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ucianism' tradition of Hahak and Nammyong's arguments of Hahak
이 글은 조선 중기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의 ‘하학론(下學論)’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남명 조식은 당대 퇴계 등 다른 유학자들에 비해 ‘하학 (下學)’을 강조했다. 그는 하학이 유학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런 측 면에서 하학을 경시했던 당시의 학자들을 비판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남명 의 ‘하학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유학에 있어 하학이 가지는 위치를 먼저 검토했다. ‘하학’은 유학을 도가나 불가 등 다른 사상과 구별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선진 유학에서부터 이어져온 중요한 전통이다. 많은 유학자들이 유학 의 본질은 하학에 있다고 보았으며, 하학(下學)의 대상인 현실세계를 떠나지 않 았다. 유학자들은 세속에서 상달하고 도를 실현하고자 하였으며, 그 속에서 상 달의 성스러움을 실현하려고 했다. 불교나 도교는 상달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유학과 비슷하지만, 하학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하학을 부정하였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학은 정치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하학은 유학자를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명분이 되기도 하며, 하학의 세계에 대한 걱정 은 바로 유학의 우환의식(憂患意識)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유학의 하학전통을 잘 이해한 사람이 조선 중기 남명 조식이다. 남명 에게 ‘하학’은 단순한 공부상의 절차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그의 사상에 있어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남명에게 현실을 떠난 학 문은 실(實)이 아닌 헛됨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는 유학의 경세(經世)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남명사상의 특징 중 하나인 실천성과 경세성 등을 이런 ‘유학의 하학전통’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남명의 하학론을 단순한 학 문적 단계로서가 아니라 유학의 주요한 전통을 계승하였다는 점에서 재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의사상(敬義思想)이나 출처관(出處觀) 등 남명의 주요 사상에 있어서도 그의 하학론은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고, 그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This paper is to study Nammyong Jo Shik(南冥 曺植, 1501~1572)'s arguments of Hahak(下學). Compared with other Confucian scholars including Toegye, Nammyong put emphasis on Hahak. Since he thought that Hahak contained the essence of Confucianism, he criticized other confucians who made light of Hahak. To understand Nammyong's arguments of Hahak, I first considered the position of Hahak in Confucianism. Hahak is both an important factor, which can differ Confucian from other thoughts such as Taoism or Buddhism, and an important tradition, which has come from Confucius. Many confucians thought that the essence of Confucianism was in Hahak and they didn't leave common world where is the subject of Hahak. They wanted to achieve the Sangdal(上達) in the Secular and to realize the Dao(道). Also they tried to realize the sacredness of the Sangdal in it. Considering that Buddhism and Taoism achieved the Sangdal, they are similar to Confucianism. But, since Buddhism and Taoism to denied Hahak, there are big differences between these thoughts (Buddhism and Taoism) and Confucianism. Hahak leads to the interest for the political community. Hahak is often a cause taking Confucians into in real politics. Hahak's worries about the secular leads to the awareness of worry of Confucianism. The person who understood the Hahak of Confucianism' tradition best was Nammyong Jo Shik. For Nammyong, Hahak was more than a simple procedure on his study and it would constitute the basis(基底) of his ideas. Nammyong thought the study leaving from the commmon world was less than a vanity rather than actual(實). It reflected the characteristics of statecraft of Confucianism which pursues the 'Inner age and outer king'(內聖外王). We need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Nammyong's idea like practices and statecrafts in the context of the 'Hahak tradition' of Confucianism. And, we also need to revalue Nammyong's arguments of Hahak not only as an academic stage but by the fact that they succeeded to the major traditions of Confucianism. Also, I stated that Hahak was consistently adopted to Nammyong' main ideas such as the idea of Kyong(敬)-Eui(義) and the viewpoint of working for state or living in sedusion(出處觀), and it was based on th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