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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의 멕시코 순행과 그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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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도산 안창호의 일생을 살펴볼 때 나타나는 큰 특징은 전 세계가 독립 운동의 무대였다는 점이다. 그는 독립운동을 위해 그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이 세상 끝까지라도 방문하고 일을 성사시키고야 말았다. 도산은 전 세계를 遊歷하였지만 장기간에 걸쳐 머물면서 사업을 진행한 곳은 미국과 중국․러시아를 제외하고 멕시코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17년 10월부터 1918년 8월까지 10개월가량 멕시코 전역을 순행하면서 한인들을 위무하고 한인사회에 독립운동 활기를 불어 넣었다. 안창호는 도산 개인의 자격이 아닌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이라는 공적인 직함을 가지고 멕시코를 방문하였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1910년 대 해외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단체는 대한인국민회였다. 1909년 2월 국민회가 창립되면서 미주 본토에는 북미지방총회를, 하와이에는 하와이지 방총회를 설치하였으며, 시베리아와 만주지방에도 지방총회가 조직되어 대한인국민회는 무형의 정부로서 해외 한인 독립운동의 최고기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멕시코에도 1909년 4월 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조직되면서 한인들의 이익을 옹호하고 독립운동을 지도하는 기관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지역의 한인들은 국민회를 중심으로 상호단결하여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고,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나가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멕시코지역 한인사회는 국민회를 중심으로 단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한인들 의 경제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을 강구하지 못했다는 점이며, 멕시코 국민회에는 절대적인 지도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멕시코 이민자들 가운데 지도적인 지식층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한인사회를 이끌어 나갈 지도력이 빈곤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미주의 국민회에 지도자를 갈구하였지만, 중앙총회에서도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주지 못하였다. 이같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한인들은 국민회 중앙총회에 의무금․가옥채․기계채 등을 보냈고, 동맹저축, 애국동맹금 등한 각종 특별 의연을 거두었다. 3․1운동 기간에는 메리다지방회 소속의 한인들이 1919년 12월 1일까지 중앙총회에 ‘21례’와 인구세 등을 합쳐 약 1천 달러가 넘게 보냈다. 이같이 멕시코의 한인들이 미주의 국민회와 각종 독립운동 사업을 후원할 수 있었던 데는 안창호의 순행이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요컨대, 멕시코 한인사회가 단결되고 독립운동을 후원할 수 있는 배경에는 국민회의 실제적인 지도자인 안창호가 짧은 기간이지만 순행을 통해 한인사회를 단결시켰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안창호의 방문을 통해 멕시코 한인들은 국민회를 중심으로 단결되었으며 한인사회를 안정시키고, 나아가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는 점에서 멕시코 한인사 및 독립운동사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안창호의 멕시코 순행에 대해서는 별다른 연구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미도 크게 평가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안창호의 멕시코 순행에 대한 자료를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그 성과와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저자
  • 김도형(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