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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2010.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Jangan-sa is one of the Buddhist temples in the southeastern seaside district, which was restored directly after the termination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Recently we could find out 4 records on the constructions of Daeoong - jeon in J angan-sa. These are <J ondori - Mookseo-myeong> written in the 12th year of Emperor Soonchi , <Jondori - Bachim - janghyeo Mookseo - myeong> written in the 8th year of Emperor Geonryung, <Mookseo - myeong> written in 1947 Buddha Era and <Mookseo - myeong> written in 1951 Buddha Era. Until the revelation of these records, the present building has been considered to be built in 1657, the 8th year of King Hyojong, based upon Kim Bang - han's「Jangan - sa Daeoong - jeon - gi」. Because the gongpo of Daeoong - jeon was finished with the type of the late period of Chosun Dynasty, we doubt of the correction on it's building date, just in the year of 1657. Now we are able to examine the building date and the alteration date, based upon the actual measurement and constructional records of Daeoong - jeon. So to speak, the building destroyed in 1592, had been restored in 1658, the 9th year of King Hyojong and was reconstructed in 1744, the 20th year of King Youngjo. Afterward it was repaired on small scales in 1947 and in 1951. Though this building is considered to be lack of the completeness owing to the later alterations, it is still worthy heritage for the research on the building type at the directly after the termination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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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2009.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左传》是一部涉及大约250多年的春秋时代历史的中国最初的完备的编年体历史书。具体记述了春秋时代各国的政治与军事、外交等重大历史事件。整体的思想倾向则接近于儒家, 故强调了阶级秩序与宗法伦理。从当今的文学理论观点察看《左传》, 则难寻以主要范畴议论的内容。《左传》的编书年代迟于《春秋》, 但登载的内容先于孔子时代, 故通过《左传》可以知道孔子和先秦诸子的文论思想产生的背景。尤其偏重《诗经》与政治的关系, 阐明‘赋诗言志’, 生动地反映了春秋时期政治交往当中对《诗经》的具体运用。本文选译了在《左传》接受《诗经》的‘赋’的意义变化和因对‘赋诗断章’的实用主义态度而唤起的文学作品的思想及作品的关系、叔孙穆子的“三不休”论、生动反映春秋时期政治交往中对《诗经》具体运用的一些例子、孔子论诗之前季札观赏音乐演奏而谈及的有关文学批评的理论、有关晏子的“和同之辨”之事。这对理解先秦时期文艺理论方面提供了珍贵的资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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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200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중국에서는 한문의 어법 체계를 서구의 라틴어 문법 이론으로 분석한 馬氏文通이 1898년에 발행되고부터 自國의 언어 현상을 규명하기위해 서구의 이론을 능동적으로 수용하였다. 한국 역시 10 년 뒤 初等作文法이 1908년에 발행된 후 1921년까지 4 권의 한문문법서가 발행되었다. 상당한 공백기를 거친 후 1975년까지 丁南洙의 漢文解釋을 시작으로 1971년 6월 許世旭의 漢文通論, 7월 權重求의 漢文大綱, 1973년 文璇奎의 漢文敎疑書, 1975년 趙鍾業의 漢文通釋등이 출간되었다.본고는 이들 문법서에 수록된 品詞 理論에 대한 연구에 이어 統辭 理論을 분석해 보았다. 이러한 연구는 초기에 간행된 한문 문법서의 統辭 理論이 40년간의 공백기를 거친 후 발간된 한문 문법서에서 어떻게 收容變貌 되었는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80년대 이후 발행된 한문 문법서에는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도 알 수 있는 지표도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문 문법사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일조할 것이라 생각된다. 본고는 문장의 성분에서는 主要成分從屬成分獨立成分으로 나누어 분석할 것이며 문장의 종류에서는 주어와 서술어의 결합관계와 주종관계에 따른 構造上 分類와 서술어의 성질행위주체화자가 청자에 대한 의향동작의 진위 여부서술의 범위 등으로 분류하는 性質上 分類를 연구의 대상할 것이다. 4종 문법서 제시된 내용들은 현대 문법 이론의 관점에서 분석할 것이며, 초기문법서에서 연구된 내용들이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도 비교할 것이다.
