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dosius II: Power and Belief -Is the Christian emperor the arbitrator or the determiner?-
이 논문의 논점은 동방 로마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408-450)를 통해 과연 동방 로마제국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이야기 되는 것처럼 caesaro-papism 으로 정의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슈멤만의 항변이 옳은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방 로마제국은 교회가 국가로부터 어느 정도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동방 로마제국은 “비잔틴 제국 황제-교황주의” ‘Byzantine caesaro-papism’로 국가가 교회를 조정한다는 견해가 널리 퍼져있다. 동방정교회 학자인 알렉산더 슈멤만은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면서 ‘교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는, 어떤 조약 혹은 법률상의 제한에 의해서 연결되어진 것이 아니라, 그러나 교회 신앙에 의해 말해진 진리(truth)에 의해서 연결되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회의 신앙은 먼저 황제가 그리고 나서 그를 통해 제국 그 자체가 교회 신앙의 진리로서 그리고 황제나 제국의 우위에 있는 진리로서 인정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일단 슈멤만의 주장을 전제하면서, 테오도시우스 2세가 그렇다면 종교와 정치 사이에 언제나 연결되어 있던 특별한 관계 속에서 황제는 과연 진정으로 교회 분쟁의 중재자인가 혹은 결정자인가를 검토하려고 한다. 필자는 네스토리오스 논쟁(428-431), 즉, 네스토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로 재임했던 428-431년, 특별히 테오토코스 논쟁에 휘말리면서 그의 실각까지의 역사적인 재구성을 통해 이러한 쟁점을 분석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논문이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테오도시우스 2세의 입장을 논의하지만, 방법상 교리논쟁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테오도시우스 2세가 전체 역사적 정황 속에서 평가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자 한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 로마제국을 최초로 기독교제국으로 명명한 테오도시우스 1세의 손자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의 죽음 이후 장남인 아르카디우스(395-408)는 콘스탄티노플을 통치하였고 차남인 호노리우스(395-)는 이태리 지역을 통치하였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408-450) 아르카디우스의 장남으로 40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아르카디우스는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그는 408년부터 450년까지 42년 동안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전 생애동안 통치한 최초의 왕이 되었다.
테오도시우스 2세가 네스토리오스의 논쟁에 관여하게 된 때는 그의 아버지 알카디우스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였던 크리소스토모스를 실각시킨 지 불과 사반세기가 겨우 지난 때였다. 따라서 콘스탄티노플, 즉 동방 로마 제국이 지향하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입장이 크게 변화 되었으리라고는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소스토모스와 네스토리오스의 실각 사건은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기에, 두 사건을 함께 고찰하는 것은 동방 로마제국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얻을 것이다.
The argument of this paper is to review whether there was ‘Byzantine caesaro-papism in the East or not through the emperor Theodosius II(408-450). Also It is to think whether the complaint of Schmemann is right or not. In general, it is supposed that the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did not exist in the East nor that there was no ‘Byzantine caesaro-papism’ in West. Alexander Schmemann, an Eastern Orthodox scholar, expresses very strong displeasure about the fact that some historians constantly charge the Eastern Church with caesaro-papism. Schmemann argues ‘the relations between church and State are linked not by any concordat or juridical limitation of power, but by the truth; which is to say, by the faith of the Church, which the emperor, first and through him the empire itself, recognized as its truth, and as a truth superior to themselves.’
Premising the argument of Schmemann, I will review whether Theodosius II, the Christian emperor, is the arbitrator or the determiner in the special relation between church and state. It will describe this argument by reconstructing the affairs from involving the Nestorios’s controversy to falling down from the position of the patriarch of Constantinople in 428-431. Therefore, It will suppose that Theodosius II’ position will be evaluated in the historical situation, because his understanding of the relation between church and State argues by the doctrinal conflict.
Theodosius II is the grandson of Theodosius I, who first proclaimed the Roman Empire the Christendom. After Theodosius I died, the Roman Empire divided in two parts. The Eastern Roman Empire is ruled by his first son, Arcadius (395-408) and the Western Empire by his second son, Honorius (395-). Theodosius II is the first son of Arcadius. Theodosius II ruled the Eastern Roman Empire for 42 years from 408 to 450 because of his father, Arcadius’s early death.
Just twenty-five years has been passed since his father, Arcadius involved in the fall of Chrysostom from the position of patriarch of Constantinople, when Theodosius II involved in the Nestorian controversy. Therefore, there might not be the radical change in the position of the Eastern Roman Empire concerning the relation between church and state. Nevertheless, the fall of Chrysostom happened in the totally different situation from the Nestorius’ fall. Therefore, reviewing the above affairs, this work will present the deep understanding of the relation between church and state in the Eastern Roman Emp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