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실학자의 일본인식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선행연구가 있지 만 조선통신사의 일본 왕래가 저조해진 19세기에 활약한 실학자에 대한 그것은 비교적 양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는 그 중에서 최한기 (崔漢綺)와 이규경 (李圭景)의 일본인식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보았다. 최한기의 일본관은 세계 각국의 지리, 제도, 산물, 역사, 종교, 풍토, 문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지구전요 (地毬典要)에 집중적으로 나 타나 있다. 그 저본은 세계지리서인 『해국도지 (海國圖志)』와 『영환지략 (瀛環志略)』이지만 두 책의 일본 기술이 미비한 부분을 신유한 (申維翰) 의 『해유록 (海游錄)에 의거해서 보충했기 때문에 그의 일본에 관한 지 식・이해는 신유한에 의거하고 있다. 최한기는 일본의 세습제도에 대해 “어찌 인간의 재능에 한계가 있겠 는가? 실로 정교 (政敎)의 구속에 의한 것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냉정하고 공평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의 일본 정보・지식은 상대적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기학 (氣學)’이라는 새로운 사상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전통적 유교의 화의사상이나 역사적인 적개심, 멸시관도 극복할 수 있었다. 한편 이규경은 규장각검서관 (奎章閣檢書官)이자 『청령국지 (蜻蛉國 志)라는 일본에 관한 저술도 있는 실학자 이덕무 (李德懋)가 할아버지 였으므로 일본에 대해서는 최한기보다 풍부한 문헌과 지식・정보와 접 할 수 있었다. 그는 실제로 그것을 활용해서 일본의 신화, 역사부터 생활 문화와 속신 (俗信)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식을 그의 저서 오주연문 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 속에서 기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규경은 일본인을 가리켜 ‘도이 (島夷)’, ‘왜이 (倭夷)’, ‘흑치 녹정 (黑齒綠頂)’ 등의 멸칭을 거리낌 없이 쓰고 그 방대한 지식을 가지 고도 일본이나 일본인에의 멸시관, 차별의식을 고치고 극복하기에 이르 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나 사고전서 (四庫全書)에도 수록된 일본의 유학 자 야먀노이 테이 (山井鼎)의 『칠경맹자고문 (七經孟子考文)』의 고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듯이 이규경은 그러한 차별의식을 옆에 두고 일본의 문물이나 학술의 좋은 것을 평가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동아시아 지역 신석기시대 다원커우 (大汶口)문화의 대표적 유물인 삼 족기는 다른 문화권에서는 볼 수 없는 ‘새 모양의 몸체에 세 개의 다리’ 가 달려 있는 독특한 형태의 그릇이다. 본 논문은 이 특별한 삼족기의 형 태에 대하여 그 근원을 고찰 한 것이다. 중국의 미학자 리쩌허우는 그의 저서 『미의 역정』에서 이 삼족기가 세 개의 다리를 가진 것에서 ‘자연계를 모방하지 않은 인류 최초의 형식 창 조’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본 논문은 이 삼족기가 새의 모양인 것에 주 목하여 새 혹은 그와 비슷한 대상을 모방했을 가능성과 그 창조의 근원 이 될 수 있는 고대인들의 특별한 관념에 대하여 고찰 하였다. 삼족기의 특징인 세 개의 다리 형식은 북방의 몽골 유목민에서 전래되 어 동북 지역의 훙산 (紅山)문화에서 체계화된 숫자 3에 대한 특별한 관 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삼족기는 이 관념이 인근 지역으로 확산 되면서 광범위한 지역에서 시대를 이어가며 제작 되었던 그릇의 한 형식 으로 다원커우 삼족기만의 특징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새 모양의 형태는 다원커우 삼족기만의 특징으로 다원커우문 화의 초기부터 가지고 있었던 새토템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다원커우문 화는 동이족이 이룩한 문화로 고대의 저서 『한시외전 (韓詩外傳)』·『좌 전 (左傳)』·『회남자 (淮南子)』·『산해경』 등에 의하면 초기의 태호족 시기부터 새토템을 가지고 있었으며, 중기의 소호족 시기에 태양 숭배 사상이 더해져서 태양새토템으로 발전하였고, 여기에 숫자 3에 대한 특 별한 관념이 더해져서 세 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를 숭배하는 삼족오 신앙을 가졌던 것을 알 수 있다. 