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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결과 439

        302.
        2012.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에서는, 한·일 현안문제 중 소위 "독도문제"를 취급코자 한다. 한국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토권주장과 관련하여, 그것이 한국령이란 여러 가지 역사적 근거가 있지만, 특히 포츠담선언(8)에 중점을 두어, 국제법적 견지에서 철저히 고찰하여 보고자 한다.
        307.
        2012.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308.
        2012.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314.
        2012.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318.
        2011.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900년 대한제국 칙령 41호가 반포되어 울릉도가 지방행정에 편 입되는 시기에‘무주지 양코도(ヤンコ島)’가 등장한다. 한해통어 지침 저자 구즈우 슈스케(葛生修亮)는 지도에도 없는‘양코도’를 등장시켜 양코도무주지설을 유포하고 독도 침탈의 저의를 드러냈 다. 러시아가 1899년 울릉도 점령을 선언하자 구즈우는 울릉도에서 보이는‘새로운섬’‘양코도’를 발견했다고 유포하였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직선거리 92Km, 오키도에서 직선거리 160Km지점에 있지만‘양코도’는 울릉도와 오키도의 중간 120Km지점에 있으며 울릉도가 보인다고 설명하였다. 이것은 독도가 울릉도를 감시할 만큼‘가깝다’며 전략적으로 상호 보완적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이후 1905년 전후에 출판된 조선 지리서에는 울릉도와 나란히‘양 코도’가 등장하지만,‘양코도’는 전략적으로 일본인들이 사용할 구즈우가 만든 가상의 섬이었다. 구즈우는 동해안에는 울릉도 하나만 있음을 강조하였다. 무인도였 던 울릉도에는‘일한 어민들이 양코도라고 한다’라고 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발견된 섬이 있지만 조선인들은‘양코도’를 알지 못 했다고 독도무주지설을 유포하였다. 이것은 강원도 삼척 장울리를 근거지로 한 상어어민의 증언을 날조한 것으로 당시 보고된 수산 보고서와 상호 대조해 보면 거짓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구 즈우는 일본인들의 전통적인 수법을 이용하여 가상의 섬‘양코 도’를 이용하여 독도무주지설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일 본 관료들은 날조된 독도무주지설을 알고 있었으나‘시국(時局)’ 이라는 이유로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시켰다. 이렇듯 가상의 섬‘양코도’등장은 흑룡회의 계산된 독도 침탈 야욕에서 비롯되었다. 흑룡회는 울릉도와 오키의 두섬 중간 30리 (120Km) 지점에 양코도가 있다는 사실을 정계와 학계, 언론에 사 실인 것처럼 알렸고 조선 진출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관료나 학 자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독도무주지설를 수용하였다. 현재까지 일 본의 독도 침탈은 러일전쟁의 전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독도무주지설은 1900년대 조선 해상권 독점을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의 각축 시기에 만들어진 흑룡회의 자작극이었다.
        320.
        2011.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교육과학기술부가 2010년 이후 독도 명기 단계를 해설서에서 교 육과정으로 상향 조정하고,‘초ㆍ중ㆍ고교 독도교육 내용체계’를 제시한 것은 최근 일본의 독도 교육 강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일본의 독도 교육 강화의 내용을 살 펴봄으로써‘초ㆍ중ㆍ고교 독도교육 내용체계’의 구성 체계가 부 당한 일본의 독도 교육의 내용을 불식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초등학교에서 독도에 관한 교육을 지도로부터 시작하지 만 한국의 경우 울릉도와 독도를 서로 바라볼 수 있고, 강원도 삼 척, 울진 등의 동해안 지역과 울릉도는 서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 진 자료를 먼저 제시한다면 보다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독도 교육 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세종실록지리지』등의 문헌자료를 제시한다면 초등학생들에게 문헌자료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그것을 통해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보다 쉽 게 인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 검정 통과된 일본의 교과서의 경우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강조한다.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된 시점을 일본 외무성 죽도 홍보 팸플릿에서처럼 17세기 중엽이라고 내세우면서 에도시 대 때부터 울릉도로 가는 정박장이나 어채지로 독도를 이용하였다 고 한다. 일본은 1693년 안용복ㆍ박어둔 납치사건으로 인해 1696 년 울릉도 도항을 금지했지만 독도 도항을 금지하지 않았기 때문 에 일본이 독도를 계속 영토로 보유하였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안용복 개인을 내세우기 보다는‘울릉도쟁 계’때 조선과 일본 정부가 울릉도 영유권 논쟁을 벌인 결과 일본 에도막부가 조선으로부터 울릉도가 더 가깝기 때문에 조선의 영토 로 인정하였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 와 오키섬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를 비교하고,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볼 수 있지만 일본의 오키섬에서 독도를 바라볼 수 없다는 것 을 내세울 필요가 있다. 일본의 독도 강탈은 일본 제국주의의 영토 야욕에서 비롯되었음 을 중학교 이후의 교과서에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2008년 7월 14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중학교 사회교과목 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 서 북방영토는 일본의 고유영토이며, 러시아가 불법적으로 점거하 고 있다는 것을 기술하면서 독도문제를 동일시하여 기술하고 있 다. 그런 점에서 중학교 교과서에서 일본의 고유영토설을 비판함 과 동시에 일본이 주변국가와 벌이고 있는 영토 분쟁, 즉 센카쿠 열도와 북방 4개 도서 문제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이 본격화된 시점으로부터 시작된 영토 분쟁이라는 점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독도 교육의 총괄 목적을“우리 영토에 대한 올바른 수호 의지 를 갖추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에 적합한 세계 시민 의식을 함 양한다”라는 시각에서 독도문제를 중심으로 한「동아시아사」의 영토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단순한 영토 분쟁의 차원에서의 교육이 아니라, 역사화를 통해 일본에게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고, 세계 시 민 의식을 일깨우는 교육이 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