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on Pil's Residence Issue Revisited
이 논문은 權韠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 그간 언급되어 온 玄石村이 아닌 新門밖 盤松坊임을 규명하고, 그 곳이 권필의 삶과 의식에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권필이 태어난 곳은 新門밖 반송방으로 추정된다. 권필의 가문이 반송방을 거주지로 택한 것은 祖父祺의 代이다. 祺는 사헌부에 있을 때, 中宗祖의 권신인 金安老를 탄핵하는데, 김안로가 危害를 가하려 하자 都城안 明禮坊에서 반송방으로 이거하게 된다. 부친인 擘은 도성 안에서 태어나 15세 무렵 부친을 따라 이거한 것으로 보인다. 벽은 文科로 진출하나 乙巳士禍期에 知己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정치 현실에 뜻을 잃고 詩에만 專心한다. 그는 항상 10里거리인 마포강가 현석촌을 찾는데, 1580년 중반 무렵에는 현석촌으로 이거한다. 1569년이 生年인 권필은 반송방에서 태어나 10대 중반 부친을 따라 현석촌으로 이거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작품을 통해 그가 반송방에서 幼少年시절을 보냈고 이곳이 그의 의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乙未暮春, …」같은 작품은 현석촌으로의 이거 이후에도 盤松第가 남아있었으며, 그 곳이 권필에게 懷古의 정서를 자아내게 하는 공간임을 전해주고 있다. 「家有佳樹七株, 皆先祖承旨府君手植也. …」은 특히 주목할 만 하다. 긴 제목 가운데 ‘近六十餘歲’라는 내용은 盤松第의 나무들이 1530년대 중반, 즉 祖父가 반송방으로 이거하던 초기에 심은 것임을 알게 해준다. 이 작품은 반송제의 내력만이 아니라 이 곳이 어린시절 권필의 정서와 의식을 함양해 오던 곳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舊居地에 대한 정서와 先祖에 대한 追念의 태도에서 볼 수 있는 남다른 의식은 여타 작품의 해석 및 시세계의 이해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낸 반송방은 권필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공간이다. 權近이래 勳舊家의 면모를 점차로 잃어가던 그의 가문이 마포 강가 현석촌을 근거지로 삼게 되는 일련의 과정 가운데 中間地點이라 할 수 있다. 권필은 가문의 전통을 의식하고 자부하지만 都城안 - 盤松坊- 玄石村의 移居로 상징되는 家勢沈降의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을 둘러싼 世界에 대한 대응의 태도를 형성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世界의 어두운 그림자와 自由․抵抗精神의 共存은 이러한 저변의 고려 아래 보다 잘 이해될 수 있을 듯하다.
This paper explicates that the place where Kwon Pil was born and brought up was not Hyeonseok‐chon as has been mentioned so far, but Bansongbang outside of Sinmun, and examines what meaning this space has for Kwon Pil. It is conjectured that the place where Kwon Pil was born was Bansongbang out side of Sinmun. It seems that Kwon Pil, born in Bansong‐bang in 1569, moved to Hyeonseok‐chon following his father when he was in his middle teens. Some of his works shows clearly that he spent his childhood at Bansong‐bang, which in turn played a crucial role in establishment of his consciousness. The work beginning with the title “Eul‐mi‐mo‐chun… (In the early spring of the year of Eulmi)” proves that his house at Bansongbang remained after his movement to Hyeonseok‐chon. “There were seven beautiful trees in the house…” is especially worth noticing. The phrase “(the trees) were about 60 years old” in the long title makes us understand that the trees in his house at Bansong‐bang had been planted in the mid 1530s, when his grandfather had moved to Bansong‐bang. This work clarifies not only the history of his house at Bansong‐bang, but the fact that it was a place where Kwon Pil lived in his childhood cultivating emotions and consciousness. On the other hand, his considerable self‐consciousness related to the history of his family that is revealed by his emotion he had while seeing around his old house and his attitude to the memory of his
forefathers has not a few implications on the interpretation of his other works or the understanding of his poetic world. Bansong bang was the middle point of the process in which his family, having gradually lost its features as one of the Hungu families (families that contributed to the foundation of Chosun and hence played the central role in early Chosun’s politics) since Kwon Geun, came to made Hyeonseok‐chon along with the riverside of Mapo its base. Though he recognized and was proud of the previous tradition of his family, Kwon Pil couldn’t help watching his family’s downfall which was symbolized by movement from within the castle town of the capital to Bansong‐bang and Hyeonseok‐chon, and formed his attitude corresponding to the surrounding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