관념으로서의 삼족오신앙이 형상으로 표현됨으로써 처음에는 <팽이형토기>에 태양을 실어 나르는 새를 상징 하는 평면적인 도상으로 나타났으며, 이후 입체적인 형태의 <태양신조형 (太陽神鳥型)토기>로 표현되었고, 마침내 삼족오를 닮은 새 모양의 몸 체에 세 개의 다리가 달린 제사용 도기 규 (鬹)가 제작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다원커우문화의 삼족기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원커우문화의 새 모양 삼족기는 리쩌허우가 말한 ‘자연계 를 모방하지 않은 인류 최초의 형식 창조’라기 보다는 다원커우인들의 관념 속에 숭배의 대상으로 존재했던 ‘삼족오를 형상화한 관념 대상의 모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중국의 중원에서는 수·당나라 이후로 이미 사라진 삼족오 도상 이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볏이 뚜렷한 세 발 달린 봉황의 모습으로 더욱 화려하게 발전하여 우월한 민족성을 나타내는 표상으로 널리 사용 되었고 솟대 등의 상징물로 현대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는 것은 다원커우 와 우리나라가 하나의 동이족 문화권임을 유추할 수 있다.
Soft power is an important part of national comprehensive strength, many countries has taken all kinds of measures to improve the level of soft power, but there are big differences of efficiency. Important reason lies in the cultural communication strategy. This paper takes China and Republic of Korea as examples to sum up the influence of cultural communication strategy on soft power. The common characteristics of the two countries is the importance of government. However, due to differences in cultural industrialization and dissemination content, there are still great differences in the effect of cultural transformation into soft power. Overall, Republic of Korea has more successful experiences and China is in the process of development.
On the early stage of Emperor Qianlong period, Qianlong ordered the
ministers to sort out interior cultural relics. Therefore ministers successively
compiled four antiques catalogue, they are "Midian Zhulin
Buddhism and Taoism paintings appreciation", "Shiqu Baoji paintings appreciation",
"Ancient bronze vessels collection appreciation in Qing Dynasty"
and "Tianlu Linlang official books collection catalogue appreciation"
respectively. The stylistic rules and layout of the first two was borrowed
from Gao Shiqi "Jiang Cun Xiao Xia Lu". The stylistic rules and layout of
the record of "Ancient bronze vessels collection appreciation in Qing
Dynasty" was borrowed from Wang Fu "Bo Gu Picture" and Lv Dalin
"The Archaeological Picture". To a great extent, the stylistic rules and layout
of "Tianlu Linlang official books collection catalogue appreciation" was
inherited from the connoisseur ideology of "Shiqu Baoji paintings appreciation"
and "Ancient bronze vessels collection appreciation in Qing Dynasty",
which was the evolutionary adaptation of style reference and actual situation
of books identification and collection. As the classic examples of official
connoisseur catalogue, "Tianlu Linlang official books collection catalogue
appreciation" had a significant impact on Qing dynasty bibliography.
As the development of textology in Qing Dynasty, the connoisseur gradually
flourished in society. Under its inspiration and influence, the edition
bibliography of Qing dynasty continued to develop.
