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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선 후기 연행사는 청나라 문인들과 필담을 하거나 간찰을 보냈으며, 서예 비첩을 감장(鑒藏)하거나 금석학 교류활동을 활 발히 전개하였다. 본 연구는 이계 홍양호 『이계집』과 관암 홍경모 『관암전서』·『운석외사』에 기록된 서신, 제발, 서문 등을 확인하여 청대 문인 대구형, 기윤, 섭지섭과의 서예 교류 를 주요 연구 범위로 설정하였다. 위 문집과 『동문신교척독 책』과 『두남신교첩』자료를 활용하여 저서, 비첩, 서찰 교류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또한 홍양호와 홍경모의 학서 소양, 금석 고증 능력, 비첩 감장 원칙을 논술 및 분석하여 교류 의의를 도출하였다. 홍씨 가문은 양국 문인의 가족적인 서예 교류의 대표적 사례이자 견고한 학문적 토대 위에서 진행된 교류를 의 미한다. 양국의 문인들은 필담을 통해 고금의 서예, 금석 학술 에 대해 전면적이고 심도 있는 토론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다 층적인 문화교류는 한·중 서예문화의 발전을 촉진하였다는 점 에서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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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4.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캘리그라피가 노인의 우울과 고독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내러티브 연구이다. 현재 노인을 대상으로 한 캘리그라피 활동 연구가 미미하다. 그러므로 노인의 심리 치 유를 위한 방법으로 접근해 볼 필요성이 있다. 연구 목적은 우울과 고독감을 가진 노인의 정서 치유에 도움을 주는 기초자료가 되고자 한다. 연구 참여자는 우울과 고독감을 호소하 는 67세의 여성 노인이다. 참여자에게 캘리그라피 활동을 2023년 5월부터 8월까지 총 10회기 실시하였다. 자료 분석은 내러티브 탐구 수행 절차에 맞추었고, 정량적으로는 우울과 고독감을 측정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첫째, 참여자의 아픔 은 신체적 통증과 우울과 고독감이었다. 둘째, 참여자의 아픔 의 원인은 선천적인 연약함과 노화로 인한 만성적 통증과 남 편과 자녀의 죽음으로 상실에 따른 우울과 고독감이었고 그 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다. 셋째, 캘리그라피 활동에 대한 효 과는 참여자의 표정이 밝아졌고, 상실에 따른 고독과 우울감 이 감소 되었으며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고 자존감이 상 승 되었다. 넷째, 참여자의 우울과 고독감은 감소하였다. 결론 적으로 캘리그라피 활동은 노인의 우울과 고독감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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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23.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서예의 미적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변화에 기초한 다. 현대의 서예는 현상적 측면에서 볼 때 창작의 영역에서 전 통과 다른 풍모와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인간만의 영역 이었던 서예 예술의 탄생 과정이 AI 서예 로봇이 등장하면서 혼란을 맞고 있다. 현재로선 AI의 서예 창작을 예술로 인정하 기 힘든 분위기지만 급변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미래의 서예 에 대한 추세를 예측하기 힘든 실정이다. 21세기의 서예는 현 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학은 물론 사회학적 요소가 매우 강조되고 있다. 이는 과거의 전통 서예와 다른 형식의 미학적 메커니즘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 대 서예의 가장 큰 특징은 다원적 시각화 경향이다. 이 이면에 는 서예 미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 및 새로운 창작의 형식과 관 련된 문제들이 존재한다. 현대 서예의 창작적 성향은 과거보다 더욱 실험적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에 서예의 심미적 가치 기준이나 그 미학적 특색을 가름하기는 쉽지 않다. 본고에서는 현대 서예의 변화 과정을 좀 더 체계적으로 규명 하기 위해 서예학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제시하 였다. 현대 서예의 발전과 변화는 결코 서예 예술 내부의 자율 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새로운 미적 패러다임의 발생은 필연적으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예술사회학의 각도에서 탐구해 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현대성이란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현 대의 서예가 고대와 다른 새로운 미학적 규범의 전환을 의미한 다. 다만 오늘날 서예의 현대화 과정에서 대두되는 시각적 경 향은 이미 많은 대중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서예계의 공통된 신념으로 정착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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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23.