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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2013.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시마네현 죽도문제연구회’가 발간한 󰡔제2기 ‘죽도문제에 관한 조사연구’ 최종보 고서󰡕(2012.3)에 수록된 스기하라 다카시(杉原隆)의 보고서 「에도시대부터 쇼와시대에 걸 쳐 다케시마와 관련된 오키인들의 발자취」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본 것이다. 스기하라는 이 보고서에서 울릉도·독도 문제에 관련된 오키섬 주민 개개인의 역할, 집안 내력, 심지어 그들 후손의 현재 상황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울릉도·독도가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오키섬 주민들의 삶과 밀착된 지역이었다는 점, 즉 전근대에 일본(오키섬 주민)이 독도를 실질적으로 이용하고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독도의 역사적 권원이 일본에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스기하라 보고서’는 비록 사료에 근거하기는 하나, 엄밀한 학술적 논증 형식을 갖춘 논문이라기보다 보고서 형식의 기사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스기하라 보고서’는 울릉도·독도가 오키섬 주민들의 삶과 관련이 있었다는 ‘기억’과 ‘기록’만을 가지고 독도영유권 주장을 합리화하고 있다. 이는 드러난 경 험적 사실만을 절대화함으로써,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실증주의적 사고 방식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23.
        2012.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지금까지의 독도/죽도 논쟁은 학문적 성과가 반영되지 않는 국면이 적지 않았다. 어쩌면 독도/죽도 논쟁의 문제점은 죽도 영유권을 둘러싼 의견 대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의견 대립이 학문적 근거가 결여된 채 쟁점화 되는 데에 있다. 학문적 근거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에, 학문적으로는 성립되지 않는 주장이 재삼재사 되풀이하여 강변되고 똑 같은 논의가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양국의 독도/죽도 논쟁에 대한 해결의 길을 열기 위해서 조문(법령)의 해석과 사료를 둘러싼 해석 방법을 검토하였다. 조문에서는 ‘샌프 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겐로쿠 죽도도해금지령’의 해석에서 조문상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의도를 해석하였다. 또한 ‘우산도’, ‘일본해내 죽도외일도 지적 편찬에 방사(日本海内竹島外一島地籍編纂方伺)’의 해석에서도 사료는 먼저 주어진 텍스트 안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검토하였다. 사실, 독도/죽도 논쟁은 거의 정리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끝없이 논의를 지연시키는 일도 가능하다. 만약 향후의 한일 관계를 돈독한 것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이 논쟁을 끊어버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의성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사료·사실(史實)에 마주볼 수 있는 용기를 낼지 어떨지가 분기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31.
        2011.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8세기 울릉도・독도로 건너간 어민들은 전복 진상지 어민들로 육지와 멀리 떨어진 외양 항로 중심지에 위치한 전라남도 여수시 거문도・초도・손죽도어민들이었다. 이들은 뛰어난 항해기술을 이용 하여 전국을 무대로 중개지 무역을 하며 울릉도・독도에서 생산된 어획물을 전국에 유통시켰다. 이렇게 18세기부터 울릉도・독도어장 으로 건너간 전라도어민들의 어로 활동은 여러 가지 자료에 확실 히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무주지선점론을 근거로 대한 제국 칙령 41호의‘석도는 관음도이거나 독도는 아니다’라고 주 장하고 있다. 시마네현 죽도문제연구회에서는 1903년 독도에 갔다고 하는 나카이 요사부로의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나카이의 독 도 인식을 연구하였고 이케우치 사토시는 울릉도인들의 어업활동 을 검토하여‘울릉도인들은 독도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석도는 독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이케우치의 경우‘석도는 독도 가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개척기 이주한 경상도어민의 어로 활동을 염두에 두고 울릉도로 건너간 전라도어 민들의 어로 활동을 배제시켰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전라도 어민들은 개척기 울릉도에 이주한 주민들과 어떤 교류도 없었고 독도의 전라도 방언‘독섬’이 울릉도인들에게 전파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려 하였다. 이것은 죽도문제연구회가 고지도연구를 통하여 석도를 울릉도 주변의 관음도라고 주장하여 자기모순에 빠진 것처 럼, 개척기 조선인들의 어로 활동을 연구하면서 전라도어민들의 어업 활동을 배제함으로써 동일한 모순에 빠지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33.
        200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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