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mparative Study on Jujaseojeolyo and Daedongunbugunok
『주자서절요』와 『대동제부군옥』의 비교 고찰
『朱子書節要』는 退溪 李滉(1501-1570)이 1558년 중국 宋나라 朱子(1130-1200)의 書札중 학문에 긴요한 것을 뽑아 편찬한 것이고, 『大東韻府群玉」은 草澗 權文海 (1534-1591)가 1589년 우리 나라 檀君으로부터 조선조 宣祖까지 역사 · 인물 · 지 리 등의 다양한 일을 韻字에 따라 표제어를 만들어 배열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따라서 兩書는 중국 것과 우리의 것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이 책의 편찬자인 퇴계와 초간은 사제간이였으며, 두 저술은 31 년 간격을 두고 이루어졌다. 양서의 간행과 보급 그리고 후대 영향과 활용에 있어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간행과 보급에 있어서는, 『주자서절요』는 편찬된 직후에 많은 제자들이 서로 앞다 투어 간행하였다. 그 결과 편찬 직후 10년 내에 5차례나 출판되는 획기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는 우리 나라 출판문화 역사에 있어서 단기간에 동일 서적을 여러 차례 출판한 것으로 찾아보기 힘든 예이다. 뿐만 아니라 그 뒤에도 지속적으로 간행하여 널리 보급되었기에 가가호호 구비되게 되었다. 반면에, 대동운부군옥은 편찬되어도 아무도 간행해주지 않았으며, 후손의 지극히 힘겨운 노력으로 펀찬된 지 248년만에야 겨우 간행되게 되었다 양서가 후대에 미친 영향과 그것의 활용에 있어서는, 『주자서절요」는 후대의 반향과 활용이 엄청나서 조선조 성리학자라면 누구나 필독서로 읽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용어와 고사 그리고 내용 등이 우리 나라 문인들의 문집에 다량으 로 반영되고 응용되어 활용의 반향이 대단하였다. 반면에, 대동운부구옥은 지극 히 미미하여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48년간만에 간행된 요인도 있지만 간행된 이후에도 중국의 것에 경도되어 있는 우리 나라 사대부들의 學風的영향 때문에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 책에 살려 있는 내용이 활용되는 것은 아예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일제시대와 현대에 와서야 민족적인 것을 강 조하면서 주목받게 되었다. 요즘 학계에서 많은 저술과 논문에서 이 책을 언급하 여 매우주목받고있다.
Jujaseojeolyo(朱子書節要) was published in 1558 by Lee Hwang(李 港1501-1570), who excerpted some essential parts to study from the letters written by Ju Ja(朱子1130-1200) and made a compilation as a book Daedongunbugunok(大東題府群玉) is a kind of encyclopedia published in 1589 by Kweon Mun-haw(權文海1534-1591), who arranged historic events, figures, geographic figures, and others from the age of Dangun, the mythical founding father of the Korean nation, to the age of King Seonjo in the Joseon Dynasty according to the lemmas made by rhyme. The editors of the two books were in relations of a master and a pupil and there is thirty years’ disparity in the publication of the two books. There are also big differences of the two books in the publication and supply, the use and the effects on the future generations. Jujaseojeolyo was in high competition among Lee Hwang’s pupils who wanted to publish and supply it soon after Jujaseojeolyo came out. In result, six versions of it were published within ten years after the fust publication of Jujaseojeolyo by Lee Hwang. It is an unusual record that the same one book was published in such a short period. Even after that, the book kept being published and supplied to 머most each house. On the other hand, Daedongunbugunok was rarely published after its compilation, and in 248 it was pub1ished through his descendants’ efforts. In tenns of the use and the effect on future generations, Jujaseojeolyo was so great in response and demand that most of the scholars of Seonrihak(性理學), a philosophy of human nature and natural laws, in the Joseon(朝蘇) Dynasty period must have read the book. Moreover, many of terms, contents, and ancient happenings expressed in Jujasejeolyo were quoted and adapted into the collections of works of literary men. But Daedongunbugunok was not in much use and notice by people. It may be because it was published after too long interval of 248 Years and because the Korean scholars were oriented toward China in their academic traditions. So it was almost irnpossible to expect the book to be used by people, until the age of Japanese irnperialism and the modem age when national things became to be emphasized and noticed. Recently Daedongunbugunok attracts the attention of the academic circles tltrough being quoted in the books and articles of the schol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