        7,800원
        44.
        200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최근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고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인터넷은 소위 '정보의 홍수'라 일컬어 질 만큼 무수한 정보를 매일같이 쏟아내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지식을 얻고,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렇듯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기에, 그리고 정보의 신속한 배급을 최우선으로 삼기에,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있어서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과, 아마추어 작가들이 글을 작성하여 인터넷을 통해 배포하는 것들에서조차 언어사용에 있어서의 엄격한 잣대를 모두 들이대기는 어렵겠지만, 뉴스보도의 작성자라든가, 기자, 편집자들, 특히나 사람들이 많이 보는 중요 매체의 뉴스 작업자들은, 자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뉴스에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그 뉴스를 읽는 독자에 책임감을 가져서, 자신들이 올바른 언어의 전파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가지고서 최대한 언어 사용에 있어서의 오류는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많은 인터넷 뉴스에서 사용되고 있는 중국어 가운데, 20여개의 대표적인 예를 들어, 오자, 어법 오류, 불합리적인 사용 등 여러 방면에서 문장의 오류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였다. 본인은 인터넷 뉴스에서 사용되는 중국어의 혼란 현상을 지적하고 바로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인터넷 뉴스의 언어 사용 오류에 대한 엄정성을 제기하여 기자, 타이피스트, 편집원 등 뉴스 작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인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한편, 인터넷 문화 상품의 함양 개선을 강화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리고 본 논문 중에서 예로 든 오류 문장들은 중국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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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2006.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Benefactive verbs in Japanese can be classified into 1) ‘site ageru’(「してあげる」, 2) ‘site kureru’(「してくれる」), and 3) ‘site morau’(「してもらう」) depending on the direction of action. ‘Site morau’ sentences are syntactically and semantically similar to passive sentences in the sense that a benefactive of an action is in the subjective position and an agent is in the dative position. However, they morphologically take an active form. Thus, they share characteristics of both the active and passive voice. This article investigates the condition in which a ‘site morau’ sentence changes into a causative sentence. In addition, it analyzes the semantic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causative sentences and ‘site morau’ sentences. It also shows that ‘site morau’ sentences can be changed into causative sentences, since causative sentences have semantic properties of both ‘giving’ and ‘receiving’. Lastly, ‘site morau’ is subcategorized into 1) typical ‘site morau’, 2) moderate ‘site morau’, 3) causative ‘site morau’, with each type studied in dep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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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2004.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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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2000.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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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1991.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o analyze tableware in wedding ceremonies of royal prince(1744, 1819) of Chosun Dynasty, the author studied the historic book-Gare Dogam Euigwae, in which wedding feast dishes for King and prince in Chosun Dynasty were described. The results obtained from the study were as follows, 1. For wedding feast dishes for prince, black lacquered table was used, and for King's wedding feast red lacquered table was used. 2. In wedding ceremony red silk table cloth was used. 3. Tables arranged in wedding ceremony had high legs. 4. Tablewares used in wedding ceremony were footed dishes. 5. Wedding ceremony arrangement was made up of four kinds of main table, a small boiled beef table, a large boiled beef table, four small round tables, a dining table, a candle stick, a incense holder, a vase with vaseholder and a liquor bottle with a holder.
        4,000원
        53.