사공도가 『이십사시품 (二十四詩品)』을 지었던 당나라 말기는 환관의 전횡과 당쟁, 그리고 농민의 봉기 등으로 국정이 혼란한 시기였다. 그러 나 그는 50여세부터 은거하여, 승려나 인사들과 시를 지으며 편안한 생 활을 하였다. 당 제국이 망하자 그는 국가와 군주를 생각하며 부흥하기 를 원했으나, 그것도 마음 뿐 ‘은일’과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생 을 마감하였다. 따라서 사공도의 시학관은 나라를 사랑했지만, 갈등하며 출사하지 않고 시로서 자신의 마음만을 달랬다. 이런 이중성을 가진 사 공도는 시가를 수준 높은 경지까지 끌어올릴 수 없었다. 사공도의 『시품』은 사언 고시체로 ‘웅혼’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유동’ 으로 끝을 맺는다. 각각의 구성은 4언 12구 48자 운문으로서 원문은 전 체 1,152자로 이루어져 있다. 『시품』의 24개의 풍격이 계절과 절기와도 관계가 있으며, 체제에 있어서는 무체계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인들은 작법에 의해 그들의 생활과 사상을 다루고 있다. 또한 24라는 숫자가 이 십사산 (二十四山), 이십사상 (二十四相) 등 도교와 관련되었다하여 대 부분의 학자들이 『시품』을 도가적 미학으로 논하고 있다. 원교 이광사는 왕족의 후손으로 종형제들과 성장하며 유·불·도를 공부하였고, 상고당 같은 지인을 만나 비문, 골동품, 서예책 등을 통하여 지식을 쌓아 나갔다. 또한 21살에 서예의 스승 윤순 (尹淳)을 만나, 조선 18세기 최고가는 시인·화가·서예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십사시품서화첩』에 정선이 그림을 그리고 이광사가 글씨를 쓰게 되 었다. 글씨는 현재 비록 6편은 산실되었지만 18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있다. 각 『시품』의 24풍격에 맞는 서체로 형상화하여 썼다. 그리고 서른 무렵에 하곡 정제두로부터 조선 심학을 배웠다. 이 때 배 웠던 심학이 한평생 그의 인생의 철학이 되었고 그의 집안 전주이씨 덕 천군파 학문으로 계승되었다. 50여세부터 유배지 함경도 부령과 신지도 에서 그는 ‘도 (道)’에 정진하면서 저술하였던『두남집』,『원교집』『서결』 등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원교체’가 동국진체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원교는 『시품』의 첫 구절인 ‘웅혼’을 조선심학 (하곡학)으로 “이 우주 에서 가장 힘세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은 태양이다. 태양이 태허 의 원기 (元氣)에서 태어났던 것처럼 사람도 태허로 되돌아가서 근본적 인 양기를 얻어야 한다. 원기를 얻으려면 수양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황도의 중심은 해에 끈을 묶어놓은 것처럼, 너무 멀리 떨어지거나 가깝게 오지 않도록 일정한 궤도에 따라 돌리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 음과 몸을 억지로 꽉 잡아도 안 되고 쥐는 듯 놓는 듯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이처럼 수양하면 끝이 없을 만큼 크고 넓게 될 것 이다. 라고 이광사는 이해했을 것이다.
본 연구는 세계미술시장에서 저평가 되어 있는 한국의 미술품들의 정당 한 가격형성에 도움이 되는 한국형 가격지수개발의 필요성에 대해 연구하 였다. 현대사회 시장의 영역에서 자주 언급되는 미술작품의 가격 산정은 일반적인 공산품과 달리 세계 미술계의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작품의 가 격형성에 있어 가격을 정하는 ‘기준’들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한국미술계에서 통용되는 미술품 가격은 통상 작가나 갤러리 혹은 관객이 결정하기도 한다.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당가격 제로 대부분의 작품가격이 형성되고 있으며, 믿을 수 있는 가격을 위해 참 고하는 자료들은 작가의 이름과 약력, 평론가의 논평 등이다. 현재 미술시 장의 가격형성방식은 갤러리 및 작가에 의한 산정방법과 경매낙찰가를 기 준으로 산정되는 방법이 있다. 이 연구는 이 가운데 산정기준이 좀 더 명 확한 경매낙찰가에 근거하여 시장경제 안에서 가격이 형성될 수 있는 방 법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서양 미술시장에도 국내시장과 마찬가지로 호당가격제가 존재하지만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자산지수로 검증된 미술품 가격지수에 의해 시장 내 작품가격을 정당화 시키고 있다. 한국 미술시장의 역사는 비교적 짧기 때 문에 반복매매에 따른 기록이 부족하고 여러 기관에서 한국형 미술지수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미술지수에는 미술품의 특수성을 감안해 예술적 가치라는 정성적인 분석이 포함되어야 하지만 현재까지 개발된 한국의 미술지수들은 이를 포함하지 않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다. 믿을 수 있는 가격지수의 부재로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한국의 미술품을 거래할 때 많은 혼란이 있다. 이러한 차원에 서 미술품의 특성과 현대미술시장의 현황에 대해 고찰한 다음, 문헌조사 를 통해 국내에서 개발되었던 미술지수 (KAPPA, KAMP)와 세계미술 시 장의 대표적인 메이모제스와 아트프라이스닷컴의 가격지수 사례들을 분 석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형 미술지수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본 글은 춘추시대 역사서인 춘추의 철학적⋅역사학적⋅책력학적 분 석을 진행한 춘추왕력① (2017), ② (2017), ③ (2017) 선행연구들에 대한 후속 논의이다. 