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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晋陽姜氏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名門大族으로 역사상 많은 인물을 배출해 각 방면에서 크게 활약해 왔다. 진양강씨는 모두 高句麗 말기의 장군 姜以式을 시조로 삼는다. 강이식의 후손 가운데 고려 후기 姜啓庸은 벼슬이 國子博士였으므로 그 후손들을 博士公派라 일컫는다. 강계용의 손자 姜師瞻은 벼슬이 監察御史였으므로 그 후손들을 御史 公派라고도 한다. 어사공은 공목공의 증조부이다. 恭穆公 姜蓍는 1339년 晋州에서 태어났다. 1357년 成均試에 합격하여, 1362년 출사한 이후 내외의 여러 관직 을 거쳐 門下贊成事에 이르고 晉山君에 봉해졌다. 恭穆公이 가문의 위상을 크게 격상시켰고, 공목공에 이어 그의 형제 와 아들들이 모두 정승의 반열에 들어 일국의 명문이 되었다. 당시 불교가 성행하던 시대에 이미 儒敎思想을 철저히 실천했고, 실 용학문인 農學에도 관심을 가져 農書를 간행해서 보급했다. 두 아들 通亭 姜淮伯, 通溪 姜淮仲이 朝鮮 왕조에 다시 출사하여 가문의 기반을 닦았다. 이후 姜碩德, 姜孟卿, 姜希顔, 姜希孟 등 학문에 있어서나 仕宦에 있 어서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와 朝鮮王朝 내내 名門家로서의 위상을 유지했다. 이 가문이 이렇게 장기간 동안 명문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 던 것은, 好學과 興學의 정신, 孝友와 忠節을 숭상하는 정신, 겸양과 節儉을 중시하는 정신, 實學的 분위기, 禮讓崇尙의 家風, 행정능력의 출중함, 中國文物의 수용정신 등이 原動力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