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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한인사회 조직의 리더와 오피니언 리더 : 안창호와 홍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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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도산은 ‘조직의 명수’였다. 대한제국시기 명연설로 근대국가의 꿈을 설파하던 도산은 조국이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 자주적 국민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늘 노력하였다. 때문에 도산은 국내를 비롯하여 미주․하와이․멕시코․중국․러시아 등 국외 각지에 한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지체없이 달려가 민족운동 실천단체를 조직하고 그를 바탕으로 ‘도산의 꽃동산’을 가꾸어 나갔다. 청년학우회․신민회․공립협회․대한인 국민회․흥사단․한국독립당․(수양)동우회 등이 그것이었다. 도산이 전지구적 활동반경을 바탕으로 한평생 민족운동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도산의 꿈을 믿고 따라준 분들이 있기에 가능하였다. 도산을 도와 재미한인사회의 민족운동을 이끌던 인물 중 한 분이 바로 洪焉(1880~1951)이었다. 홍언은 재미한인 민족운동의 구심점이었던 國民會의 지킴이로 평생을 보낸 ‘미스터 國民會’였다. 그러나 한국사학 계에서조차 “40여년간 미주 언론계에 몸담아 독립 고취에 힘쓴” 그의 이름을 아는 이는 흔치 않다. 도산과 홍언의 관계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1915년 7월 5일 도산의 아내(안혜련)가 딸을 출산하자, 도산은 홍언에게 딸아이의 이름을 생각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도산과 홍언은 각자 새벽 산에 올라 솟아오르는 해를 보고 작명한 뒤, 하산하여 서로 지은 이름을 펴 보였다. 놀랍게도 둘 다 ‘繡山’이란 두 글자를 내밀었고, 두 분은 함께 웃고 말았다 한다. 바로 그가 도산의 첫째 딸 안수산 여사이다. 미주한인사회를 이끌던 국민회를 사실상 조직한 리더가 안창호였다면, 국민회의 여론을 이끌며 도산의 理想을 지지한 오피니언 리더는 홍언이었다. 따라서 미주한인사회의 구심체를 마련한 안창호와 문필가 이자 역사가로서 재미한인사회의 여론과 민족정신 고취에 선봉에 섰던 홍언의 생애와 활동을 살펴보는 것은 도산의 민족운동과 활동을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익히 알려진 도산보다는 비교적 덜 알려진 홍언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저자
  • 김도훈(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조사3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