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Among the silk manuscripts unearthed from Mawangdui No.3 Han dynasty Tomb, there are two pieces of silks record the literature which relate to Yi. One of them records Zhouyi and Ersanziwen, and the other one records Xici, Zhong, Yao, Miuhe and Zhaoli. Many scholars believed that the two silk manuscripts were written by the same writer. After comparing plenty of characters, we found that the fonts of these two silk manuscripts have obvious differences in components, strokes and structures. Therefore, we believed that these two manuscripts are probably not be written by one person. Moreover, there still remains controversy about the age of the master copies of these literatures which relate to Yi. After analyzing some special characters and words in these literatures, we speculated that the master copy of Xici which was written earlier than the Qin Dynasty, is influenced by the Chu characters of the Warring States and written by seal-clericle script. The languages of some part of Yao and Miuhe are obviously influenced by Qin dynasty’s language using hab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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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2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역사학, 도상학, 서예학적 관점에서 공의석굴(鞏義石 窟)의 북조시기 조상제기(造像題記)를 심층적으로 고찰했다. 특 히 조상제기의 내용에 치중한 선행연구와 달리 조상제기의 필 법, 결구, 장법, 풍격 등에 대해 전면적이고 상세한 분석을 진 행해 다음과 같이 객관적으로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해 냈다. 먼저, 본고는 역사적 분기와 조상제기의 구체적 특징을 종합 적으로 고찰해 공의석굴의 북조시기 조상제기를 단순히 역사적 분기로 구분한 선행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조상제기의 서풍에 대한 분석을 처음으로 진행했다. 둘째, 공의석굴은 지리적으로 특수한 위치에 있어 북조시기 조상제기의 서풍에서 다원적이고 다층적인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여러 왕조의 교체, 문화의 다원화, 지역적 특성과 같 은 요소가 작용해 서풍의 다양성을 표출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셋째, 공의석굴의 북조시기 조상제기에서 위비체(魏碑體)는 줄곧 주류를 차지했고, 동시에 주변의 다양한 요소들을 받아들 여 탈중앙화 경향이 강하게 표출해 예술적 가치가 높은 서풍을 구현해 냈다. 마지막으로, 공의석굴 북조시기 조상제기의 필법, 결구, 장법, 풍격을 치밀하게 고찰해 다소 소박하지만 천진난만한 조상제기 의 서풍을 규명해 냈다. 당시 유행한 복고풍의 예서, 남조 서풍 의 영향 등으로 인해 장엄한 ‘낙양체(洛陽體)’나 연미한 남조의 ‘이왕(二王)’과는 구별되는 공의석굴 만의 지역적 자연미를 표 출하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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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22.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東晉의 王羲之(303-361)가 쓰고 宋人(米芾(1051-1107)로 추정)이 편찬한『草訣 百韻歌』에서 시작한다. 기존 歌訣 해설과 다르게 본 연구는 전통 이론과 실제 붓을 잡고 쓴 경험을 바탕으로, 宋人이 가결을 통해 후학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초서의 요체를 새롭게 밝히고 자 한다. 이로써 전통 이론 중, 초서에게 부여된 ‘積其點畫, 乃成其字’, ‘草以點畫為情性, 使轉 為形質’과 같은 간단명료한 원칙의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초서 문자 구조에 잠재된 변화규칙과 초서의 ‘連綿’, ‘游絲’의 추론과 설명 방식을 고찰할 것이다. 이는 초서 문자의 해독과 초서 문헌의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데 의의가 있다. 본 연구의 방법 및 과정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1) 『草訣百韻歌』 중 간략하게 서술된 초서 변화의 요체를 해석하고, 점을 찍는 것에서부터 선을 연결하고 문자를 구성하는 기본 ‘結字 法’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圓筆’, ‘潤筆’, ‘渴筆’, ‘轉筆’ 등의 필법이 포함되며, ‘楷’에서 ‘草’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문자의 틀과 필획의 구조 변화도 설명한다. (2) 초서에서 가로획과 세로획의 교차 운용 법칙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나아가 ‘撇捺改筆’, ‘戈法變換’ 등 획과 선의 배치, 한자 구조의 변화 등도 아울러 분석하고 논한다. 