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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2020.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옥산서원의 입지 및 공간구성의 특성을 풍수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옥산서원의 입지는 전체적으로 풍수적 길지에 해당되었다. 구체적으로, 풍수의 길격 요건을 갖춘 내룡이 서원 영역으로 이어져 와 멈춘 풍수적 혈에 강당이 정확히 자리해 있다. 주변 산줄기 또한 서원 영역을 바람의 피해로부터 막아주고 있으며, 옥산천 물길은 그 형태 및 역수의 측면에서 길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 옥산서원 공간구성의 특징은 밀폐된 건물배치이며, 그것은 무변루의 내부 지향적인 구조에 기인한다. 무변루의 내부지향적 구조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이며, 그것은 회재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은거관이 무변루의 폐쇄적 구조로 재현된 점, 세심대가 서원 영역과 인접해 있는 점, 서원 영역과 옥산천 건너 대안의 표고 차에 따른 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한 점으로 요약된다.
        6,400원
        22.
        2019.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각종의 사료와 현장을 중심으로 한 사례 분석을 통해 도선 풍수는 초기에는 중국풍수와 밀교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도선풍수는 중국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ㆍ발전되었음을 논증하는데 있다. 문헌상으로 한반도의 풍수유래는 빠르면 534년 늦어도 602년 정도에 전래된 것으로 밝혔으며,『고려사』, 『고려사절요』, 「숭복사비문」 등을 토대로 도선 이전에 이미 중국풍수가 한반도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또한 도선이 창건 또는 중수한 사찰인 옥룡사와 도피안사를 사례로 분석한 결과 중국풍수이론과 부합하는 것은 용세가 생룡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 사신사가 구비되고 이상적인 모 양과 상당부분 부합한다는 점, 안산은 본신안산이라는 점, 모두 와혈에 해당 하고 좌우의 맥이 혈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는 점, 수구가 관쇄되고 합수의 조건이 충족된다는 점 등이었다. 도선풍수는 초기에는 불교의 밀교, 중국풍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추할 수 있지만 중국풍수와는 차별적인 특징이 있다. 이는 중국풍수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였으나, 도선에 의해 한반도의 지리적ㆍ지형적ㆍ역사적 조건 등에 따라 중국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 발전된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9,000원
        23.
        2019.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필자의 풍수연구 중에서 풍수가 어느 순간 어떻게 경험되었는 가에 초점을 맞추어 편집된 것이다. 풍수는 길흉화복을 단지 선천적인 지리적인 조건에만 종속시키는 불필요한 술수에 불가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문화적 실상으로 기능하고 실재하고 있다. 풍수가 경험되는 현실에서는 ‘영험함을 기원하는(乞靈)’ 현실적 욕망과 ‘천명을 바꾸는(改天命)’ 고전적인 이상을 동시에 실현한다. 공간과 인간 이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으로 이해하는 유기체적인 사유로 인해 인간은 주어진 공간에 의해 선험적으로 조건지워지는 동시에 -비보를 통해- 주체적인 인식과 의지를 통해 공간을 변형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풍수는 “믿을 수도 없고 폐할 수도 없는(不可信, 不可廢)” 담론으로 실재하며 여전히 풍수경전이 읽히고 풍수전문가가 양성되었으며 공적·사적 영역에서 생존해왔다. 그 경험의 역사를 통해 논자는 고려시대 “주술-종교적”, 조선시대 “권도”라는 타이틀을 풍수에게 부여했다. 풍수역사는 한때 시대 변혁의 논리이기도 했고 효, 자취(自取), 적덕(積德)이라는 명분으로 누구나 알아두어야 할 교양과목이기도 했다. 이렇게 풍수에 ‘신앙’이라는 부제를 붙일만한 정황들이 조선 후기부터는 풍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산송으로 폭발하면서 삶의 자리로 내재화된다. 필자는 풍수 그 자체가 사회 적 폐해로 공격받고 강화되어온 경험 그리고 기존 종교와 상호작용해왔던 역사에 집중하여 풍수신앙이라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더구나 풍수의 유산은 현재에도 유효해서 그 영향력이 어떠하든 여전히 땅이름(마을, 산)으로 남아있고 도시·생태·환경‘계획’의 단계에서 고려되고 있으며, 여전히 풍수경전은 읽히고 전승되는 학맥이 존재한다.
        7,000원
        24.
