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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iographical Study of Missionary Henry G.Appenzeller Based on Daniel M. Davies’ Six Stages KCI 등재

  • 언어ENG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24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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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신학 (Theology of Mission)
한국선교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Mission Studies)
초록

한국 개신교 선교는 공식적으로 1885년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제물포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 일본의 박해와 한국전쟁의 비극이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한국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이룩하였다. 특히 한국 감리교회는 미국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는 1885년부터 1902년까지 한국에서 사역하는 동안 진정한 선교사, 전도자, 목사, 행정가, 교육가, 개척자, 학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서양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을 세웠고, 신약성경을 한국어로 변역했으며, 러시아, 중국, 일본의 압제 속에서 한국을 적극적으로 변호했고, 최초의 한국어 개신교 신문을 발행했다. 또한 개인의 영혼구원뿐 아니라 한국사회 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선교사를 ‘그리스도 의 군사’로 이해했으며, 그리스도의 군사는 무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방민족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최후의 승리가 그리스도께 있음을 확신했다. 그는 감리교 선교사였지만 모든 개신교단들이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서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애썼다. 그것은 특히 성경번 역사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가 정치부패, 제국주의의 침략, 가난 같은 사회악에 단호히 대처했지만, 그 시대의 다른 서양 선교사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문화제국주의적 성향과 전통종교에 대한 이해 의 부족, 그리고 그로인한 타종교에 대한 전투적인 태도가 약점으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교적 노력은 한국의 독립, 민주주의 와 근대교육의 발전, 그리고 성경번역과 보급에 크게 공헌했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먼저 선교사로서의 아펜젤러가 등장하기까지의 개인적 배경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Daniel Davies의 구분에 따라 아펜젤러가 한국에서 사역한 17년을 여섯 기간으로 나누어 각 기간의 특징들을 서술한다. 그런 후, 아펜젤러의 선교이해와 그의 한국선교를 통해 드러난 선교학적 공헌과 약점을 정리하고 있다.

저자
  • Byungbae Hwang(Hyupsung University, Missiology) | 황병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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