이는 초서 쓰기, 읽기, 이해에 이론적이고 과학적 해결법을 제공할 것이다. (3) 초서 章法의 기본을 해석하고 초서 필획 중 虛・實의 분배와 운용 및 ‘計白當黑’, ‘意連形連’과 같은 필획 구성의 요체를 고찰한다. (4) ‘連綿’을 재구조화하고, 초서의 점과 획의 변화 규칙을 활용하여 ‘連綿’, ‘游絲’의 필법 원리를 해석한다. 또한 고문헌의 해석에 응용하여 ‘龍蛇競筆端’에 포함된 초서로 쓰인 한자의 수수께끼를 풀어낼 것이며, 이로써 초서 筆法字學 학습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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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2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朝鮮王朝實錄을 기초 자료로 삼아 15세기 명나라 사신의 서화 교류의 구체적인 발생 양상을 분류하여 정리하였고, 題畫詩및 題 跋⋅記文등 문헌 자료에 근거하여 서화 교류가 문학 교류⋅우호 외교⋅ 문화 수출 분야에 담당하였던 역할을 밝혔으며, ‘朝中文化交流史’ 및 ‘東 亞藝術史’의 각도에서 15세기 명나라 사신의 서화 교류의 특징과 의미를 고찰하였다. 우선, 15세기 朝鮮使行중 서화 교류의 구체적인 발생 양상은 주로 作 畫留書⋅禮物贈受⋅請書請畫세 가지로 분류된다. 일부 書畫에 능한 명나라 사신은 朝鮮을 방문하는 동안에 서화의 재능을 펼쳐 적극적으로 서화 교류에 나서는 동시에 조선 문인과 詩文唱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서화 교류의 결과물, 즉 그림과 글씨는 詩文唱酬의 대상이 되었고 한시는 당시 서화 교류의 형태를 기록하였다. 15세기 명나라 사신은 양국의 우호 관계를 증진하고 문화적인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서화를 선물하곤 하였다. 명나라 사신은 귀한 선물을 사양하면서 조선왕실에서 증여한 書簇⋅畫簇⋅法帖⋅書帖등 서화 선물을 흔연히 받 아드렸다는 기록도 서화 교류의 융통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또한, 명나라에서는 조선 서화에 대한 생기면서 명나라 사신은 조선왕실에서 적 극적으로 조선 서화를 청탁하기 시작하였다. 15세기 명나라와 조선 간의 서화 교류는 보편성과 편의성을 가지고 있다. 詩文唱酬를 진행하는 데 참여 인원이 높은 문학적인 수준을 갖춰야 한다는 상황과 달리 서화 교류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교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 많이 배우지 못한 명나라 內史⋅少監도 禮物贈受⋅請 書請畫의 방식을 통해 서화 교류에 많이 참여하였다. 한편, 서화 자체의 특성(휴대성, 적당한 가격, 예민한 문자가 없음 등)은 선천적인 편의성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명나라 사신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친한 조선 관원에게 서화를 선물로 하여 우호 관계를 추진하면서 서로 부담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朝⋅中문화 교류사’ 및 ‘동아시아 예술사’의 시각으로 볼 때 15세기 朝鮮使行중 발생한 서화 교류는 새로운 ‘畫題’⋅畫法을 도입 하여 15세기 조선 畫壇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고, 16~17세기 朝⋅明간 활발한 서화 교류의 성황을 위해 토대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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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2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역대 서론에 나타난 품평의 개념과 그 내면의 미학적 가치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역대 서가 들은 서예를 품평하는데 격조, 자연, 대비 등의 방법을 통 해 간결한 언어와 생동감 있는 비유법을 많이 사용하며,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서예적 특징에 대해 깊이 묘사하고 있어 많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품평의 등급에서는 먼저 ‘능품(能品)’은 필묵의 기교, 필법, 묵법, 결구, 장법 등이 정통함을 뜻하지만 ‘묘품(妙品)’ 보다 서가의 독창적인 개성미, 풍격미, 자연미, 정서미가 확연하지 않으며, ‘신품(神品)’과 비교해 ‘능품’의 서가는 천부 적인 재능이 부족하고 ‘일품(逸品)’에 비해 정취가 부족함을 뜻한다. ‘일품’과 ‘신품’은 모두 서예의 가장 높은 등급으로써 ‘일 (逸)’은 비교적 노장철학의 무위(無爲) 사상과 가까우며, ‘신(神)’은 비교적 공자철학의 중화사상에 가깝다. 기법 중시의 ‘신품’은 마음이 하고자한 바, 법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고, 기법을 초월하는 ‘일품’은 자연의 묘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일품과 신품’은 모두 서예의 최고 형식이지만 ‘신품’이 ‘일품’ 보다 낮다고 보는 이유는, 인위적인 흔적이 그래도 존재하기 때문에 아래에 두고 평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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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2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서예는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여타 예술 분야보다 매우 발 전되었다. 