        2019.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analyzed 『Bukgwol Dohyeong (Drawing Plans for the Northern Section of Gyeongbokgung Palac e)』, which is an important source material for the restoration of the palace, by applying Paltaekron, the geomantic principle of bearings, in order to clarify the building layout principle of Gyeongbokgung Palace. Gyeongbokgung Palace shows the typical geographical conditions that meet the principle of Baesan Imsu (mountain in the back and water in the front) which takes Baegaksan Mountain as the main mountain and the overall layout of the buildings that meet the principle of ‘Jeonchak Hugwan (narrow in the front and broad toward inside)’ by using the natural topography that meets the principle of ‘Jeonjeo Hugo (low in the front and higher toward back).’ It is estimated that this layout and arrangement must have been led by geomantic principle of bearings. The analysis of the building layout plan of Gyeongbokgung Palace in the late Joseon Dynasty Period suggests the application of two methods: one is to divide central area from Gwanghwamun Gate to Geoncheongung Hall into eight layers and the other is to apply the bearings of the Eight Trigrams based on the building that becomes the center. As a result, the gate, main hall, and kitchen of all major buildings where the royal family lived are located in the auspicious bearings according to the geomantic principle of bearings while the spaces where people other than the royal family such as those who served the royal family and the officials operated in the palace or the hall that enshrines the ancestors such as Taewonjeong Hall are located in the ominous bearings. Therefore, the buildings of Gyeongbokgung Palace are arranged based on the geomantic principle of bearings.
        4,300원
        27.
        2018.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부석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혼란한 시기에 의상이 개창하여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도량으로 자리잡은 고찰이다. 부석사의 창건주인 의상은 삼국사기, 송고승전(宋高僧傳) 등의 기록을 통하여 불교적 역량뿐 아니라 풍수지리적으로도 높은 식견을 가지고 부석사라는 좋은 입지를 찾고자 노력하였고, 부석사 터는 애초부터 풍수지리적으로 상당한 길지였음을 알수 있다. 부석사 터에 대한 지형답사와 위성지도 등을 활용한 객관적이고 정밀한 지형분석을 하여 풍수지리적으로 명당길지임을 확인하였고, 정확한 혈처의 위치와 풍수지리적 공간구조의 형세를 규명하였다. 그리고 부석사는 명당공간의 기운을 효과적으로 향유(享有)하기 위하여 경사지고 협소한 지형공간에 다른 사찰에서는 볼수 없는 특이한 건축구조와 가람배치를 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를 통하여 부석사의 가람배치는 풍수지리적인 공간활용방안이었음을 고찰하였다.
        8,400원
        29.
        201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산화 는 풍수지리적인 단편 소설이다. 산화 의 공간 뒷골은 풍수적으로 보아 화기(火氣)가 많아 좋지 않으며, 이를 겨우 살게 하는 것은 수기(水氣)의 형상화로서 ‘뒷실이’의 존재이다. 그러나 죽은 소까지 고기로 팔아치우는 윤참 봉의 악행으로 마을 사람의 절반이 죽어간다. 뒷실이도 사경을 헤매는데, 이는 수기(水氣)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분노한 사람들은 불을 내고 윤참봉에게 복수를 하러 몰려간다. 마을이 혼란에 빠지자, 그동안 파국의 전조로 생각되던 저 너머 홍하산의 산불이 운문산으로 번져 내려온다. 한편, 최창조가 재구성하 고자 하는 도선의 전통풍수와 마찬가지로 김동리의 공간인식은 모성적인 것으 로 이해되는데, 김동리는 ‘산화’의 산불을 농민들의 분노라 해석하는 동시에, 모 자 이자관계의 황홀경에서 보았던 초파일의 연등이라는 선문답을 하기도 한다. 이는 폭력의 심급과 젠더성에 대한 고찰을 하도록 한다. 한쇠를 중심으로 읽으 면 산화 의 산불은 저항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뒷실이를 중심으로 읽으면 산 불은 인간의 모든 것을 멸하는 모성적인 신적 폭력이 된다. 후자의 독법은 김동 리가 제3르네상스를 추구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6,300원
        30.
