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res for the World Picture
마틴 하이데거는 “세계 그림”을 세계 박람회에 의해 악화되는 해로운 기술 효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를 욕망하는 관람객들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관람객들, 미 술가들, 그리고 박람회의 조직원들이 제각각 다른 의도를 가지고 세계 박람회라는 국제 무대에 임했듯이 오늘날 전지구적인 비엔날레에서 활동하는 후예들 역시 서로 다른 의도로 이 무대에 오른다. 본 논문은 1851년의 대영박람회와 2005년의 리옹 비엔날레 사례를 통해 박람회의 축 제적 기능에 의해 촉발된 “경험의 미학”을 논한다. 경험의 미학은 대중에게 예술을 개방하고 대 중들이 스스로 예술의 의미를 변화시키고 당대의 현안에 관한 국제적인 논의를 이끌어내도록 독려했으며, 국제적인 노예 경제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불완전하나마 서구 세계에 아시아의 철 학과 문화, 치유의 과학을 삽입하려는 시도였다.
Philosopher Martin Heidegger identified the “World Picture” as a pernicious technological effect only exacerbated by the world’s fairs, but by turning to desiring audiences a very different narrative emerges. Audiences, artists, and organizers all have different intentions when engaging the international theater of the world’s fairs and their inheritors in now-global biennials. This paper briefly examines two case studies (one at the 1851 Great Exhibition, the other at the 2005 Bienal de Lyon) in which “an aesthetics of experience” – encouraged by the fair’s festal apparatus – opened the art to audiences who transformed the meaning of the art for their own publics, and propelled it into existing global debates (on the one hand the movement to abolish the international slave economy, and on the other, the incomplete penetration of Asian philosophies, cultures, and healing sciences in the Western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