특히 서예교육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세련된 인 격’ 실현이라는 전통적 사상과 현대적 의미를 달성하는데 효능 이 있다는 생각으로, 정부에서는 초ㆍ중ㆍ고등 교육과정에 서 예를 필수과목으로 선정하여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실 천하는 과정에서 ‘기능’을 위주로 한 서사교육 방식으로 진행되 면서 ‘예술교육(美育)’의 핵심인 상상력과 창의성이 결여되면서 학생들의 ‘흥미성’을 잃고 있다. 이렇게 흥미 없는 기술 반복 교육은 ‘美育’의 궁극적 목적인 ‘세련된 인격’ 완성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다양한 심미전달 방법을 통하여 흥미 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을 계발하여 ‘美育’이 ‘흥미’를 통해서 ‘도 덕’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중국 전통 사상인 ‘善美一體’를 실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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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2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Ya-Bing Wang’s Ink Rhyme is a contemporary dance that interprets the essences of Chinese calligraphy art. The dancers depict the Chinese characters through the movement of their bodies, and each movement reflects the energy and power of strokes and structures. The dance manifests that ‘Life of Ink Rhyme’ is the ‘life of artistic conception of painting’, as well as the ‘life of dance art’. The dance creations of Ink Rhyme reflect upon the learning of traditional Chinese calligraphy. Besides the writing of the characters, the humanism and art contained within the dance could be applied to the development of creative design, thus facilitating cross-domain integration. Between the traditions and innovations, the philosophical thinking of cultural insights can incorporate new media, and deliberate over the display of contemporary diversity in the art of Chinese calli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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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2020.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중국서화의 사회적 문제를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서화의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첫째, 서화는 사회성이 있다. 중국서화의 사회 성이란 중국서화가 갖고 있는 사회적 기능을 내포하는 것을 말한다. 즉 중국서화는 사회생활의 구성부분으로서 사회생활의 각 방면에 존 재하며 사회생활의 모든 면에 영향을 준다. 중국서화의 사회적 구현 은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의 사회생활은 서화를 떠날 수 없고 서화는 사회생활의 각 방면에 존재하며 서화는 중국인들의 이상과 신념의 추구를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이 글은 이어 ‘진인상운’ㆍ‘당인상법’ㆍ ‘송인상의’ㆍ‘원명상태’ㆍ‘청민상변’ㆍ‘현대인상신’ 등 서화의 사회적 특 징을 분석했다. 이 글에서는 서화가 사회성으로부터 갖는 서화의 사회적 영향력을 논술하였다. 예를 들면 서화는 중국사회에서 여론 선도의 중요한 매 개체로 전면적으로 개입시킨 사회생활의 여러 차원이며, 서화는 중국 인들의 정신적인 수양을 쌓게 되고 또 하나는 한자를 매개체로 한 예술로써 중국과 세계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글은 서화의 미래를 향한 사회적 영향을 강조하여 미래 서화 활동을 더욱더 중국 사회 각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전개되고 중국 서화를 더욱더 꽃피우 게 하는 면을 북돋우며 전통과 현대를 통하여 중화민족과 세계를 아 우르는 공통적인 문제와 개성을 융합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더 나아 가 세계 중화문화의 국제적 영향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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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020.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고구려ㆍ백제ㆍ신라 삼국시대는 한국 서예의 시작점이다. 그 중에 고구려는 중국과의 교섭에서 비교적 일찍 한자문화를 받아들이고, 민족의 심미관을 융합해 자신만의 풍격을 갖춘 서예를 형성하였다. 고구려는 동북아의 강국으로서, ‘지역 문화 거점’ 역할을 하여서 신 라ㆍ백제ㆍ일본의 서예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멸망한 후에도 고구려 서풍이 여전히 통일신라시대와 일본에 부분적으로 지속되었 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귀족과 그 자손들은 여전히 ‘구양순체(歐陽詢 體)’를 숭상하였는데, 유민 묘지명에 대부분 구양순체의 풍격으로 이루어졌다. 