동짓달부터 3개월 동안을 春으로 명명한 춘추왕 력에서의 계절 개념을 실증해 보기 위해, 당시의 절후를 확인할 수 있는 증 의례와 상 의례, 그리고 우 의례 기사들을 고찰해 보았다. 烝 의례는 이상저온 현상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기후의 온난함을 기원하고자 한 의 례로서, 그리고 嘗 의례는 음식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로서 이행된 것임 이 확인되었다. 한편, 전국시대 이후의 기록들에서 증이나 상 의례는 각 각 겨울제사와 가을제사와 같은 사시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춘추 경 문에서는 그것들의 이행시기가 따로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 단비에 대한 간절한 기원으로서 이행된 雩 의례 기사들은 대부분 한여름이 포함된 ‘秋’ 계절에 집중되어 있다. 문자적인 논증으로서, 갑골문과 금문 등의 고체를 통해 그것들의 초기 형태 및 본원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春’자는 이른바 ‘하나의 양이 막 생 겨나는’[一陽始生] 동지 절후를 묘사한 것이다. ‘夏’자는 춘분 이후 완연 한 봄에 벌어지는 원시적인 전통 축제에서 이성을 유혹하는 춤을 추기 위 해 차려입은 현란한 의복과 거대한 가면에서 유래된 글자이다. ‘秋’에는 벼 수확에 영향을 미치는 여름 곤충이 묘사되어 있으며, ‘冬’의 경우는 1 년의 사계절을 끝마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본 연구는 집단미술치료가 학교부적응 아동의 자아존중감과 학교생활 적응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연구의 대상은 N시에 소 재한 00초등학교 학교부적응 아동 5명을 선정하여 주 1회 60분간 총 12 회기로 집단미술치료를 실시하여 자아존중감 검사와 학교생활 적응 검사 를 사전-사후 에 측정하였고, 실험설계에 따라 집단미술치료 프로그램 효 과를 검증하기 위해 대응표본 t검증 (paired t-test)을 실시하였다. 분석결과, 본 연구에서는 자아존중감의 하위요인 중 총체적 자아존중감 과 학교적 자아존중감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학교생활 적응의 하위요인에서는 교사관계, 교우관계, 학교규칙에서 유의 미한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집단미술치료가 학교부적응 아동의 자아존중감과 학교생활 적응에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Chinese ink and wash painting, taking ink as the carrier and based on the variation of the colour of black and white, has been developed under the deep influence of the Han nationality's philosophy- the theory of Yin Yang and five elements. With the development of metaphysics in Wei and Jin dynasties, the rudiment of ink landscape, which was mainly manifested with the stroke of hook, cracked and ink dye. Wang Wei, in Tang Dynasty, once wrote in his essay Skills of Landscape Painting: wash and ink painting is a very high level of painting. This interpretation has established the aesthetic orientation in Chinese wash and ink painting. After the rising of the literati paintings in Song Dynasty, lots of ink flower-and-bird painting and ink figure painting have been seen. Till this time, the Chinese ink and wash painting, taking water and ink as its basic materials, and the theory that man is an integral part of the nature as its core value, has become mature gradually and a system was eventually formed. Zhang Yanyuan in Tang Dynasty, wrote in his the Famous Paintings of History that five colours would be presented through different strokes of ink. He classified five types of using water and ink in painting. There are many different interpretations for the five colours and the author tends to divide them into five stroke types: thick (containing more ink), light (containing less ink), dry (containing less water), wet (containing more water), extremely thick (containing the most ink). Moreover, combining her practice of water and ink paining for decades and her study of Yi-ology, the author tries to bring the five types of using water and ink (they