        1991.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o analyse wedding feast dishes of royal prince of Chosun Dynasty(1744, 1819), the author studied historic book-GareDogamEuigwae, in which the wedding feast dishes of King and Prince in Chosun Dynasty were described. The results obtained from the study were as follows, 1. Arranged dishes in wedding ceremony were four kinds of table, main table, second table, third table and fourth table. That table setting was same as that of the year 1651. 2. Meal ceremonies were in sacrificial food partaking, drinking ceremony and courtesy of levee. 3. In wedding ceremony, prince and princess drank three cups of liquor. At the first cup they eat abalones soup and others in a small round table(初味), at the second cup fine noodles and others in another table(二味), at the third cup bun stuffed with fish and others in the other table(三味). 4. In sacrificial food partaking and drinking ceremony, King drank nine cups of liquor, at first cup, King eats a small boiled beef(小膳) and (初味), at second cup eats(二味), at third cup eats(三味),·s, at nineth cup, King eats a soup, a large boiled beef(大膳) and fruits. 5. Dish materials and quantities used for wedding ceremony in the year of 1819 was same as that of the year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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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2018.08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인재는 고등학교 인재 대열의 건설과 발전에서 있어서 핵심 요소이며 일류 대학과 일류 학과를 설립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시대적 요구인 동시에 인재의 질은 고등 학교 학과의 발전 수준을 결정한다. 과학 기술 연구의 심화에 따라, 학제적 연구는 과학의 빠른 발전을 추진한다. 본 문은 디지털 미디어 학원에서 구축한 디지털 미디어 기술과 디지털 미디어 아트라는 두가지 신흥 학제적 분야적 분야를 예로 신흥 학제적 분야적 분야에 창의인재 유치와 양성 방면에서 존재하는 문제점을 분석하고 인재 유치 및 양성 대책을 적극 모색하며 나라의 인재 양성 특히는 문화 창의성 산업의 인재 양성 프로젝트를 위해 유익한 계시와 도움을 제공한다.
        56.
        2017.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Aquatic plants serve the crucial function of helping to balance water reservoir ecosystem, as they filter and remove major minerals required for algal growth such as nitrogen, ammonia, and nitrates. Aquatic plants provide food, shade, and protection for the aquatic biome in and around the reservoir. Thus, it is important to accurately determine the existence and areal extent of the aquatic plants. In the present study drone-based facilities were used for this purpose. In the Muncheon water reservoir, Gyeongbuk, the Normalized Difference Vegetation Index (NDVI) and Surface Algal Bloom Index (SABI) were used to determine the existence status of the aquatic plants. The data so obtained exhibited reasonable accuracy; drone-based facilities can be used in future to identify the areal extent of aquatic plants.
        57.
        2014.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지난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의 ‘죽도의 날’ 행사를 치루면서 독도홍보책자 󰡔죽도문제 100문 100답󰡕을 배포하였다. 여기서는 2005년 7월 죽도문제연구회 발족 이후 지금까지 죽도문제연구회가 펼쳐온 독도는 ‘일본 역사적으로 고유의 영토’라는 왜곡논리가 그대로 응축되어 있다. 사실 여기서의 ‘100문 100답’은 ‘Web죽도문제연구회’의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 네티즌들의 소박한 질문에 관해 답변해온 자료들 중 100여개를 취사선택하여 명료하 게 간추린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은 “예로부터 전혀 독도를 인지하지 못했고, 17세기 오야·무라카와 양가의 죽도도해로 인하여 17세기 중엽에 일본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이 성 립했다”고 하는 입장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다. 본 논문은 『죽도문제 100문 100답』의 고유 영토론의 논리를 일본 사료를 통하여 비판하고자 했다. 분석의 결과 고유영토론은 일본의 사료에 의해서 명확하게 부정되는 것임을 밝혔다. ①1695년 12월 24일 에도 막부의 필두로쥬(筆頭老中) 아베 붕고노카미(豊後守)가 돗토리번 의 에도번저(江戶屋敷)에 보낸 질의에 대한 답변서 「7개조 답변서」에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에 부속하지 않는다고 확인한 다음 「죽도도해금지령」을 내렸던 점, ② 1870년 4월 일본 외무성이 3명의 외무성 관원에게 조선의 내정에 대해 정탐을 하게 하여 보고받은 「조 선국시말내탐서」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부속임을 명확히 확인하고 있는 점, ③ 1877년 3월 29일 당시의 최고정치결정기관인 태정관이 지령으로 ‘울릉도·독도가 일본의 판도가 아니다’라는 결정을 내린 「태정관지령문」에서 2섬이 일본의 영역이 아니라 조선의 영역임 을 천명한 점, ④ 일본에서 독도가 최초로 언급되는 관찬지 󰡔隱洲視聽合記󰡕(1667)에서 일본의 서북한계를 오키섬까지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 등이다. 이들 일본 사료를 통해서 보더라도 죽도문제연구회와 일본 외무성이 주장하는 ‘고유영토론’ 논리가 성립하지 않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역사적 왜곡이 또 다른 사실 왜곡을 재생산하는 연결고리를 단절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은 독도에 대한 ‘고유영토론’의 논리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58.
