 독자적 이해와 심즉리 사상에 의거한 『논어』 해석은 퇴계학파의 경학적 전통안에서 충분하게 논의될 수 있는 지점이다. 퇴계는 주자 경학의 충실한 계승자였지만 동시에 독자적으로 경문을 해석하기도 하였으며, 곽종석의 스승인 이진상은 심즉리설을 주장하면서 『논어』 해석에서 이를 근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곽종석의 독자적 경 문해석과 심즉리설에 의거한 『논어』 해석은 모두 그가 스승으로 삼은 퇴계와 이진상의 󰡔논어󰡕 해석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곽종석의 논 어학을 조선주자학파, 더 좁게는 퇴계학파 논어학의 계승자적 지점에서 그 위상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14.
        2002.0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wo books have recently been published to argue for diametrically opposite views. One is『Gongjaga jugeoya naraga sanda(The Nation will prosper once Confucius dies)』, which argues for the negative impact of Confucianism on the nation's culture. The other is 『Gongjaga salaya naraga sanda(The Nation will prosper once Confucius becomes alive)』, which puts emphasis upon constructive elements in Confucianism. I believe that it does not matter whether Confucius is dead or alive but it matters whether every individual in this nation is with him- or herself. The purpose of this essay is to explain how Confucius taught everyone to be with oneself, especially for political leaders. In Confucius view, everyone could be a political leader once he or she learns the way(Do; 道). The methods by which Confucius brought up political leaders were peculiar in many respects. First, the teacher never sought for the learner but the learner sought for the teacher. The teacher never failed to teach those who came with proper manners(Ye; 道). Second, the teacher never taught those who did not put an effort as well as those who did not ask questions. Third. the teacher taught how to live a righteous life. Fourth, the teacher tried to bring out the best out of the learner. Since each individual's merits differ from the others', answers to a question from different individuals varied. Fifth, the teacher took into consideration the level of the learner. An adult could at times be taught by utterances but at other times by silence. In short, the teacher must be with the learner, a prospective political leader so as not to lose oneself, and guard the learner so as to shine from one's wit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