might be called the five types of water- and- ink-using in painting temporally) into the studies of Yin Yang and five elements (including the Feng Shui Theory, numerology and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which were originally developed from the Yi-ology). Wood of the five elements, corresponding to Light of the five types of water-and-ink using in painting, is positive, with an elegant and refined character; Fire, corresponding to Dry in painting, is extremely positive, with a high stated character; Earth, corresponding to Thick in painting, is neutral, with a steady character; Metal, corresponding to Extreme Thick in painting, is negative, with a deliberate character; Water, corresponding to Wet in painting, is extremely negative, with a soft and smooth character. A painter is a part of the universe. Hence his/her location and horoscope inevitably connects the five types of his/her ink and wash paintings. One's external presentation is the embodiment of the internal quality and the internal quality includes not only one's subjective practice in mentality, but also one's health conditions in physiology. If the painter's horoscope agrees with the five types of his/her ink and wash paintings, the mental happiness and physical health shall be ensured; if not, the spiritual happiness and physical health might be influenced. In this essay, the author classifies painters' horoscope into four types, which are lack-of-metal type, lack-of-water type, lack-of-wood type, lack-of-fire type, and analyze the connection between them and the five types of the wash-and-ink paintings. The main idea of the Yi-ology is that a man is an integral part of the nature and a man should conform to nature. In Qian Gua, the first divinatory symbols among the eight ones in Zhou Yi (the ancient text of Yi-ology), it interpreted the idea in a metaphor that haughtiness invited ruin. A proper application of the stroke of thick, light, dry, wet and extremely thick to the painting can help the art work keep balanced of Yin and Yang and is presented with a lively spirit and charm. Otherwise, the art work will be a failure. If a painter can understand the dialectical relationship between the theory of Yin and Yang and the five elements and the five elements and the five stroke types in ink painting, he/she shall be able to understand his/her artistic creation and arts appreciation. This is also the significance of studying oriental art philosophy.
한극서예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그 동안 한자 중심의 전통세예를 탈피 한 디지털시대 맞는 방법론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라는 말과 같이 서양 동양 중국 일본 한국 등 특정 문화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우리 한글이 우수성과 문자의 독자성을 찾아 서 거기에 맞는 방법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논자는 그 방법론 중에서 문자텍스트와 이미지가 융합된 전형적인 도 상텍스트를 중심으로 연구를 하고자 한다 아울러 본 연구에서는 서구기 호학이 천착해운 기호사각형 관점을 빌려 서양의 타이포그래피 나 캘리 그래피 동양의 전통서예 나 문자도에 나타나는 상이한 차이에 대한 물음 을 제기하면서 서예문화를 연구한다. 한글은 타 글자와는 다른 추상문자에서 출발하여 점차 이미지로 변환 되어가는 문자 추상이 중심이 되므로 기호학 관점을 빌어 연구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왕자오정 (王子午鼎)>은 기물의 모양이 독특하고 문양은 실랍법 (失 蠟法), 명문은 조충서 (鳥蟲書)를 사용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선행연구에서는 주로 무덤주인, 제작연대, 내용분석에 치중하였는데, 본 고에서는 이를 토대로 <왕자오정> 명문의 내용과 기물의 주인, 그리고 명문에 나타난 서체미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도출해 내었다. 