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ry of Prophecy: Yeats and Lawrence
낭만주의 전통에서 시인은 예언자였다. 블레이크에게 시인은 신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하고, 인간의 타락한 모습을 교정하며, 정신 외적인 대상으로 구성된 로크적인 현실을 넘어서서 영혼의 세계의 비전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워즈워드는 시인이란 인간의 정서를 순화하고 영감을 주어 도덕적 충동을 일깨우는 자연의 예언자라고 보고있다. 셸리는 시란 타락으로부터 인간 내부 속에 있는 신성의 축복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린다. 이와 같이 낭만주의 시인들은 “현재를 있는 그대로 깊이 있게 볼 뿐 아니라 현재 속에 있는 미래를 바라본다”라고 셸리가 그의 “시를 위한 변호”에서 천명하고 있다. 요컨대 예언자들이 신적인 영감을 통해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신의 뜻을 해석한 것과 마찬가지로, 낭만주의 시인들은 자연계의 메시지나 인간의 현실적 경험을 표현해 보고자 하였다. 낭만주의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현대 시인들은 상상력에 몰입하여 시의 상징구조로 전환되어 간 인간 경험의 모든 요소를 드러내고 확대시키며 심화할 힘을 지녔던 것이다. 문제는 현대의 현실이 낭만주의 시대의 현실과 다르다는 점에 있다. 부정적이고 황량한 인간조건은 시인들로 하여금 상실감을 보상할 수 있는 반항정신을 일깨웠고, 그 첫 걸음으로 에즈라 파운드 식의 “새롭게 하기”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이 것은 현재를 인식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예비하자 주의인데, 예이츠와 로렌스가 그 대표적 현대시인이다. 두 시인 다 문명의 순환적인 힘의 잔인함을 인지하고 인간성과 자연에 내재한 어두운 모습을 통감하고 있었다. 예이츠는 특히 인간은 역사 속에 무기력한 존재로 던져져 버리는 무심한 신성인 창조주의 수동적인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로렌스는 인간이 자신의 육체, 이기주의, 성적인 금기 등에 갖혀있어서 활력이 사라진 도덕적 사회적 전통과 핏기 없는 영성을 초월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 두 시인은 이러한 현대에 대한 인식에 근거하여 나아가 인간의 개별성을 확인하고, 인간을 보다 큰 계획에 종속시킬 필요성을 감지한다. 이러한 인식을 예언자적인 속성으로 볼 때, 이 들의 시에는, 그 들의 예언자적인 특질이 드러나 있다. 인간의 무기력과 굴레를 벗기고자 하는 노력이 그들의 상상력과 결합되는데, 예이츠는 신화적인 방법으로, 로렌스는 성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시에 구현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예이츠의 “재림,” “비쟌티움으로의 항해,” “1919년,” “원추,” “레다와 백조” 등의 시를 분석하고, 로렌스의 “성 요한,” “신비,” “숫총각,” “뱀,” “보라! 마침내 우리가 해 냈음을!” “새로운 천국과 대지” 등의 시를 다룬다. 이 분석을 통해 두 시인이 공통적으로 신비주의와 이교도주의에 사로잡혀 인간성과 자연에 내재된 어두운 면에 대한 의식으로 현대의 현실을 파악하고 보다 큰 절대자의 계획에 순응하는 자세를 보임을 드러내었다. 한편 예이츠는 신화의 기능을 통해 아일랜드 민족의식을 응시하여 영혼의 훈육과 문명의 순환적인 역사적 힘의 문맥에서 구원을 찾고자 노력하는 반면, 로렌스는 성(sexuality)이라는 인본주의적 종교를 설립하고 우주를 성의 관점에서 바라보아, 신비주의적이고 성적인 완성을 통해 개인적인 구원에 도달하는 접근을 하고 있다. 이 들의 노력에서 보듯이 서로 개인적 구원에 도달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예이츠는 역사의 시간성의 문맥에서 인간조건이 인간 문명의 순환적 위력에 의존한다는 외적이고, 투사적이고, 통시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반면, 로렌스는 인간 상황을 육체적 존재의 공간성에서 “음경적 의식”(phallic consciousness)에 기초를 둔 인간의 번식을 위한 자연스러운 충동의 관점에서 보고있다. 결국 그들의 보고자하는 대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낭만주의 셸리의 예언자적 시인의 특질을 수정 전승한 예언의 시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