        2012.0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건축물에서 화재발생에 대비한 기본대책으로 방화구획을 들 수 있다. 방화구획은 화재 발생시 일정한 구획 내에 화재를 구속함으로써 다른 곳으로의 연소확대를 막는 방법으로 내화벽체와 출입구 부분을 막는 방화문과 같은 방화설비로 구성된다. 방화구획선상의 출입구를 막는 방화설비는 가장 대표적인 방화문과 승강기문, 방화셔터에 설치되는 문이 있으며, 승강기문과 방화셔터에 설치되는 문을 방화문으로 사용코자 할 때는 국토해양부고시에서 정하고 있는 갑종방화문과 동일한 시험방법에 합격한 경우 방화문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화재의 확산을 막는 기본취지는 같으나 사용부위와 형식 등의 차이가 있는 방화문과 승강기문에 동일한 시험방법을 적용하고 있는 국내의 제도가 적절한가를 평가하기 위하여 미국, 일본, 영국(유럽) 등의 승강기문에 대한 화재관련 제도와 시험기준을 조사 및 비교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 60분 차염성능만을 요구하고 있는 국내와는 달리, 20분에서 90분까지의 다양한 등급과 승강로 내의 온도상승을 대비한 차열성의 요구, 승강로의 내부 및 승강로를 통한 연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차연성능의 평가가 해외에서는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국내의 승강기문에 대한 평가 방법의 재논의가 필요하며, 해외의 제도 중 국내여건에 맞는 평가항목과 시험방법의 도입을 통한 제도개선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59.
        2011.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최근 국내 문화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시각적 디자인 요소도 선호하는 바가 달라지고 있다. 식물 또한 선호하는 식물의 종류가 변화고 있다. 이러한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식물 중 미적으로 관상가치가 높은 무늬 관엽식물의 색채와 색채조화미를 분석하여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무늬 관엽식물의 색채 트랜드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색채측정은 색측기 (X-rite Eye-One Xtreme iO bundle)를 사용하여 색을 측정하였다. 색채조화미 평가는 문&스펜서와 먼셀조화론을 기준으로 분석하였다. 먼셀조화론에서는 Diffenbachia ‘Marianne’가 가장 조화로웠다. 그 외에 Epiprenum aureum ‘Golden Queen’, Caladium ‘Pink Beauty’, Sansevieria trifasciata ‘Laurentii’, Aglaonema ‘Silver King’, Begonia rex, Peperomia sandersii, Calathea macoyana, Alocasia amazonica, Calathea insignis 순으로 색채 조화미가 높게 나타났다. 문&스펜서의 색채조화론에서는 가장 미도가 높은 식물로 Caladium ‘Pink Beauty’, 다음으로는, Diffenbachia ‘Marianne’, Epiprenum aureum ‘Golden Queen’, Peperomia sandersii, Alocasis amazonica, Sansevieria trifasciata ‘Lurentii’, Calathea macoyana, Begonia rex, Calathea insignis, Aglaonema ‘Silver King’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두 조화론에서 조화미가 높았던 무늬 관엽식물의 색채는 yellow green과 green색상으로 좀 더 자연에 가까운 색상 배색이 더 조화롭게 분석되었다. 또한 명확한 색조 차이를 보이는 배색을 보였고 grayish한 색채보다는 채도가 뚜렷한 색채로 배색되었다.