고구려 서예의 대외교섭을 연구하는 것은 한국서예 대외교섭의 시 발점이며, 한국서예 연구의 기초 작업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삼아 한국서예의 대외교섭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보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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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2019.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당나라 서예가 겸 서예이론가인 손과정이 직접 짓고 쓴 『서보 (書譜)』에 나타난 심미관을 살펴 그의 서예미학사상을 고찰하는데 있다. 손과정은 동진(東晉)시대 왕희지와 왕헌지의 필법을 얻은 서예가로 특 히 초서에 가장 뛰어났다. 더욱 그의 진적인 『서보』는 뛰어난 초서작 품인 동시에 내용에서도 박식하고 고상한 문장으로 서예이론뿐만 아니라 당시의 미학저작에서도 불후 걸작이라 칭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서예로 서의 예술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론으로서도 매우 가치 있 는 명작이다. 『서보』는 서예의 원류를 비롯하여 각 서체에 대한 기능과 특징, 그 리고 서예를 배우는 태도와 수양을 논술하고 있다. 특히 글씨 쓰는 기본 기법과 서예의 창작 경험들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서예의 골기(骨氣)에 있어 ‘양강(陽剛)의 아름다움’과 ‘음유(陰柔)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의 (意)와 세(勢)의 통일을 말한다. 그리고 충화미(沖和美) 등으로 예술심미 를 논술하고 이들을 ‘도(道)’의 차원에 이입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손과정의 미학사상은 강하고 부드러움의 조화로 유가와 도가 의 서로 보완된 철리(哲理)가 내재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유가의 “강건 유위 자강불식(剛健有爲, 自强不息)”과 도가의 “청정무위(淸靜無爲)”가 그 의 사상 저변에 깔려 있다. 그래서 손과정의 사상은 그의 서예에 나타난 ‘강하고 부드러움(剛柔)’을 함께하는 심미이상과 부합함을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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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019.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서예와 캘리그라피는 동서양에서 20세기까지 문자를 대상으로 아름답게 꾸미고 이를 예술로 발전시킨 분야이지만, 현 시대에는 전통적인 캘리그래피 조차도 서양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것은 전위주의나 후기 계급주의의 풍조가 문자예술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변화된 문자예술 분야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문자 예술분야에 대한 용어는 전통서예, 현대서예, 디자인서예로, 영문은 클래시컬 캘리그라피(서예), 모던서예(캘리그라피), 디자인서예(디자인 캘리그라피)로 구분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다양하게 확장될 수 있는 서예 분야를 새로운 시각을 갖는다면, 영화, 드라마, 무용, 공연, 회화등의 예술분야와 강연등의 인문학분야, 마케팅의 광고분야에서 이 시대의 트랜드를 반영하여 신선한 서예의 문화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급변하는 문화전반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신진 작가들로 하여금 신문화조류와 함께 한국적 예술원형을 찾고 시대 정신을 발휘하여 창작활동을 펼쳐갈 수 있도록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전반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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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201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 것”이라 한다면, 예술이란 자연적 ‧ 인문적 토대에서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술이 발전하려면 당시대의 문화와 밀접해야 한다. 경험 접촉도가 빈번해야 대상을 여실히 파악하고 반영하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미술사와 문화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예사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그 시대의 유행하는 대상과 방식이 어떠한 것을 수준 높게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다. 서예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한자는 이미 우리 실생활에서 멀어져 있고, 세로쓰기 방식 또한 매우 특수한 필기방식이 되었다. 또한 한자보다는 한글이 주류 서사대상이 되고, 사유의 대상이 됨으로써 한자의 조형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약화된 실정이다. 