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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의 고고자료와 신라사적 의미

Archaeological materials of Siljik and the meaning in terms of Silla history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288222
  • DOIhttps://doi.org/10.16897/isabu.2015.09.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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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와 동해 (The Review of Isabu and East Sea)
한국이사부학회 (The korean isabu society)
초록

이 글은 신라가 최초의 주(州)를 설치한 실직의 고고자료를 검토하고, 실직의 신라사적인 의미를 찾아보는데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실직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수용하여 기본적이고 객관적인 고고자료부터 확보하였다. 그리하여 실직 지역의 고고자료 가운데 신라산성과 신라고분을 추출하였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신라사에서 차지하는 실직의 역사적인 역할을 찾아 보았다. 시간적으로는 5~6세기가 중심 시기가 된다. 이 시기는 이전 시기에 비하여 문헌사료가 풍부한 편이고, 동시에 사료 비판을 통해 삼국의 쟁패와 관련한 역사적 실상에 접근할 수 있다. 이 때 고고자료가 사료 비판과 역사적 해석에 크게 기여할 수 있으며, 그러한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공간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의 행정구역을 기본으로 하였다. 즉 실직의 고고자료는 통일신라시대 삼척군의 군치인 지금의 삼척시와 속현 지역을 포함하여 살펴보 았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삼척군의 속현에 지금의 강릉시 옥계면인 우계현이 포함되므로 동해시와 강릉시 옥계면을 실직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연구 범위로 삼았다. 그 결과 실직의 고고학적 양상을 정리하면 신라산성으로는 오십천 하구의 곶 (串)에 위치한 오화리산성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고, 고분문화로는 5세기 3/4분기인 황남대총 남분 단계 직전에 신라문화가 출현하였으며 5세기 4/4분 기~6세기 1/4분기에 고분군이 급증․확산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분군의 입지도 구릉지대와 산의 사면에 분포하는 특징을 보여 사구지대에 초기 고분이 분포하는 강릉지역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필자는 이들 시․공간적인 고고자료와 문헌사료, 역사지리적 자료들을 활용하여 신라의 실직 경영에 대한 신라사적 의미를 찾는 시도를 하였다. 그리하여 오화리 산성의 경우 신라계 지명인 벌 지명이 있고, 건너편인 정라진 일대도 부리(=벌) 지명이 남아 있어 오십천 하구 일대가 신라마을이 형성된 실직의 핵심 지역으로 판단하였다. 나아가 통일신라 중사의 하나인 북해 비례산도 오십천 하구인 정라진 바닷가 일대와 오화리산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였다. 결론적으로 신라는 중원(충주)을 거점으로 남한강을 따라 동해안의 강릉이나 삼척을 측방공격하는 고구려군을 막는 방어의 거점성이자 해양의 거점으로 오십천 하구에 있는 오화리산성을 운용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신라인들이 동시대부터 삼척의 오십천 하구 일대를 해양의 거점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라통일기에도 중사의 사해에 포함시켰다고 볼 수 있겠다.

This article attempts to examine the archaeological materials of Siljik, to which Silla implemented the first province (Ju) and to search for the meaning of Siljik in Silla history. In order to achieve such purpose, the result of archaeological excavation of Siljik areas was critically examined and basic and objective archaeological data were gathered. Then, among the materials related to Siljik areas, mountain fortress of Silla and ancient tombs of Silla were extracted. Moreover, based on such information, the historical role of Siljik in the history of Silla was investigated. In terms of time, the period between 5th to 6th centuries is the focal period. This period has abundant bibliographic data compared to other periods. Also, historical facts related to the struggle of the three countries can be accessed. At this stage, archaeological areas can contribute largely to historical interpretation and it is a period appropriate for making use of such qualities. In terms of space, the administrative district of unified Silla is the base. That is, the archaeological materials of Siljik included Sokhyeon area and Today s Samcheok, which was Gunchi of Samcheokgun of unified Silla period. According to the geographical map in Samguk Sagi, Ugyehyeon, which is today’s Okgyemyeon of Gangneung-si, is included in Sokhyeon of Samcheokgun. Therefore, Donghae-si and Okgaemyeon of Gangneung-si was also included as the scope of research. As a result, the archeological appearance of Siljik reveals that Ohwari mountain fortress located in Got of Oshipcheon Hagu, has the highest likelihood of being Silla mountain fortress. As for the tomb culture, Silla culture appeared immediately before Hwangnamdaechon Nambun stage in third quarter of 5th century and ancient tombs showed signs of increasing and expanding rapidly from the fourth quarter of 5th century to the first quarter of 6th century. The position of the tombs was dispersed in hilly districts and mountains which is different from Gangneung areas, where tombs are dispersed in dune land. The author hereby attempted to discover the meaning of Silla s Siljik management using the archaeological, bibliographical, historical and geographical data. Therefore, based on the finding that Ohwari mountain fortress has beol name which originated from Silla, and Jongrajin area also has buri name, the author came to conclude that Oshipcheon Hagu area was the main area of Siljik where Silla village was formed. Furthermore, it can also be presumed that it is very likely that Bukhae Biryesan from unified Silla too is Ohwari mountain fortress and the area around Jeongrajin seashore, which is Oshipcheon Hagu. In conclusion, Silla managed Ohwari mountain fortress in Oshipcheon Hagu as the base and defense base against the army of Goguryeo that attacked Gangneung of East Coast and Samcheok from the side with Jungwon(Chungju) as the base and following Namhanggang. As such, as people of Silla perceived the area around Oshipcheon Hagu as the maritime base, it can be seen that it was included in the four seas at the time of Unified Silla

저자
  • 홍영호(문학박사 현북중학교 역사교사) | Hong, Young 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