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상세보기

俛宇 郭鍾錫 所撰 南冥墓誌銘에 대한 小考 KCI 등재

The Study of Nammyung’s Epitaph Written by Gwagjongsug

면우 곽종석 소찬 남명묘지명에 대한 소고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286969
  • DOIhttps://doi.org/10.14381/NMH.2014.12.30.44.105
서비스가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俛宇 郭鍾錫이 지은 「南冥墓誌銘」은, 南冥을 두고 지은 傳記文字 가 운데서 가장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서술이라 할 수 있다. 남명 전기문자 의 최후결정판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남명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빠짐 없이 수록해 놓았다. 묘지명으로서는 매우 긴 작품으로 일반적인 묘지명의 틀과 다른 점이 많다. 면우는 이 묘지명을 지으면서 자료를 최대한 널리 수집하여 신중에 신중을 기하였고, 다 완성된 뒤에도 당시 慶尙道 지역에서 문장으로 손꼽히는 제자 深齋 曺兢燮과 晦峯 河謙鎭에게 문제점을 지적하여 같 이 수정하고 보완하여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원래의 請文者 弦齋 曺庸相을 통하여 深齋가 사소한 문제로 지나치게 장기간 문제를 지적하고 나오자, 마침내 자기가 지은 「南冥墓誌銘」은 폐기하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 9년 뒤인 1926년에 간행된 俛宇集 속에 실린 俛宇의 시문 가운 데 南冥을 낮게 평가했다는 혐의를 받을 글이 발견되어, 남명 후손들은 출판하여 보내 온 俛宇集을 거절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俛宇 측과 관계가 멀어져 「남명묘지명」은 실제로 남명 묘소에 묻히지 못 했다. 「南冥墓誌銘」에서 俛宇는, 南冥의 偉大性을 부각시키고, 敬義가 南冥思想의 핵심임을 밝히고, 南冥의 治學方法을 체계화하고, 南冥의 憂國憐民사상을 부각시키고, 南冥의 學德의 특징을 宋朝 諸賢에 비교하 였고, 南冥의 雅號의 의미를 밝히고, 文廟從祀 疏請 등 남명 推崇事業을 소개하는 등, 내용이 가장 다양하면서 풍부하다. 단언컨대, 「南冥墓誌銘」은 남명에 관한 傳記文字 가운데서 가장 종 합적이고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남명이 직접 지은 詩文에는, 남명의 언행과 생활상을 이해할 자료가 거의 없는데, 제자나 친구 後學들이 지은 이런 다양한 종류의 傳記文字 가 존재함으로 해서 남명을 연구하는 자료로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높은 것이다.

Nammyung’s Epitaph Written by Myunwoo Gwagjongsug is longest Biographical work. This work may be the most extensive and comprehensive description among the Nammyung’s biographies. This work good enough to be called definitive character set recorded almost without exception among the Nammyung’s biographical work. This work is pretty long, considering the epitaph works, escaped the normal framework a lot of yet. This work was created with reference to the a lot of data. And after Gwagjongsug completed the work , he made outstanding disciples read and submit their opinions. Gwagjongsug was modified and compensated to accept their opinions in order to make the most complete work. But Joyongsang who requested that work the first continue to raise the issue, Gwagjongsug finally asked to discard it. After 9 years, in 1926, Gwagjongsug’s anthology was published, and was sent to Nammyung’s descendants. They found several article on depreciation of their ancestors Nammyung in Gwagjongsug’s anthology. So Nammyung’s descendants asked many times to edit or delete them in it. But Editor of Gwagjongsug’s anthology were emphatically rejected. They even laughed at the ignorance of Nammyung’s descendants. Since then, both of which went between more and more worse, eventually Nammyung’s Epitaph was not buried in Nammyung’s tomb. But this work was edited in his anthology and has delivered to posterity. Gwagjongsug emphasized his greatness of Nammyung, and proved pious and rightness was The core of Nammyung studies. In conclusion, Nammyung’s Epitaph is the most comprehensive and systematic work. So data values of this work are very high.

저자
  • 許捲洙(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겸 경남문화연구원 남명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허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