쓰기 방식도 세로쓰기보다는 가로쓰기에 익숙해져 있고, 기록하고 전달하기 위한 문자의 기능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몫이 되었다. 서예가 이러한 문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전통과 현대, 예술과 디자인, 실용과 예술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새로운 형태의 서예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 현대서예와 캘리그라피는 전통서예와 차별화 된 글자구조를 새롭게 구성하는 일이다. 이 일은 매우 창의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전통적 서예방식은 모델이 있었고, 그 기준으로부터 어떻게 수용하여 어떻게 변용하였는가 하는 일정한 방향이 정해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쉬웠다. 반면 현대서예와 캘리그라피는 방향도 방법도 수준도 목표도 없이 망망대해에 표류된 상태에서, 경험과 지식과 지혜와 직관을 방법삼아 방향을 잡고 영역을 확장하며 목표에 이르러야 하는 고행일 수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서예 역시 시대에 따라 그 풍격이 변해왔다. 그런데도 변화의 시기마다 자신이 ‘정통(正統)’이라 여기고 변화를 ‘이단’이라 주장하며 거부한 부류가 있었다. 하지만 거부한 것은 소멸되고 거부당하던 것이 주류를 이루며 새 전통(傳統)으로 남았다. 서예사를 회고해보면 한나라 때 초서의 유행을 비난하였고(非草書), 왕희지 글씨의 연미함을 폄훼하였고(古質而今姸), 안진경의 글씨를 추서(醜書)라 비난하였으며, 축윤명과 문징명 등의 글씨를 문둥이 같다고 욕을 하였다. 이렇듯 서예의 역사도 순탄치 않았다. 비난을 받으며 문자 쓰기가 예술로 인식되기 시작한 이래로 왕희지에서 안진경으로, 소동파로, 등석여로 이어지면서 서예사의 뼈대를 형성해왔다. 한글의 역사도 순탄치만은 않았으며, 한글서예의 역사도 시대와 그 시대 주류계층의 수요에 따라 유행을 바꿔왔다. 오늘날의 한글서예 역시 실용과 예술사이, 고전주의와 대중화 사이에서 사뭇 긴장관계가 형성된 듯하다. 문화는 대개 주류계층의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형성된다. 서예 역시 각 시대마다 주류 계층의 유행을 타고 이어져온 유행서풍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디지털 대중시대의 서예문화 또한 다시 한 번 새로운 패러다임에 직면해 있다. 이 시대의 주류 계층인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담론과 이데올로기를 생성하고, 그와 동시에 이 시대에 맞는 서예양식을 구축해 나가는 일에 촉각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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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유위(康有爲. 1858∼1927)는 청나라 때부터 중화민국 때까지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이며 뛰어난 서예가였으며 교육자이다. 그는 장서가(藏書家)였던 조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책을 접하여 경학을 배웠다. 19세에는 대학자인 주차기(朱次琦)의 문하에 들어가 육구연(陸九淵)과 왕수인(王守仁)의 사상에 심취하였다. 또한 서양의 자연과학과 사회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정치적 개혁에 많은 포부를 가졌다. 그는 전통적인 인습(因習), 주자학적 권위주의, 과거제도가 요구하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광서제(光緖帝)에게 변법(變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상서(上書)를 7차례 올리며 ‘무술변법(戊戌變法)’의 주도자로 나섰으나 실패하자 해외로 16년 간 망명하였다. 그는 평생 유명한 저서를 다수 남겼으며, 일찍이 구양순을 배워 풍골경발(风骨勁拔)한 서예로서 이름을 날렸다. 훗날 육조비판(六朝碑版)을 두루 접한 뒤로 당인(唐人)을 버리고 북비(北碑)를 지향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글씨는 근엄한 법도(法度) 속에서도 변화와 창신을 발휘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경지를 형성했다. 특히 그의 서론(書論)인 비학(碑学)을 이론적으로 종합 정리한 『광예주쌍즙(廣藝舟雙楫)』은 서예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그의 서예와 서학이론은 근⦁현대 서예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본고는 강유위 ‘서예실천’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그가 주장했던 서예이론과의 관계를 기술하였다. 그의 이념과 사상 간에는 내재적 연계와 함께 내재적 모순이 공존한다. 다시 말해서 본고는 강유위의 『광예주쌍즙』의 한계를 논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의 중⦁만기시기 서학이론의 변화 및 그의 서학이론과 실천의 모순에 대해서도 다뤘다. 아울러 그의 서예작품의 기법과 풍격 등을 바탕으로 그의 서예이론사상의 맥락을 귀납, 정리하여, 종합적인 평가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강유위는 운필에서 방원(方圆)의 겸용을 주장했고, 특히 그의 행서에는 북비의 의취가 녹아들어가고 필획과 골력이 강건하며, 필세가 기울고 험절(險絕)하여 웅강하고 아름다운 기운을 내포하고 있다. 결체에서는 방필(方筆)의 후중함을 통해 서예의 부족한 듯하며 두터운 형태를 드러냈다. 그리고 단정하고 너그러운듯하면서도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모습을 잃지 않았다. 장법은 들쭉날쭉 엇갈린 멋이 생기고 흥겹고 방종하면서도 호탕한 기운이 흐른다. 