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상세보기

后山許愈의 文學思想 KCI 등재

Husan Heoyu's Notion towards Literature

후산허유의 문학사상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310588
서비스가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이 논문은 后山許愈(1833-1904)의 文學思想에 대해 고찰한 글이다. 후산이 활 동한 19세기는 勢道政治에 따른 민란과 일본을 위시한 서구 열강들의 침략으로 성리학적 통치 이념과 가치관이 근원적으로 위협받고 있었다. 후산은 이러한 內憂外患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 한평생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서 학문탐구와 인재양성에 전념하였다. 그가 행한 학문적 사업은 正學을 수호하고 異 端을 물리치는 것이었으며, 나아가 인조반정(1623) 이후, 침체된 경상우도의 학풍 을 진작시키는 일이었다. 그 결과 후산은 공자․주자․퇴계, 그리고 寒洲李震相 (1818-1886)으로 내려오는 主理的학문의 전통에서 스승인 한주가 내세운 ‘心卽 理’설을 자신의 학문의 귀결처로 삼아, 어려움에 처한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南冥을 비롯하여 이 지역 출신 및 연고가 있는 스승 선배 학자들 의 문집간행과 현장에서의 강학을 통해 지역의 학풍을 진작시키는 일에 심력을 다 하였다. 한편 후산은 일찍부터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왔으며, 특히 맹자 이후, 쇠퇴해 진 유학을 일으키고 六朝시대의 쇠약해진 문풍을 일으킨 韓愈의 문장을 좋아하였 다. 그렇지만 후산은 문장가의 입장에서 문학을 바라보지 않고, 시종일관 학자적 관점에서 문학을 바라보았다. 그 결과 후산은 학문과 인격에 기반 한 건실한 내용 의 문장, 즉 ‘世敎’에 도움이 되는 문장을 추구하였으며, 그 문장은 바로 이치를 밝히는 ‘明理之文’이었다. ‘명리지문’의 구체적 내용은 主理的전통 속에서 正學 을 수호하고 時文인 科擧之文과 俗學인 異端之學을 물리치는 것이었으며, 문체 적 특징도 내용에 걸맞게 화려한 수사적 표현을 배제하고, 담박하고 자연스러운 문체를 선호하였다. 후산은 이처럼 정통 성리학자들이 추구한 문학사상의 기반위에 있으면서도, 나름 대로 19세기가 처한 시대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였다. 우선 후산은 문장에 대해 일 정한 효용적 가치를 인정하였으며, 나아가 도가 담고 있는 내용도 성리학적인 내 용뿐만 아니라 현실적․실용적인 내용을 다소 포함하고 있어, 문장의 내용상의 외 연을 넓히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점은 도와 문의 상호관계에서 후산은 도가 들어갈 자리에 ‘理’를 배치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리 지문’을 추구한 그의 문장학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한평생 정통 理 學을 추구해 온 학문경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후산이 추구한 문학사상은 영남학풍의 학문적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지역 적․역사적 입장에서 나름의 문학사상을 견지해 나갔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is about Husan Heoyu's(1833-1904) notion towards literature. In 19th century when Husan was active, the ruling ideology and values of Seongri-hak were threatened essentially because of the riots caused by authority-based politics and invasions from the Western powers such as Japan. During this period of the internal and external upheaval, Husan never took a position with the central government ; he only engaged himself to studies and cultivating men of talent living in seclusion. His scholastic works were protecting orthodox studies from heterodoxy and inspiring the morale of Kyoungsangwoodo's academic tradition after Injobanjeong in 1623. As a result, Husan tried to overcome the periods of hardship by adopting ‘Simjeukri theory' as his conclusive goal of study. ‘Simjeukri' was claimed by his teacher, Hanju Lee, Jinsang (1818-1886) and it was handed down from Gongja, Juja, Toeigue, and Han-ju, Lee Jinsang through the Juri academic tradition. Husan also made every effort to inspire the morale of the region's academic tradition through publishing anthologies of his teachers, seniors, and other local scholars including Nam-myoung and also through giving lectures in the field. In the mean time, Husan was recognized for his talent in literature at an early age. He had a great fancy for Hanyu's writings who had revived the weakened literary style from the declined Confucianism during Euk-jo era after Maeng-ja. However, Husan didn't look at the literature from a writer's point of view. He always looked at literature from a purely scholar's point of view. As a result, Husan pursued a writing that is based on scholastic pursuit and one's honor. In other words, he pursued a writing which was helpful to ‘Segyo, the education of the public' and the writing was Myeong-ri-ji-mun, which enlightens the principle. Myeong-ri-ji-mun's definite contents were protecting orthodox studies from heterodoxy and inspiring the morale of Ju-ri academic tradition. Its literary style were eliminating splendid rhetoric expressions and preferring natural and light literary style. Husan stood on the basis of the literary notion that was pursued by legitimate Seongri scholars, but he reflected the reality of the 19th century. First of all, Husan acknowledged the definite effective value of writing. Furthermore, the Do's contents included not only the philosophy of Seongri-hak but also actual and practical ones so it resulted in broadening the writing perspective. Another special aspect is that he replaced ‘Do' with ‘Li' in the relation of ‘Do' and ‘Mun'. This could have been spontaneous considering his pursuit toward Myeong-ri-ji-ri in the study of writing but it was also closely related with his scholastic style toward traditional orthodox Li study. In conclusion, the literary ideology of Husan maintained his literary notion considering his local and historical positions, while accepting the scholastic tradition of Yeongnam's academic tradition.

목차
1. 문제제기
2. 理致와 文章의 관계
3. ‘明理之文’의 추구
4. 文體에 대한 인식
5. 맺음말
저자
  • 權鎭浩(慶星大韓國學硏究所) | 권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