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작은 동아 습윤지 농작물의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서 고금을 통하여 국가의 재정과 식량원을 조달하는 주역의 위치를 차지해 왔었다. 또한 이러한 위상은, 물론 동남아 제국을 포함하여, 중국대륙과 한반도 및 일반열도로 이어지는 지역을 중심으로 기술교류와 이해관계를 맺어오면서 형성되어 왔음에 틀림이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더욱 두드러진 교양적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고, 더우기 문화적 교체는 물론 외침과 내환을 수없이 겪는 동안 농업조건은 개간과 황폐 및 회복을 거듭하였고, 이 위에서 도작과 도작기술의 수용발전은 칠전팔기하여 왔음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역사는 왕조실록을 중심으로한 조정의 기록은 풍부한 반면에 지방과 농촌의 기록은 지극히 비약한 것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도작과 도작기술의 변천상을 알 수 있는 길 또한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으며, 결국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편찬되기 시작했던 농서들을 시대별로 구분하여 검토하고, 다시 종합적으로 비교고찰하면서 맥락을 더듬는 도리밖에 없다. 본 연구는 우리나라 도작기술이 여말까지 직수입 되었던 고대중국의 한전식 기술로 부터 어떻게 우리의 실정에 맞추어 성립될 수 있었고, 또한 이들로부터 독창성을 찾아 재정립된 기간은 무엇이며, 이들이 조선시대의 파란많은 내외란을 통하는 동안 어떻게 존속되고 변천해 왔으며, 이들 결과가 선말에 이르러 존속 발전하면서 치루어낸 역할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The rice culture, the most representative farming in humid regions of East Asia, have been playing a decisive role in supplying finance and staple food of the nations. This situation must be formed with exchange of techniques and interests in the matter betwen China, Korea and Japan. Especially Korea was obligated to playa bridge role because of geographical conditions, thereby the situations of agriculture were repeatedly reclaimed, and recovered by changes of cultures during external aggression, and internal disturbances. Thus, it is obvious that development of rice culture and its techniques was being undaunted in Korea. Nevertheless, in history of Korea, the documents of the government on chronicles of the dynasty were plentiful, while they were very poor in countryside and rural communities, so that it is very hard to search the transition process of rice culture and its techniques. Finally, the faming books that were begun editing from the early Chosun dynasty are here divided chronically and examined, and also the interrelationships are compared and discussed here. The objectives of this study were to discuss the following questions? How were the dryfarming techniques, introduced from the ancient China by the end of Koryo dynasty, established to fit for our situations? What were the basis for reestablishment of the techniques with originality? How were they continued and changed through the internal and external wars in the Chosun dynasty? What were suggested from these continuously results by the end of the Chosun dynasty~ulcor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