        2017.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한반도 통일 이후의 수도로서 개성권에 대한 타당성을 풍수적으로 논의하는데 있다. 즉 남북한 중간에 위치하면서 용수가 풍부하고 물류가 편리하면서 통일한반도의 상징성이 깊은 古都개성과 그 인근지 역에 대한 풍수적 타당성을 검토하였다. 또한 개성은 물론 고려왕조와 조선왕조에 의해 천도(遷都) 후보지로 거론되었던, 불일사(佛日寺), 마하갑 (摩河岬), 장원정(長源亭), 백마산(白馬山) 우소궁(右蘇宮), 중흥궐(重興闕)과 흥왕사(興王寺) 이궁(離宮)을 그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위의 장소들을 검토 해 본 결과, 불일사 일대는 수몰되었고, 마하갑(摩河岬)은 국면이 작은데다 그 분지에 영통사(靈通寺)가 복원되었으며, 장원정(長源亭)은 조강(祖 江)까지의 거리가 불과 8백여 미터로 국면이 작고, 백마산(白馬山) 우소궁 (右蘇宮) 역시 당국(堂局)이 협소하며, 중흥궐(重興闕)은 개성권을 벗어나 서쪽으로 치우쳤다. 고려의 성왕(聖王)으로 일컬어지던 문종(文宗)이 실제적인 도읍지로서의 기능을 부여한 만큼, 심혈을 기울여 창건한 흥왕사(興 王寺)는, 사신사(四神砂)와 조산(朝山)이 잘 갖추어져 있고 그 남쪽으로 도시가 발전할 충분한 공간이 있어 입지가 유망해 보이는 바, 실제 현장답사를 통해 통일수도 입지로서의 가능성과 타당성을 심도 있게 검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12,900원
        31.
        2017.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강원도 양양군 남애리 어촌의 풍수적 입지분석을 통하여 내륙지와 비교시 바닷가에서 만 적용 가능한 새로운 풍수 이론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풍수 이론의 구조은 일시에 논리적 체계를 갖추었다고 하기 보다는 시대의 변화, 그리고 각 지역의 기후나 지리적 여건 등의 자연환경 요소에 맞도록 진화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 중에서도 위치의 중요성이 가장 강조되고 있는데 내륙지의 촌락과 바닷가의 어촌은 풍수적 입지가 크게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지역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산과 물을 중심으로 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내륙지 풍수이론을 한쪽 면이 개방된 바닷가에도 그대로 적용 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풍수이론이 체계화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에 대한 풍수이론은 내륙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아주 미흡할 뿐만 아니라 연구성과 역시 부족하다. 따라서 고전풍수에서 부적합 땅으로 평가받고 있는 어촌지역이 현대에 와서도 부적합 땅인가? 그리고 고전풍수이론이 현재에도 유효한 것인가? 하는 바닷가 지역만의 풍수논리 정립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본 연구를 통하여 바닷가만의 풍수적 특징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동안 풍수적으로 소외되었던 바닷가 지역에 대하여도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풍수이론을 제시함으로써 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을 확대하고 어촌개발시에도 건물과 도로건설 등의 공간배치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 지리관이자 경험과학인 풍수이론이 내륙지 뿐만 아니라 바닷가 지역으로 까지 확대하여 현실적응력 있는 유용한 학문으로 발전하는데 기초를 제공 할 수 있을 것이다.
        9,000원
        32.
        2017.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풍수를 현대 도시에 응용하기 위해 경상남도 창원시를 대상으로 양기풍수적 입장에서의 해석과 아울러 풍수적 측면에서의 개발과 보존에 대한 제언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의 경남도청을 귀납적 방법으로 혈장으로 선정 한 풍수 분석결과 거시적 맥세의 흐름은 좌우변화와 상하변화를 거친 생룡이지만 개장과 천심의 조건을 불분명하다. 사신사는 풍수적으로 이상적은 모습이 아니지만 혈장 주위에 존재하고 있으며, 물의 흐름은 각지에서 발원한 물이 창원천과 남천으로 유입되며, 이 2개의 하천이 바다로 유입하기전 합류함 으로써 합수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또한 수구처에 한문(춘산, 뒷산)과 수구막이산(부엉산)이 존재함으로써 수구가 좁아야 하며 수구막이가 있어야 한다는 풍수적 조건과 합치한다. 창원의 개발과 보존에 대한 풍수적 제언으로서는 창원은 분지 형태의 장풍 국이므로 공기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단점이 있는데 이는 하천의 정비와 녹지 시설의 확충, 대기오염원의 차단 등이 필요하다. 득수의 측면에서는 한문과 수구막이 산에 대한 보존이 필요하며, 주산에 대한 개발행위 억제, 주산인 봉림산을 중심으로 한 형국의 보완 및 회룡고조형에 대한 형국의 보완책이 필요하다.
        8,400원
        33.
