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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사의 사공도 (司空圖) 「이십사시품 (二十四詩品)」이해 KCI 등재

Lee Gwang-sa's comprehension of Sikong Tu Twenty-four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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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예술연구 (문화와예술연구 (문화예술연구))
초록

사공도가 『이십사시품 (二十四詩品)』을 지었던 당나라 말기는 환관의 전횡과 당쟁, 그리고 농민의 봉기 등으로 국정이 혼란한 시기였다. 그러 나 그는 50여세부터 은거하여, 승려나 인사들과 시를 지으며 편안한 생 활을 하였다. 당 제국이 망하자 그는 국가와 군주를 생각하며 부흥하기 를 원했으나, 그것도 마음 뿐 ‘은일’과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생 을 마감하였다. 따라서 사공도의 시학관은 나라를 사랑했지만, 갈등하며 출사하지 않고 시로서 자신의 마음만을 달랬다. 이런 이중성을 가진 사 공도는 시가를 수준 높은 경지까지 끌어올릴 수 없었다. 사공도의 『시품』은 사언 고시체로 ‘웅혼’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유동’ 으로 끝을 맺는다. 각각의 구성은 4언 12구 48자 운문으로서 원문은 전 체 1,152자로 이루어져 있다. 『시품』의 24개의 풍격이 계절과 절기와도 관계가 있으며, 체제에 있어서는 무체계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인들은 작법에 의해 그들의 생활과 사상을 다루고 있다. 또한 24라는 숫자가 이 십사산 (二十四山), 이십사상 (二十四相) 등 도교와 관련되었다하여 대 부분의 학자들이 『시품』을 도가적 미학으로 논하고 있다. 원교 이광사는 왕족의 후손으로 종형제들과 성장하며 유·불·도를 공부하였고, 상고당 같은 지인을 만나 비문, 골동품, 서예책 등을 통하여 지식을 쌓아 나갔다. 또한 21살에 서예의 스승 윤순 (尹淳)을 만나, 조선 18세기 최고가는 시인·화가·서예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십사시품서화첩』에 정선이 그림을 그리고 이광사가 글씨를 쓰게 되 었다. 글씨는 현재 비록 6편은 산실되었지만 18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있다. 각 『시품』의 24풍격에 맞는 서체로 형상화하여 썼다. 그리고 서른 무렵에 하곡 정제두로부터 조선 심학을 배웠다. 이 때 배 웠던 심학이 한평생 그의 인생의 철학이 되었고 그의 집안 전주이씨 덕 천군파 학문으로 계승되었다. 50여세부터 유배지 함경도 부령과 신지도 에서 그는 ‘도 (道)’에 정진하면서 저술하였던『두남집』,『원교집』『서결』 등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원교체’가 동국진체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원교는 『시품』의 첫 구절인 ‘웅혼’을 조선심학 (하곡학)으로 “이 우주 에서 가장 힘세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은 태양이다. 태양이 태허 의 원기 (元氣)에서 태어났던 것처럼 사람도 태허로 되돌아가서 근본적 인 양기를 얻어야 한다. 원기를 얻으려면 수양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황도의 중심은 해에 끈을 묶어놓은 것처럼, 너무 멀리 떨어지거나 가깝게 오지 않도록 일정한 궤도에 따라 돌리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 음과 몸을 억지로 꽉 잡아도 안 되고 쥐는 듯 놓는 듯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이처럼 수양하면 끝이 없을 만큼 크고 넓게 될 것 이다. 라고 이광사는 이해했을 것이다.

The late Tang Dynasty, which is Si Kong Tu lived in, was chaotic due to the tyranny of the eunuch, factional strife, and the uprising of farmers. However, he spent his 50 years escaping from the situation and lived comfortably with Buddhist monks, poets while composing poems. And as the Tang Dynasty fell, he wanted to revive the country and the monarchy, but he was not able to escape from 'seclusion' and 'reality'. Si Kong Tu’s Shipin which is a dead archaic poetic word starts from ‘Woonghon’ ends with ‘Yudong’. Each composition consists of 12 phrases 48 characters and original text consists of total 1,152 characters. Most scholars interpret it as a Taoist aesthetic because it’s content and number 24 related to Taoism. Wongyo Lee Gwang-sa is a descendant of the royal family who studied Confucianism, Buddhism, Taoism. At the age of 21, he became a pupil of master calligrapher Beck-ha Yunsun and learned how to write calligraphy. Thereby he became a member of poet, painter, calligrapher group which is the top class of the 18th century of Joseon Dynasty. Also around his 30th, he learned practical ethics of Joeson Dynasty from Hakok Jung Jaedoo. Thus, Wongyo expresses the first phrase of ‘Woonghon’ as “The Sun is the most powerful in the universe but tolerates everything. Like the Sun borns from the fundamental energy of Great Void, people return to the Great Void and get a fundamental Sun’s energy. To get this Sun’s energy, People must study of mental training.” The center of the ecliptic, which is tied by string, rotated constantly for not too far away or too close to the sun. It’s like we should not grab man’s heart and body tightly, grab them like we are not sure grab them or not. Study mental training like this, you can be large and wide endlessly. When he was 45 years old, Lee Gwang-sa left the work of art to ‘Sipum’ which is a scrapbook of pictures and writings of Jeong-sun with the five calligraphy form. From this, we can know he understands it not Taoism but the practical ethics of Joeson Dynasty at that time.

목차
I. 서론
 II. 사공도 (司空圖)와 『이십사시품 (二十四詩品)』
  1. 사공도의 시학관 (詩學觀)
  2. 『이십사시품』의 체제와 구성
 III. 이광사와 『이십사시품』의 변용
  1. 이광사의 생애와 예술관
  2. 『이십사시품』의 수용과 변용
 IV. 결론
 <참고문헌>
저자
  • 하정숙(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Dongbang Culture University) | Ha, Jung S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