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ndings of Nam-myeong Collection the 1606 edition and its meaning.
남명집의 간행이 언제 처음 이루어졌느냐 하는 것은 이미 전병윤과 오이환, 김윤수의 논문에서 1602년이냐 1604년이냐의 논란이 있어 왔다. 이에 대해 이 상필이 南冥學硏究 30집(2010.12.31간행)의 「南冥集 初刊年代 辨證」이란 논문에서, 남명집의 초간은 남명의 문인 정인홍이 그 서문을 쓴 1604년 8월 이라 볼 수밖에 없으며, 그 뒤 목판이 불타 관찰사 柳永詢의 도움으로 다시 판 각되어 간행되었다는 그 판본을 병오본으로 명명하게 되었음을 밝힌 바 있다. 이번에 발견된 이 책은 바로 그 병오본으로서, 제1권이 한 책으로 장책되어 있고, 제2권과 제3권(부록)이 한 책으로 장책되어 있다. 제1책은 서문 3장, 남 명행장 9장, 남명비문 6장, 제1권 37장 등 모두 55장으로 되어 있다. 제2책은 제2권 88장, 제3권 36장 등 모두 124장으로 되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남명 집으로서는 最古本이며 完帙本이다. 이 병오본과 기유본을 대조하여 병오본의 내용을 기유본에서 어떻게 고쳤던 가 하는 점을 낱낱이 살펴본 결과 그 의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는 병오본에서 기유본으로 바뀌면서 112곳에서 수정이 이루어졌다는 점 이다. 전병윤과 오이환은 28곳에서 수정이 이루어졌다고 하였으나, 같은 곳에 서 84곳이 더 발견되었고, 그들이 보지 못했던 2권 마흔다섯 장에서 28곳을 발 견함으로써, 그 사이에 변화된 곳이 모두 112곳임이 드러난 것이다. 둘째는 단순한 오자 수정이 72곳에서 이루어졌고 이들은 대체로 수정될 만한 것을 수정했다고 하겠으나, ‘先乘霽日’의 경우는 재고의 여지가 있고, ‘胤孫’의 경우는 잘못 수정한 것이었다. 셋째로 시 형식과 관련하여 이정한 것 가운데 ‘全身五十年前u’의 ‘五十年’은, 이 판본을 근거로 기존의 ‘四十年’을 수정하여 이를 정본으로 확정할 만하다. 넷째로 문맥과 관련하여 이정한 것은 앞으로의 연구과제가 될 만하다. 이 가 운데서 이미 잘 알려진 것이지만 특히 신명사명의 뒷부분을 완전히 삭거한 것 은 退溪의 指斥을 염두에 둔 결과로 해석된다. 그리고 退溪에게 ‘獨立之地’라고 한 것이라든지, 權應仁에게 五柱를 보내어 자신의 임종 시기를 알아보게 한 편 지라든지, 異姓養子를 분명히 기술한 것이라든지, ‘江樓’ 시를 보각한 것 등은 앞으로 연구의 한 부분으로 인용될 만한 것이다.
The controversy on whether Nam-myeong Collection was first published in 1602 or 1604 has been provoked in the thesis of Jeon Byeong-yoon, Oh Yi-hwan and Kim Yoon-su. Lee Sang-pill revealed in The Study on Nam-myeong 30th collection (Published on December 31, 2010) that the first publication of Nam-myeong Collection has to be in August, 1604 when Jeong In-hong, the writer of Nam-myeong wrote the preface. After, the woodblock was burned down but could be re-engraved and published by help of Governor Yoo Yeong-sun, and that woodblock-printed book was called the 1606 edition. The book discovered recently is the 1606 edition, which the 1st volume is in one book and the 2nd and 3rd volume are in one book. The 1st volume includes 3 pages of preface, 9 pages of Nam-myeong record, 6 pages of Nam-myeong inscription and 37 pages of the 1st edition, total 55 pages. The 2nd volume includes 88 pages of the 2nd edition and 36 pages of the 3rd edition, total 124 pages. This book has 7 traces of correction which means that it is not the first 1606 edition but the late 1606 edition, the oldest edition and the complete set of books among discovered Nam-myeong Collection until now. After comparing the 1606 edition and the 1609 edition and examining which parts were edited from the 1606 edition to the 1609 edition in detail, it is concluded as follows. First, 112 parts were edited from the 1606 edition to the 1609 edition. Jeon Byeong-yoon and Oh Yi-hwan claimed that 28 parts were edited, but 84 corrections were more discovered in the same volume and 28 corrections in 45 pages of the 2nd volume that they could not see were discovered, thus there are total 112 corrections. Second, it is claimed that there are 72 simple misspelling corrections and parts that should be corrected are corrected, but 'sunseungcheil(先乘霽日)' may need reconsideration and 'yoonson(胤 孫)' is wrongly corrected. Third, among editing related to poetry style, 'ohshibnyeon(五十年)' of 'jeonshin ohshibnyeon cheonlu(全身五十年前u)' can confirm the original on grounds of this woodblock-printed book. Fourth, editing related to context worths being future subject of research. The most wellknown among these, the complete deletion of latter part of Shinmyeongsamyeong is interpreted that it is due to comment of Toigye. Saying 'Pro-independence' to Toigye, Sending Ohju to Kwon Eung-in to make him find his dying hour, describing adoptees from different clans and supplementing the poet 'Ganglu' can be quoted as part of future re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