        2016.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현재 한국사회에 서로 대비되는 두 종류의 지리(지리학)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오랫동안 지리의 위상을 유지해왔던 한국의 전통 지리로서 ‘풍수’와 현재 지리 하면 일상적으로 떠올리는 지리로서 ‘Geography’ (서구의 근⋅현대 지리)가 그것인데, 이들 두 지리 간의 차이나는 지점이 무엇인지 드러내 보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먼저 근대 이전 정상적인 지리로 공유돼 왔던 풍수의 위상, 다음으로 풍수와 Geography 간의 인식론적 특징과 그러한 인식의 재현(representation) 상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인식론적 측면에서 풍수와 Geography는 생태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라는 서로 대비되는 형이상학적 믿음이자 관점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할 수 있다. 가령 풍수의 대전제인 인간-환경 간의 동기간(同氣間) 관계 설정은 Geography의 인간중심적 입장과는 구분되는 풍수의 생태중심적 특징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그리고 풍수와 Geography 할 것 없이 지리의 핵심적 요소인 인간, 자연 또는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 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거나 적어도 유사한 것으로 인식(‘유사인식’)하는 풍수적 전제와 이 둘을 성격이 다른 별개의 독립적 존재로 보고(이원론적 분할) 이들 간의 인과론적, 결정론적 관계에 관심 갖는 Geography를 구분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인식론적 바탕에서 차이를 갖는 풍수와 Geography의 재현 양식의 문제인데, 지리 영역에서의 주요한 재현 수단인 지도를 통해 그 차이를 살펴보았다. 풍수적 재현으로서 고지도에는 용맥의 흐름이나 명당 구성 등 풍수의 생태중심적 인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에 반해 정확성, 사실성, 객관성을 지도 제작과 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 Geography의 인간중심적 입장은 근⋅현대 지도를 마치 자연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재현물로 접근하고 있다.
        6,900원
        34.
        2016.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明堂이란, 孟子에 의하면 儒敎에서 지향하는 政治的理想鄕을 실천하는 특정 장소를 말하는데, 그것은 天子國인 周나라의 武王이 鎬京에 세웠던 辟雍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諸侯國인 魯나라의 泮宮역시 벽옹과 유사한 기능을 하던 곳이었는데, 그 두 지점 모두 ‘강물의 環抱’와 ‘背山臨水’라는 유사한 입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이 두 國都의 이러한 자연 환경은 風水地理초기 이론에서 ‘明堂’과 ‘穴’이라는 吉地이론 형성에 밑바탕이 되었다. 殷나라 말기 서쪽 변방의 제후국에 지나지 않았던 周나라가 鎬京의 營建및 그곳의 辟雍건립 이후에 곧바로 천하를 소유하게 된 역사적 사건은, 초기의 風水연구가들에게 吉地의 기준에 대한 이론적 영감을 주었다. 한편 鎬京과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魯나라의 泮宮이 辟雍과 유사한 자연 환경을 갖춘 곳에 만들어진 배경에는, 바로 그 魯나라가 文王의 아들이자 武王의 아우로서 成王초 周나라 에서 수년 동안의 攝政활동을 하였던 周公을 위해, 그의 長子에게 수여된 제후국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7,800원
        36.
        2011.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thesis is a study on the oldest feng-shui book 『Janggyeong(葬經)』. Specially, it is a focus on the feng-shui orientation method so called Sasepalryongbub(四勢八龍法) in that book. This method is to identify fortune and misfortune with the directions to be measured by a feng-shui compass. Sa(四) of Sase(四勢) is the four pieces of direction of dividing 12 parts for 360 degree circle. To divide for 12 parts is related with 12-Jiji(地支). Sa mean In(寅), Sin(申), Sa(巳), and Hae(亥). Se of Sase means a large stem of mountain. Generally, Sase are the big mountain stems of the four directions as In, Sin, Sa, and Hae. Pal(八) of Palryong(八龍) mean the 8 parts of equal division for 360 degree. It is related with Palgoe(八卦) that divide for 8 parts equally. Palgoe are Jin(震), Li(離), Gam(坎), Tae(兌), Geon(乾), Gon(坤), Gan(艮), and Son(巽). Ryong(龍) of Palryong(八龍) is a stem of mountain that is measured with 8 parts of equal division feng-shui compass. Sasepalryongbub make a connection between Sase and Palryong. When they are connected, it is a good fortune like as In(寅) and Li(離), Sin(申) and Gam(坎) or Gon(坤) or Gan(艮), Sa(巳) and Tae(兌) or Geon(乾), Hae(亥) and Jin(辰) or Son(巽). It is based on two theories. The one is 12-Unseongron(運星論), the other is one of Ohaengron(五行論) as Samhap-Ohaeng(三合五行). 12-Unseongron begins from dividing all human life affairs with 12 steps. Saeng(生), Wang(旺), Myo(墓) are the very important things among 12 steps. Saeng means starting, Wang means flourishing, Myo means keeping. Samhap-Ohaeng is made with Jiji of Saeng, Wang and Myo steps about 12-Unseongron. Saeng is the most important thing among of Saeng, Wang and Myo in Sasepalryongbub which means birth. Saeng of Jiji direction can help Palgoe direction as a counterpart. Like this, the good relation of Sase and Palryong is that Jiji direction can help Palgoe direction. For example, there are In(寅) of Jiji and Li(離) of Palgoe, can be explained as these kinds of the good relations. In view of Samhap-Ohaeng, In of Jiji is regared as Saeng of fire(火). This fire– Saeng- In as Jiji can help fire- Li as Palgoe. It can be said as a good condition that Sase and Palryong be connected like this case. This is the main content of Sasepalryongbub as being treated in this study.
