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udy on the change of Korean Buddhist ritual and its Meaning in the modern times
조선조의 불교의례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견디어야 했던 불교계의 현실과 조선의 치국이념인 유교에서 얻지 못하는 내세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형성된 불교의례는 현세 구복적이며 주술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개항 이후 불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한국불교의 모순을 타파하고 새 로운 이념을 제시한 개혁가들은 이런 의례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비 판과 함께 근대 불교의례의 방향으로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한글화와 대중화가 제시되었다.
이와 같은 한국불교의 자체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병합한 일제 는 사법을 제정하여 한국불교 의례를 크게 변질시키면서 통제정책에 활용 하였다.
그런 분위기를 인식한 한국불교인들은 1910년대 한국불교 의례 회복을 논의하였지만 실행되기 어려웠고, 1930년대 이르러 일제강점에 의해 훼손된 불교의례를 재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대두되었다. 뜻있는 선지식들은 지난날 비판하고 버려두었던 불교의례 속에서 우리의 전통을 찾으려 하였다. 그런 배경에서 1931년 발간된 불자필람과 1935년 대중들을 위해 약본으로 발 간한 석문의범이다. 그런 의식에서 형성된 전통의례의 출판은 한국 불교 인의 많은 관심과 활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일제는 전시 체제에 맞도록 한국 1,500여 사찰에서 대동아전쟁의 연전연승을 위한 기도법회를 열어 절대적인 친일과 동원을 강요하면서 변질 된 의례를 지속시켰다.
이렇게 변질된 한국불교 의례는 광복 후에 회복될 수 있었다. 새로운 집 행부가 설립된 후 모범총림을 시설하여 옛날부터 전해지는 한국불교 범음전 통을 회복하였고, 성철과 청담의 주도하에 설립된 봉암사 결사운동에서 비 불교적인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현대 불교의례의 방향성이 제시되었다.
The Buddhist rituals of Joseon dynasty were blessing and magical. Modern reformers began to criticize these rituals.
They attempted Koreanization and popularization as a modern Buddhist ritual.
The Korean Buddhist control of the Japanese Empire made Buddhist rituals greatly deteriorated.
Korean Buddhists in the 1930s tried to rehabilitate Buddhist rituals that were damaged.
In such a background, “Bulzaphilram” published in 1931 attracted the attention of Korean Buddhists.
The Japanese Empire continued Buddhist rituals that were perverted. Korean Buddhism was able to restore the Buddhist ritual after the liberation in August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