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명보정(錦溟寶鼎, 1861~1930)은 구한말의 승려이자 지식인으로서, 1, 000여수의 시를 남기고 있다. 그는 송광사를 중심으로 전라도 지방에 서 주로 활동하였는데, 적극적인 사회활동보다 절에서 글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그의 시 속에는 시대상황을 반영 한 것들도 많이 존재하는데,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 삼일독립운 동 뒤에 감옥에 갇힌 것을 안타까워하는 시나 동경대지진(東京大地震) 을 묘사한 시 등이 그것이다.
그는 대단한 문필가이자 승려들을 가르친 강사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글을 짓고 경전을 읽는 것을 주로 하였다. 하지만 그의 시 속에는 승려로 서 수행에 몰두하지 않고 시와 글을 짓는 것에 대한 자괴감 등도 엿보인 다. 그의 삶의 모델은 유마거사(維摩居士)인데, 그의 시 속에는 유마거사 에 대한 시도 종종 보인다. 한편 그는 당시의 한국승려들과 마찬가지로 간경(看經), 참선(參禪), 염불(念佛)을 동시에 닦고 있었는데, 이를 삼문 수업(三門授業)이라고 한다. 그는 참선에 있어서는 무자화두(無字話頭) 를 참구하고 있었으며, 무자화두에 대해 읊은 시도 존재한다.
나아가 그는 평소 염불을 닦아서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왕생하고자 하였는데, 특히 말년에 이르러서는 열심히 염불수행을 하였다. 또 장편 염불가요(念佛歌謠)인 『정토찬백영(淨土讚百詠)』을 남기고 있는데, 이 는 백암성총(栢庵性聰, 1631~1700)의 『백암정토찬(栢庵淨土讚)』을 본 뜬 것이다. 『정토찬백영』은 한국의 정토가요(淨土歌謠)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높은 작품이다.
본 연구는 장소특정성을 살린 그라피티를 이용하여 도시를 재생시키 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연구를 위해 이론적 배경 스터디와 사례분 석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하였다. 먼저 장소특정성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 해 공공미술의 장소특정성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알아보았다. 이론에서 는 공공미술이 ‘장소에 결합하는 예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듯이, 공공미술에서 장소특정성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개념으로 다루고 있 으며 많은 공공미술 사례를 통해 장소특정성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공공미술로서 그라피티의 장소특정성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현 대의 그라피티는 과거의 낙서 수준에서 벗어나 대중에게 더욱 친밀하게 다가선 거리미술로서 공공미술과 마찬가지로 장소특정성이 있으며 지역 적 특수성과도 상관관계를 맺고 있고 심지어 사회적 영향력과 커뮤니케 이션 효과도 갖는다. 본 연구의 목적인, 그라피티의 장소특정성을 이용 한 도시재생 방안을 찾기 위해 도시재생을 위해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는 그라피티 조성사업 사례를 조사하였다. 동두천에서 추진 중인 도시재생 을 위한 보산동관광특구 그라피티 조성사업 사례를 조사하고 이론적 배 경에서 제시된 장소특정성 공공미술의 중요한 요소 세 가지를 분석의 틀 로 이용하여 분석한 후, 그라피티 조성사업에서 장소특정성을 보완하는 방향에 대해 제언을 하였다. 분석을 통해 제언한 내용은 세 가지로, 그라 피티 작품과 장소는 상관관계를 맺어야 하며 참여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과 공공미술로서 지역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공 공의 표현매체로서 사회적 영향력과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고려해야 한 다는 것이다. 연구를 통해 동두천의 특수한 장소적 맥락에 따라 장소특 정성이 강화된 그라피티를 이용했을 때, 그라피티가 도시재생에 긍정적 으로 기여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1세기는 문화와 이미지의 시대로 도시경관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 고 2007년 경관법 제정 이후 지자체 및 각 정부부처에서 각종 경관사업 을 시행하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경관이란 ‘보여지는 풍경’이란 일차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자연생태계의 작용, 인 간의 활동 등과 관련된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생태학, 형식미학, 정신물리학, 심리학, 기호학, 해석학, 현상학, 경제학 등 다학제적 성격을 지닌다.
