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서구와 한국에서 선교적 교회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미셔널’(missional, 선교적)이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사용자들의 신학적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미셔널’이 드러나는 다양한 양상들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다른 관점들과의 균형이나 조화 없이 편협하게 또는 축소주의적으로 이해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은 선교적 교회(the missional church)에 관한 논의가 최근에 서구와 한국에서 점차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교적’이 라는 용어를 지나치게 축소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입장들을 비판하고 그 용어를 통전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미셔널’에 대한 편협한 또는 축소주의적 이해는 크게 두 가지 갈래로 구분될 수 있는데, 하나는 전통적인 선교 이해의 한계와 잇닿아 있고, 다른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에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선교적 교회론의 불균형성과 맞물려 있다. 먼저 전통적인 선교 이해의 축소주의적 문제는 선교를 지리적으로 이해하는 방식, 선교를 행사 또는 사업적으로 이해하는 방식, 선교를 복음전도에 국한해서 이해하는 방식, 선교를 교회 중심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미셔널’을 사회참여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는 태도도 축소주의적 문제를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은 선교적 교회의 활동을 지나치게 사회봉사와 사회참여에 맞춰 강조함으로써 개인의 회심을 무시하는 문제, 그리스도 인의 현존만을 강조함으로써 구두복음전도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문제, 하나님의 창조활동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속활동을 희석시키는 문제, 소형교회의 기능성을 강조함으로써 대형교회의 역할을 무시하는 불균형과 부조화의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미셔널’의 통전적 이해는 단순한 양 극단의 물리적 통합을 넘어 선교적 교회의 본질로부터 그것을 이해하 는 태도를 필요로 한다.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나 사업이 아니며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선교적 관심과 계획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과 흩어짐이기 때문에 ‘미셔널’은 단순히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방식으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의 현장인 세상이 복합적인 만큼 상황에 따라서 매우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또한 ‘미셔널’은 일회적인 행사나 프로그램을 넘어서 복합적인 삶의 세계에서 과정적이며 성육신에 의한 실천에서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ince the pioneering works of Resslie Newbigin, and the Gospel and Our Culture Network(GOCN), themes of the missional church have been actively discussed in both the West and Korea. But, understanding of the term ‘missional’ has varied according to the theological standpoints of its users. It is absolutely desirable to emphasize diverse aspects of ‘missional.’ However, it is not desirable to see its concept from a reductionist perspective, which has no balance and harmony with other aspects. In this respect, this paper aims to criticize reductionist understandings of ‘missional’ in both the Western society and the Korean context, and assert to construe it from a wholistic perspective.
There are two narrow or reductionist understandings for the term ‘missional’: one is linked to a traditional understanding of mission, while the other is ironically related to the imbalance of recent discussions about missional ecclesiology. On the one hand, the problems that the reductionist understanding of the former faces are the geographical approach of mission, the event or program-oriented approach of mission, the approach restricted to especially verbal evangelism, and the church-centered approach. On the other hand, the reductionist problems of ‘missional’ can be derived from a distorted approach that tends to see it only in the social participation-oriented way. Those imbalance and inharmony are presented in disregard for individual conversion by overemphasizing social services and social actions, failing to realize the significance of verbal evangelism by overemphasizing Christian presence, diluting God’s redemptive actions by overemphasizing God’s creative actions in the world, ignoring the positive roles of large-sized churches by overemphasizing the functions of small-sized churches.
To overcome these problems, we need a wholistic understanding of ‘missional,’ which is beyond the simple physical combination of the two extremes, based on the nature of the missional church. Because the church is not a building, organization, or business, but the gathering and scattering of God’s people who carry out His missional concern and plans in the world, ‘missional’ cannot be thought in a simple black-and-white manner. Rather, it assumes very complex aspects according to context as the world, the actual place of God’s creature and redemption, is complex. In addition, ‘missional’ works in a process in the complex world of life, beyond one-time events and programs, and in an incarnational praxis to find its authentic mean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