이로써 그의 서예는 ‘이기위승(以氣為勝), 이력위미(以力為美)’의 독특한 풍격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의 만년서예는 대체로 비첩융합(碑帖融合)의 모습이 보인다. 특히 행초서의 용필에는 강한 개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행초서는 위비(魏碑)에서 비롯되어 전⦁예가 겸비하고, 장초(章草)와 첩학으로 흘러들어가는 등 다양한 서체가 뒤섞여 나타났다. 강유위는 많은 저술과 수많은 서예작품을 남겼다. 이러한 방대한 자료 에서 그의 서예작품과 서학이론을 분석하고 검토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본고의 미흡한 부분에 여러 선배와 독자들의 아낌없는 질정(叱正)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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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阮元이 자신의 고증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금석 탐구에도 온 힘을 기울여 작성한 논술이 그 유명한 「南北書派論」과 「北碑南帖論」이다. 그 논지는 한마디로 남첩의 고운 글씨를 버리고 북비의 굳센 글씨를 쓰자는 것이다. 완원이 남북서파론을 제기한 원인은 먼저 건륭 ․ 가경연간에 금석학이 흥기함에 따라 북비의 출토가 날로 증가했으며 이것들에 대한 인식도 또한 점차 그 문헌적 가치를 중시하는 것에서 그 예술적 가치를 긍정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고증학풍의 영향으로 乾嘉學派가 考據工夫를 제창한 데에 있다. 완원의 실천 강조는 고증학에서 진리를 추구하던 실사구시가 무실적 실천으로 향한 청대의 학풍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한예를 포함한 북비에 대한 탐구를 통해 당시 첩학으로 인해 쇠약해진 당시 서단을 타파하고 서예의 새로운 방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완원은 고금의 서예를 남과 북 두 파로 나누었을 뿐 아니라 두 파의 대표적인 서가들을 나열하였다. 그리고 상세하고 확실한 자료를 가지고 두 파 서풍의 통서와 성쇠를 묘사하였다. 그는 남파는 대부분 척독에 많이 썼기 때문에 전예의 유법이 쇠퇴했으며 북파는 비석과 편액에 많이 응용했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전예 ․ 팔분 ․ 초서 필법을 보존하고 있다고 보았다. 완원이 서예가 남북 두 파로 나눠진 사실을 제기한 목적은 당 ․ 송이래 성행한 첩학의 기풍을 바로잡는 데에 있었다. 그가 북비가 남첩보다 우수하다고 여긴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남북서파의 연원으로 보면, 그는 북파의 서는 비를 위주로 해서 고법을 간직할 수 있었고 곧바로 한대 예서에 근원한다고 보았다. 후세에 대한 영향으로 보면, 완원은 당인들의 글씨는 북파로부터 얻은 것이 많다고 보았다. 또 다른 이유는 남북 서법 풍격상의 고하의 구별이다. 완원은 북파의 글씨는 강건함을 장점으로 여겼으며 남파의 글씨는 자태가 아름답다고 여겼으므로 둘 사이의 고하는 자명하다고 여겼다. 완원의 남북서파론은 아무래도 극단적이며 서체 발전의 불균형 현상을 소홀히 했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새로 발견된 금석 문자에 광분하고 있던 학자들이나 서가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그의 남북서파론은 만청시기 ‘重碑抑帖’의 풍조를 일으켰으며 현대의 몇몇 ‘二王’의 서예를 부정하는 견해까지도 완원의 이론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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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경』은 성왕 9년(531)에 양나라에서 겸익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판단된다.『금강경』은 양(梁) 소명태자(昭明太子)에 의하여 분장(分章)된 것으로, 처음에는 29장으로 분장되었다가, 그 후 32장으로 세분화된 것이다. 초기 <은제도금금강경>의 번역 오류가 <돈황본 1.2>에서는 교정되거나 추기되었다. 이는 <은제도금금강경>이 <돈황본>보다 선본으로 <돈황본>은 다른 번역본에 의하여 교정되거나 추기된 것이다. <은제도금금강경>의 서체는 북조식남조체이다. 이는 북조필법이 혼용된 남조체로 남조에 서 유행한 북조(北朝)필법(筆法)이다. 즉 80%의 남조체와 특징적인 20%의 북조체가 혼용 된 서체이다. 특히 이체자(異體字)의 사용에 있어서 대부분 6세기에서 7세기 초에 유행한 이체자들을 통하여 <은제도금금강경>의 기록법이 <무령왕능묘지(525)>, <왕흥사청동사리 감명문(577)> 등과 거의 같은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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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 1911-1976)은 한국 현대서단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일으킨 선구자이다. 서예작품에서 검여의 다양한 아호가 확인 되는데 선행연구에서는 서두에서 개괄적으로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논증을 진행하지 못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동안 발표된 도록의 작품을 바탕으로 검여의 아호와 당호를 재정리해 그 사용연대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먼저, 검여(劍如)란 아호는 1952-1976년 작품에서 모두 확인된다. 그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도인(道人), 거사(居士), 학인(學人), 산인(散人)을 추가한 경우도 일부 확인되고, 1968년 뇌출혈 이후에는 왼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의미의 좌수(左手) 혹은 좌수서(左手書)를 추가했다. 