본 연구의 목적은 첫째, 문헌조사를 통하여 경관에 관한 개념과 경관 사업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고자 하며, 둘째, 경관사업을 시행했던 시범 지역을 연구대상으로 평가하고 있는 가로경관 디자인 논문 4편을 선정 하여 경관사업 사후 평가결과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셋째, 경관논문사 례의 방법론이나 연구프로세스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추후 경관디자인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 본 연구를 통하여 경관의 개념과 학문적 영역, 경관 사업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경관사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목적이라 할 수 있는 도시이미지의 향상과 도 시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다각적인 방법들을 다학제적 관점에서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서로 비슷한 시기에 해당하는 고려(918~1392)시대와 일본의 헤이안 (平安, 794~1192)시대의 사경(寫經)은 다른 점이 많다. 먼저 고려시대 의 사경에는 금자(金字), 은자(銀字) 사경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묵서경(墨書經)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반면에 헤이안시대의 사경에는 묵서경이 금자, 은자 사경보다 많다.
묵서경에 있어서도, 고려시대의 묵서경은 경문(經文)이나 천지선(天 地線), 계선(界線) 등을 금, 은으로 장식한다든지 변상도(變相圖)를 그리 는 것에 그치고 있다. 이에 비해 헤이안시대 묵서경의 특징은 장식경(裝 飾經)이라고 불러서, 사경지(寫經紙)에 금은박(金銀箔)을 뿌린다든지, 경문을 쓰는 본지(本紙)에 새, 구름 등의 그림을 그려 넣거나 경문에 보 탑(寶塔)이나 연화대(蓮花臺)를 그려 넣는다든지 하는 다양하고 화려한 장식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헤이안 시대의 사경장식의 발달은 법화경과 밀접한 관계에 있 다. 일본에서는 중국, 우리나라에 비하여 법화경 신앙이 더 강했는데, 법 화경은 서사(書寫)의 공덕이 강하게 설해지는 경전이다. 특히 헤이안시 대에는 법화경을 서사할 때, 법화경 28품(品)을 별개의 사람들이 각각 1 품씩 서사하는 일품경(一品經)이 생기게 되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1 품씩 사경했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화려함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다양한 양식의 작품이 생기게 되었다.
『주역』, 「계사전」에서는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도라고 말 하니 …… 음과 양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을 神이라고 한다(一陰一陽之謂 道. …… 陰陽不測之謂神).”고 말했다. 즉 ‘神’은 易이 感하여 천하의 원 인과 통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경지를 의미하고 결과적으로 陰陽 變化의 원리를 가장 핵심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동기창은 음과 양을 통한 神의 원리를 표현하는 것을 예술적 세계관으로 인식하고 그의 화론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냈다. 동기창은 이와 같은 ‘以形寫神’을 작품 안에서 실현하는 것을 추구해야 할 회화적 造化觀으로 본 것이다. 이처 럼 회화 작품에서 ‘傳神’을 한다는 것은 陰과 陽의 對待 작용을 통해 生 의 원리를 이끌어내는 것과 같이 작가와 대상이 서로 감응하여 하나가 되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동기창은 이와 같이 작품 속에서 ‘傳神’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南宗文 人畵의 역사에 대한 학습과 자연에 대한 체험, 그리고 書畵同源적 원리 를 이해하고 학습하는 것을 선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그의 學 畵觀은 동기창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氣韻生動’ 또한 후천적인 노력 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여겼다. 또한 동기창이 天機를 관찰하는 것을 통 해 筆意에 변화를 주고자 했던 王維를 존중했던 것을 통해 法과 變의 對 待 관계를 중요시했으며 法[학습]을 통해 新[창신]을 실현하려 했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또한 회화의 근원에 대한 학습을 통해 서예와 회화의 근 본 요소인 線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했고 이를 회화에도 적용할 수 있어 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동기창은 안개와 구름의 변화는 자연의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 는 것이며, 이를 회화에서 제대로 표현하여 자연의 생명성을 드러내는 것이 회화의 생명성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자연의 생명성 이 곧 예술 작품의 창조성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래서 동기창은 작품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생명 성을 드러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고 동기창은 이것 또한 적절 한 필법의 운용을 통해 자연 변화의 원리를 담아내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통해 가능할 수 있다고 보았다.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선 초기 안견파(安堅派) 화풍이 풍미하 고 있던 당시와는 달리 색다른 경향의 화풍을 보이고 있다. 이런 화풍을 선도하는 강희안은 이 작품에서 활달하고 세련된 필치(筆致)로 문인사대 부의 기품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새로움을 보였다.