        5,100원
        37.
        2009.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research was to analyze the direction ideas of residential Feng Shui. In ancient China residential places were been established by Xiangzhai(相宅) and Buzhai(卜宅) usages. And ancient Chinese always considered geographical features of mountains and waters for setting up their living places. Geographical features were also considered importantly in representative residential Feng Shui books, Zhaijing(宅經) and Yangzhaisanyao(陽宅三要). In Zhaijing, 24 direction ideas are co-related with Fagui(八卦) and GanZhi(干支) theories, and they are most important residential Feng Shui direction theories. The basic thoughts of 24 direction ideas of Zhaijing were already formed in Qin(秦) dynasty and modified in early Han(漢) dynasty. In Zhaijing, residential places were splited into Yangzhai(陽宅) and Yinzhai(陰宅) according to YinYang's Qi directions. Those theories were actually formed from meticulous observations on changing processes of YinYangWuXing(陰陽五行)'s Qi(氣). Constantly changed Qi of YinYangWuXing were studied by old chinese people from the observations on the sun, the moon, the five stars, the Great Bear, and ErShiBaXiu(二十八宿). The origin of Zhaijing's direction ideas is the direction system of ShiPan(式盤) in Qin and Han dynasty. On ShiPan TianGan(天干)․Dizi(地支)․Fagui․TianDiRenGui(天地人鬼) were arranged very systematically into four and 24 directions. DongxiSizhai(東西四宅) theories of Yangzhaisanyao had edited more lately than Zhaijing(宅經), and formed according to Fagui(八卦)‘s YinYang(陰陽) principles. But the basic ideas is same with Zhaijing's. It proves that residential Feng Shui theories were constantly improved and modified. And both residential Feng Shui direction ideas of Zhaijing and Yangzhaisanyao are the general ideas in old china. The point of that ideas is Sky's four or 24 directions are correspondence with the earth's. It came from the traditional thoughts that Heaven, Earth, and mankind are co-related and influenced each other according to Qi's changing processes. Gather up above mentioned, the direction ideas of residential Feng Shui is a systematic thoughts of old chinese for harmonizing Tian-Di-Ren-Gui, and is their specific methods for harmonizing the nature's Qi, mankind and spirits.
        5,400원
        38.
        2008.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Hyeunryungwon is a tomb for Crown Prince Sado, who was the father of King Jeongjo, the twenty second king of Joseon dynasty. The tomb had been originally in the Eastern part of Seoul, but was relocated in 1789 to the downtown Suwon, which was renowned as a good tomb site among the Royal family at that time. King Jeongjo looked through the records from the previous generations for the ideal location and direction for the tomb. He personally studied Feng Shui theory and designated its location and direction. He ordered for lavish decorations for the stone adornments of the surroundings of the grave mound, which was against the regulations of the royal family. He found his reasons in the precedent that allowed sumptuous decoration. However, for the arrangements of Jeongjagahk(T shaped building) and other attached facilities, he made unusual choice that other precedent royal tombs did not have. Instead of following the conventions that Jeongjagak should be facing south of a grave mound, he put it on the right side of grave mound. Also conventionally, Subokbang(a place where guards can stay) and Suragan(a kitchen that prepares food for sacrificial rites) should be facing symmetrically, but they too, were on the same side with Jeongjagak. It was a measurement that the grave mound of Hyeunryungwon can have a full view without being obstructed by other facilities and it was also personally ordered by King Jeongjo. The distinguishing features of Hyeunryuwon was motivated by King Jeongjo’s filial affection, and his academic pursuit of precedent royal tombs initiated the unconventional and innovative challenges.
        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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