        60.
        2010.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노사학파가 19세기 후반 영남 서부지역에서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과 성장과정, 그리고 문인 정재규의 역할을 분석한 것이다. 노사 기정진은 1840년 대부터 서학을 배척하고 의리와 도덕의 확산을 꾀하였던 산림학자로서 중앙정 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1850년대에는 영남의 노론학자들로부터 동방 도학의 정통을 계승한 인물로 받들어질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뿐만 아니라 기정진의 일족이나 문인들도 세도정치기와 대원군 집권기에 점차 중앙정계와 향촌사회 에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으며 19세기 이래 영남 서부지역에서 당색의 대립이 약화되고 다른 당파나 지역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주리론과 위정척사사상에 바탕을 둔 노사학파가 형성될 수 있었다. 당시 영남 서부의 노사학파는 남인 출신도 있었었지만 대체로 노론 위주의 인 물들이었으며, 새롭게 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학문을 통해 가문을 일으키려 는 인물이 많았다. 이들은 향촌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지방관과 협조하여 향 약 실시나 󰡔소학󰡕 교육을 중시하였으며, 강학활동에 힘써 영남 서부 지역에 많 은 문인들을 배출하였다. 또한 이들은 정여창과 조식을 숭앙하는 기풍이 강한 이곳에서 이들을 모신 서원이나 사우의 향례에 참여하거나 강회를 자주 개최하 여 진주와 하동․산청․합천․의령 일대의 영남지역에 노사학파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계속 넓혀 나갔다. 이러한 영남지역에서의 노사학파의 성장은 특히 정재규의 노력에 힘입은 바 가 컸다. 정재규는 기정진 사후 적극적으로 강학 활동을 전개하여 영남지역 내 에서 가장 많은 문인을 배출하였는데, 동문이나 문인들과 자주 강회를 열어 성 리학과 예학을 강론함으로서 기정진의 주리론이 널리 보급되고 위정척사의 주 지가 훼손되지 않게 하였다. 그는 또한 기정진의 학설을 체계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답문류편(答問類 編)󰡕을 편찬하였으며, 1901년 기정진의 문집을 목판본으로 중간했을 때에도 단 성의 신안정사에서 직접 일을 주관하였다. 그리고 문집 간행 이후 기정진의 논 설인 「외필(猥筆)」이나 「납량사의(納凉私議)」등에 대해 영남지역의 노론이나 송병선, 송병순, 전우 등이 이단으로 배격하였을 때, 정재규는 동문과 문인들에 게 기정진의 학설을 변호하게 하였으며, 본인도 직접 논서를 지어 기정진의 주 리론이 결코 주희나 이이의 학설과 어긋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또한 정재규는 영남지역에서 위정척사운동과 의병운동을 일으켜 기정진의 위 정척사사상을 계승하였다. 그는 1881년 신사척사운동에 가담하고 1895년에 서부 영남의 유림들과 함께 의병운동을 전개하여 개화에 반대하고 일제의 침략 에 항거하였다. 이어 그는 1905년 일제의 국권침탈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민 심의 결집을 주장하고 의병운동을 일으키고자 하였다.그는 자신을 따르는 문인 들과 함께 1905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충청도의 최익현과 전라도의 기우 만과 함께 각지에 포고문을 보내고, 의병을 모으기 위해 문인들을 유생들에게 파견하였다. 비록 무력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의병이 제대로 모이지 않은 상태 에서 실패하였지만 의리를 중시하는 영남지역 노사학파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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