둘째, 1964-1968년 작품에서 검(劍)자만 쓰거나 검(劍)자 뒤에 생 (生), 노(老), 도인(道人)을 추가한 경우도 일부 확인된다. 또한 불함도인 (不咸道人)은 1962-1964년, 시계외사(柴溪外史)는 1956-1963년, 청천 후인(菁川後人)은 1967-1968년의 작품에서 주로 확인된다. 셋째, 서실 관련 당호로 검여서소(劍如書巢)와 관훈서소(寬勳書巢)가 확인된다. 검여서소(劍如書巢)는 검여서루(劍如書樓), 검여서원(劍如書 院)이라고도 부르며, 검여가 1962년 11월에 관훈동 통문관 맞은편 건물에 검여서원(劍如書院)을 개원하면서부터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넷째, 거주지 관련 당호로 도곡장(道谷莊 혹은 道谷書室)과 시계고옥 (柴溪古屋)이 확인된다. 도곡장은 1960-1963년 작품에서 확인되며, 시계고옥은 1955년 작품에서만 확인된다. 또한 계우(桂寓 혹은 桂洞寓), 가회우사(嘉會寓舍), 경우(京寓) 등이 확인되는데, 관훈동 서실에서 인천 자택이 너무 멀어 1963-1964년 서울의 여관에 잠시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째, 흠모하는 인물 관련 당호로 소완재(蘇阮齋)가 보이는데, 1965 년의 작품에서 처음 확인되며 1965-1976년에 주로 사용하고 있다. 소완 재(蘇阮齋) 뒤에 주(主), 주인(主人), 주인좌수(主人左手)를 추가하기도 했다. 여섯째, 성품 관련 당호로 몽학선관(夢鶴仙館) 혹은 몽학선헌(夢鶴仙軒) 이 확인되는데, 이는 검여의 태몽과 관련된 것이다. 전자는 1964-1976년 사이의 작품에서 주로 확인되고, 후자는 1974년 작품에서만 확인된다. 또 한 1975-1976년 작품에서 눌옹정(訥翁亭 혹은 訥翁亭主人)이란 당호가 확인된다. 이상과 같이 작품에 보이는 다양한 형태의 아호 용례를 구체적으로 논증해 보았다. 이를 통해 검여의 작품을 시기별로 감상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연대미상의 작품들에 대한 제작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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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018.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t is an irreplaceable important issue in the artificial intelligence (AI) development of the 21st century to establish a database, to recover the related memory, and even to extract big data from written texts in the Chinese characters cultural circle. Theories about the “transitional forms” and “intermediary graphs” of Chinese characters provide theoretical basis for the big data excavation of the written texts in Chinese characters cultural circle. Chinese characters have been deconstructed twice during its long-time development history from the Warring States period to the Six Dynasties period. Experts tend to focus on the first time which is known as “libian” (transformation of the graphic shapes of the zhuanshu into clerical script forms) so there are lots of investigation and research on it. Regard to the second time, as the cursive scripts prevailed, the components of a graph can be reorganized or distorted and some strokes’ order can change the direction in hand-writing process, making a new distinguishing mechanism to produce batches of “transitional forms”. A very few of the “transitional forms” were evolved into “fixed standard scripts”, and a bulk of them were conversely developed as “intermediary graphs” gradually. The first priority for establishing a database for the written texts in the Chinese characters cultural circle is to exclave massive amounts of related information based on big data construction. It is imperative to collect and sort the ancient written letters which are of great value in Japan, Korea and China. This database acts as not only the foundation of the research on history of Chinese writing systems and new historical data, but also the “firsthand data” for revealing the rules of the development of cognitive behavior and intellectual inheritance of human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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