첫째, <왕자오정> 본체의 명문에 영윤자경 (令尹子庚)이란 명칭을 통 해 왕자오 (王子午)가 영윤으로 있던 기원전 558~552년 사이에 열정 (列 鼎)을 주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그 덮개에 보이는 붕 (倗)은 자 경과 자남 (子南)의 뒤를 이어 영윤 (令尹)이 된 위자붕 (蔿子馮: 楚叔之 孫倗)으로, 어떤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이 기물을 획득하여 덮개를 추가로 만들고, 기원전 548년에 죽으면서 자신의 무덤 (M2)에 부장하였을 것으 로 추정된다. 둘째, 춘추 5패 (覇) 중의 한사람인 초나라 장왕 (莊王)은 9정 (鼎)에 대한 고사로 유명하다. 그의 아들인 왕자오는 자신의 신분보다 한 단계 높은 7점의 열정을 주조하여 당시 초나라의 국력이 막강하였음을 고고 학적으로 증명하였다. 그러나 이후에 <왕자오정>과 같이 화려한 청동기 가 보이지 않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인문정치가 미약하였기 때문으로 추 측된다. 셋째, 조충서는 춘추전국시기에 장강 중하류 지역에서 크게 유행하여 중원 지역에까지 영향을 주었는데, 오 (吳), 월 (越), 초 (楚), 서 (徐), 증 (曾), 채 (蔡), 송 (宋) 등의 여러 제후국에서 주로 발견된다. 춘추시기에 서 조충서는 무기류에서 주로 확인되고 용기에는 극히 드물다. <왕자오 정>은 현재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조충서의 명문으로 그 사료적 가치 뿐만 아니라 서법예술에서도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춘추시기 초나라 문화권에서는 세로의 길이가 긴 장방형 결구를 선호하고 있다. <왕자오정>의 명문도 이러한 결구를 취하고 있는데, 본 체의 복부에는 조충서로 14행 84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고, 덮개에는 장 방형의 대전 (大篆)으로 4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 이 기물 본체는 왕자오가 만들고 덮개는 위자빙이 만들었기 때문이며, 덮개를 추가로 만드는 과정에서 좀 더 고풍적인 장방형의 전서를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왕자오정>은 동시기 청동예기 중에서 기물의 제조방법과 명문의 서사방식이 매우 빼어난 것으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최고의 걸작 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당시 초나라 왕실과 국제정세를 알 수 있는 청동기 유물이며 조충서의 초기적인 형태로 조충서의 형성과 변화양상 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서예사에서 왕희지는 이전의 질박한 서풍을 유미한 서풍으로 변화 시켜 첫 번째 ‘변법’을 실행하여 서성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안진경은 두 번째 ‘변법’을 실행하여 성당시기의 장엄하고 혼후한 서풍을 이루어 아성 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러한 안진경의 ‘변법’을 서예사적 배경과 핵심적 인 요소를 필법ㆍ풍격ㆍ결구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필법은 내엽법을 외탁법으로 변화시킨 것으로 횡획ㆍ종획ㆍ적획ㆍ책 획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내엽법은 굳세고 강건하며 상쾌하여 귀족적인 서풍의 면모가 나타난다고 한다면, 안진경의 외탁법은 둥글고 윤택하며 온후한 특징을 나타내었다. 풍격은 왕희지가 이전의 질박한 서풍을 유미한 서풍으로 변화시켜 첫 번째 ‘변법’을 실행하여 서성이라는 칭호를 얻었다면, 안진경은 모든 것이 변하여 풍성함을 숭상하는 성당시기의 장엄하고 혼후한 서풍을 이루어 두 번째 ‘변법’을 실행하여 아성이라는 칭호를 얻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구는 글자에 따라 자태를 나타내고 기운 것으로 오히려 바름을 삼으 며, 허실ㆍ주차ㆍ읍양ㆍ소밀 등을 통해 서로 다른 변화를 나타내고, 필세 ㆍ절주를 통하여 영활하며 생동함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필법ㆍ풍격ㆍ결 구 등은 모두 안진경이 실행하였던 ‘변법’의 내용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 들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서예도 변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 치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 것인데, 이는 한국서단의 화두 이자 서예가 각자의 화두일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안진경의 ‘변법’ 은 한국서단에서 타산지석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특히 새로운 창작에 두 려움을 느끼면서 옛것과 자신의 선생 글씨만 답습하거나 법첩의 임모에만 열중하고 있는 이들에게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 글은 비록 안진경 의 ‘변법’에 대해 살펴본 것이지만 이를 초석으로 삼아 새로운 창작을 모 색하거나 자아의 성정을 나타낼 수 있는 서예로 발돋움을 할 수 있다면 분 명 의의가 있을 것이다.
