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ed Meaning of Mu-wi-jin-in (無位眞人) and its Criticism
무위진인(無位眞人)은 임제의현(臨濟義玄)을 대표하는 개념 중 하 나이다. 임제는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작용즉성설(作用卽性說)과 무 사선(無事禪)을 계승하고 있는데, 무위진인은 원래‘지금 현재 육체 를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무위진인은 마조도 일의 무사선을 계승한 용어이지만, 불성(佛性)을‘人’이라는 용어로 써 의인화한 것이 임제의 특징이다. 한편 소소영영(昭昭靈靈)과 견문 각지(見聞覺知)는 무사선을 상징하는 용어로서, 소소영영은‘불성의 신령스러운 작용’을 가리키고 견문각지는‘불성이 견문각지(보고 듣 는 등의 작용)를 일으키는 주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소소영 영과 견문각지는 무위진인과 깊은 관계에 있다. 무위진인은 임제의 입적 이후 당대(唐代)와 송대(宋代)에 걸쳐서 의 미가 변화되기도 하고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우선 당대의 현사사비 (玄沙師備)는 작용즉성설을 비판하였는데, 소소영영과 견문각지를 주된 비판대상으로 하였다. 현사는‘견문각지는 대상이 존재할 때만 발생하는 것으로서, 만약 대상이 없다면 견문각지는 일어나지 않는 다. 따라서 견문각지를 일으키는 것은 불성[昭昭靈靈]이 아니라 육식 (六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또 송대에 오면 무사선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데, 특히 원오극근(圓悟克勤)과 대혜종고(大慧宗) 는 무사선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소소영영과 견문각지를 비판하고 있 다. 간화선은 무사선(無事禪)을 부정하고 깨달음의 체험을 강조한 데 서 일어난 것이다. 나아가 원래‘현실에 존재하는 육체를 지닌 자기 자신’을 가리켰던 무위진인이 후대에는‘내면에 존재하는 초월적 본성’으로서 인식되 는 경향이 발생하였다. 특히 송대에는‘공겁이전(空劫以前)의 자기 (自己)’를 묻는 문답이 많았는데, 공겁이전의 자기란‘우주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던 자기’로서‘내면화된 불성’을 말한다. 공겁이전의 자기는 각범혜홍(覺範慧洪)에 의하여 비판되었는데, 천복승고(薦福承 古)가 자기를‘공겁이전의 자기’와‘현재의 자기’로 양분한 것에 대 해서 각범혜홍은 석가모니의 예를 들면서‘자기는 양분(兩分)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Mu-wi-jin-in(無位眞人) is once of the representative concepts of Linji Yixuan (臨濟義玄). Linji inherited the jakyong- jeuk-seong-seol(作用卽性說) and Musaseon (無事禪) of Mazu Daoyi (馬祖道一). Mu-wi-jin-in originally referred to the ‘self who has the current body.’Mu-wi-jin-in was a term that succeeded the Musaseon of Mazu Daoyi, but the personification of the Buddha nature as the term‘ in (人)’was a characteristic of Linji’s teaching. The terms so-so-yeoungryeong( 昭昭靈靈) and gyeon-mun-gak-ji(見聞覺知) symbolize Musaseon. So-so-yeoung-ryeong refers to the ‘divine action of the Buddha nature’and gyeon-mun-gak-ji means that ‘the Buddha nature is the entity that causes gyeon-mun-gakji( actions such as seeing and hearing).’So-so-yeoung-ryeong and gyeon-mun-gak-ji are closely related to MuWiJinIn. After the passing away of Linji, the meaning of mu-wi-jinin had changed and it had been criticized through the Tang Dynasty and the Song Dynasty. During the Tang Dynasty, Xuansha Shibei (玄沙師備) criticized the jak-yong-jeuk-seongseol( 作用卽性說), and his main targets were so-so-yeoungryeong and gyeon-mun-gak-ji. Xuansha said, ‘gyeon-mun-gak-ji occurs only when there is an object; otherwise, there is no gyeon-mun-gak-ji. Therefore, gyeon-mun-gak-ji is not Buddha nature, but just six consciousenesses (六識).’During the Song Dynasty, there were strong criticisms against Musaseon. In particular, Yuanwu Keqin (圓悟克勤) and Dahui Zonggao (大慧宗) criticized so-so-yeoung-ryeong and gyeon-mun-gak-ji simultaneously with Musaseon. Ganhwaseon (看話禪) arose as an antithesis of Musaseon and emphasized the experience of enlightenment. Furthermore, mu-wi-jin-in which originally referred to‘ self who has a body in the real world’later tended to be understood as a ‘transcendental inner nature.’Especially during the Song dynasty, there were many koans that asked about ‘self before gong-geop(空劫)’which refers to ‘self who existed before the creation of the universe’and ‘internalized Buddha nature.’Self before gong-geop was criticized by Juefan Huihong (覺範慧洪) who claimed that ‘self cannot be divided’by giving Sakyamuni as an example in response to Jianfu Chenggu (薦福承古) who divided self into self before gong-geop and self of the pres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