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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긴급중재인제도(emergency arbitrator)는 당사자가 중재에 대한 신청 이 접수되거나 또는 중재판정부가 구성되기 전에 긴급하게 필요한 잠정 적 구제를 위한 긴급 중재인 선임을 신청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와 같이 긴급중재는 잠정적인 구제가 부여되지 않으면 회복 불가능한 손해 또는 중대한 손해를 입게 될 당사자에게 중재판정부 구성 이전에 절차를 시작 하여 긴급의 잠정적 구제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긴급중재인제도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중재의 장점을 희생하지 않고 현 실적인 문제, 즉 효과적인 긴급 구제를 얻기 위한 당사자의 필요에 부응 한다는데 있다. 이러한 장점을 가진 긴급중재인제도는 주요 선진 국제중 재기관의 중재규칙에 도입되면서 주목 받고 있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싱 가포르와 홍콩이 긴급중재인제도를 신속하게 도입‧입법하고 있어 국제적 으로 긴급중재인제도를 도입하려는 국가들의 입법적 모범이 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중재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홍콩 및 기타 국가에서의 긴급중재인제도를 중심으로 긴급중재인제도의 의의와 도입 경과, 긴급중재절차에 관한 단계적 고찰, 긴급중재인제도의 문제점, 긴급중재인제도 도입에 있어서의 고려사항의 순으로 살펴보면서, 우리나라의 긴급중재인제도 도입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입법예고된 중재법 개정안에는 긴급중재인제도에 관한 조항을 포함하 고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재기관인 대한상사중재원에서는 국제중재규칙을 개정하여 긴급중재인 제도의 도입을 준비 중이다. 긴급 중재인제도는 선진적인 중재제도를 도입하여 한국 내에서의 국제중재를 활성화시키는 차원에서 그 도입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긴급중재인 조항 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중재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경우, 중재판정부의 정 의에 긴급중재인이 포함된다고 규정하는 싱가포르 국제중재법이 좋은 모 델이 된다고 할 것이다.
        2.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의 논점은 동방 로마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408-450)를 통해 과연 동방 로마제국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이야기 되는 것처럼 caesaro-papism 으로 정의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슈멤만의 항변이 옳은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방 로마제국은 교회가 국가로부터 어느 정도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동방 로마제국은 “비잔틴 제국 황제-교황주의” ‘Byzantine caesaro-papism’로 국가가 교회를 조정한다는 견해가 널리 퍼져있다. 동방정교회 학자인 알렉산더 슈멤만은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면서 ‘교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는, 어떤 조약 혹은 법률상의 제한에 의해서 연결되어진 것이 아니라, 그러나 교회 신앙에 의해 말해진 진리(truth)에 의해서 연결되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회의 신앙은 먼저 황제가 그리고 나서 그를 통해 제국 그 자체가 교회 신앙의 진리로서 그리고 황제나 제국의 우위에 있는 진리로서 인정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일단 슈멤만의 주장을 전제하면서, 테오도시우스 2세가 그렇다면 종교와 정치 사이에 언제나 연결되어 있던 특별한 관계 속에서 황제는 과연 진정으로 교회 분쟁의 중재자인가 혹은 결정자인가를 검토하려고 한다. 필자는 네스토리오스 논쟁(428-431), 즉, 네스토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로 재임했던 428-431년, 특별히 테오토코스 논쟁에 휘말리면서 그의 실각까지의 역사적인 재구성을 통해 이러한 쟁점을 분석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논문이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테오도시우스 2세의 입장을 논의하지만, 방법상 교리논쟁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테오도시우스 2세가 전체 역사적 정황 속에서 평가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자 한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 로마제국을 최초로 기독교제국으로 명명한 테오도시우스 1세의 손자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의 죽음 이후 장남인 아르카디우스(395-408)는 콘스탄티노플을 통치하였고 차남인 호노리우스(395-)는 이태리 지역을 통치하였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408-450) 아르카디우스의 장남으로 40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아르카디우스는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그는 408년부터 450년까지 42년 동안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전 생애동안 통치한 최초의 왕이 되었다. 테오도시우스 2세가 네스토리오스의 논쟁에 관여하게 된 때는 그의 아버지 알카디우스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였던 크리소스토모스를 실각시킨 지 불과 사반세기가 겨우 지난 때였다. 따라서 콘스탄티노플, 즉 동방 로마 제국이 지향하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입장이 크게 변화 되었으리라고는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소스토모스와 네스토리오스의 실각 사건은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기에, 두 사건을 함께 고찰하는 것은 동방 로마제국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