디자인산업은 투자수익률에 있어서 제조업을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났 다. 그러나 우리나라 디자인 경쟁력은 OECD 23개국 중 14위로 OECD 평균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디자 인전문 기업의 수는 2006년 2,330개에서 2012년에는 3, 982개로 연평 균 28.5%성장하였지만 정부의 디자인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나 예산은 답보상태에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디자인강국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부문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디자인기업의 88.9%가 종업원 1-9명의 소기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의 지원 없이 기업스스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투자를 감당하기에 는 한계가 있다. 디자인부문 인력문제의 해결을 위한 교육지원과 소기업 을 중심으로 컨설팅제도의 활성화하고, 디자인 보호제도를 위한 법, 제 도의 정비 등을 위한 지원은 우리나라가 디자인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서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본 연구에서는 배경이론을 통해 근대건축물에 관한 일반적 사항을 고 찰하고 근대건축물 보존 및 활용에 관한 연구자료를 분석하여 조사대상 을 선정하고 분석요소를 도출하였다. 조사대상은 수도권에 분포한 근대 건축물 가운데 문화재로 등록되고 원형보존이 되어 2010년대 이후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대상으로 한정하였다. 공간의 재생을 통한 근대 건축물의 보존에 초점을 두어 당시 근대건축물의 건축적 특성과 디자인 요소들을 파악하고 특성 보존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근대건축물의 보존은 외관은 당시의 원형 그대로 보존하거나 복원하 는데 비해 내부는 건립당시의 모습 그대로 사용하기 보다는 당시 실내디 자인 요소를 부분 보존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충족하기 위해 공간구성이 변한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공간의 내부적 요소가 현대적 기능을 수 용하기에는 구조의 노후화, 사용목적 및 환경의 변화 등의 문제점이 있 기 때문에 공간을 원형보존 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따르나. 근대건축물의 보존은 쇠락한 건축물을 새로운 공간의 장으로 변화시켰다는 의미를 지 닌다. 현대건축물의 다양화, 고층화의 경향 속에서 새로운 문화적 공간 을 창출하였고 근대건축물 재이용의 다양한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것에 의의를 갖고 있다. 종합해 보면 건축물을 다시 짓고 새로운 공간을 조성 하는 것보다 기존의 건축물을 재이용 하는 것이 더 큰 효용가치를 지닐 수 있고 문화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근대건축물의 보존을 위 한 다양한 재이용의 방안과 가치에 대하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원주의’는 현대 미술을 비롯해 문화 현상의 특성을 지칭하는 용어 이다. 현대 미술이 ‘다원주의’적 특성으로 설명되는 이유는 획일화를 지 양하고, 다양화의 경향으로 변모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 원주의’ 시대의 미술은 동서 간의 차이를 비롯해 장르들 간의 구분, 그리 고 전문성에 기초한 예술 범주들 간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해체되는 상 황을 나타내는 통합적 성격의 용어라고 하겠다. 이 논의는 현대 미술의 다원화 현상으로 관찰되는 여러 쟁점들과 그 쟁점의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들을 검토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렇다 고 해서 특정한 결과를 추출하기 위한 시도는 아니며, 미술계나 문화계, 그리고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들을 제시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문제의 초점은 국제화로 일컬어지는 요즘의 현대 미술에 서 간취되는 동서 미술 간의 문제, 그리고 첨단 정보통신시대에 미술에 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검토하고 긍정적 미래에 대한 제안에 있음을 밝혀 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