본 연구에서는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에서 나타나는 수석(壽石) 소재의 관점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이 그림은 너무나 유명한 그림으로 전해오기에 후대에 그림 제목, 즉 명칭을 제명(題名)할 당시에 무엇보다 그동안‘물을 바라보는 있는 고사(高士)’라는 해석이 일반적으로 되어있 었던 그 시대 상황과, 이와 비슷한 유형의 동시대 풍속화 등의 제목을 참 고하여 이 그림에 대한 명칭을 제명(題名)한 것으로 판단된다.
본 연구에서는 그동안 불리어져 온 명칭을 수용하면서, 그림에 등장하 는 수석 소재의 인식을 중점으로 새로운 작품 명칭을 제언하고자 한다. 이 그림에서 고사가 바라보는 것은‘물(水)’만이 아니고, 물 위에 드러나 있는‘괴석(怪石)’으로 표현된 수석(壽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본 연 구의 논지이다. 여기에서는 옛 그림 한 점을 놓고 작가는 어떤 사람이었 는지, 그림이 그려 질 당시에 작가의 시대적 상황은 어떠했는지, 또한 작 가가 그림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미학적 방법으로 접근한 다. 특히 조선시대 문인사대부들의 애석(愛石) 취미생활 등의 환경적 요 소와,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작품에 나타난 구도상의 조형성 등을 고려하여 본 연구자가 여러 정황을 내놓음으로써 이 작품 명칭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한다.
淸代의 哲學은 明道救世와 實事求是였다. 즉 ‘도를 밝히고 세상을 구 하려는 것’이며. 淸代 學術 變遷의 요점은 史學으로 經學을 포함하는 것 이었다. 淸代의 學術은 乾嘉考證學이 으뜸이긴 하나, 淸朝의 특색이 진 보적이고 창의적인 시대에 걸 맞는 思想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博學多識한 楊守敬은 金石學을 좋아하고 考證學에 저명한 학자로, 수 많은 자료들을 섭렵하여 목록을 작성하고 다방면의저술을 편찬하여 淸 末에서 民國 초기의 가장 걸출한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楊守敬의 學書과정을 보면, 顔眞卿을 宗으로 삼았고, 阮元과 何紹基 의 書를 배웠으며, 그는 전통적 기법을 학습하고, 다른 碑帖에 있는 특징 들을 반영하며, 학습 상 相互 補充的이며 다른 碑帖과의 관계를 辨證的 으로 인식하였다. 그의 書를 보면, 篆書의 書體는 書法에 대한 求學精神 이 나타났고, 楷書작품은 風格이 각기 달랐으며, 결체 상 에서 새로운 조 형을 구현했다. 행서는 “碑帖融合”을 지향한 그의 書學思想이 반영된 결과이며, 蘇東坡, 黃山谷의 훌륭한 점을 傳受하였다.
楊守敬은 서예가이며 서예 이론가이기도 했는데, 그의 저서『學書邇 言』에서는 우수한 書藝家가 반드시 갖춰야 할 素養인 ‘五要’를 주장하였 고, 필법에 있어서는 ‘八面出鋒論’과 ‘楷法源頭說’을 주장하였다.
특히, 그는 중국 정통 서예를 일본에 전하여 日本 書藝界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日本 書藝 近代化의 아버지’라 불린다.
또한 그는 中國의 서학사상과 서예를 學問的으로 정리하여 中國 書藝 史에 큰 業績을 남겼고, 韓國과 日本의 書學, 地理, 圖書 등에도 큰 족적 을 남겼다.
楊守敬의 著書로는,『激素飛淸閣評碑記』『楷法溯源』『激素飛淸閣評帖 碑』『楷書邇言』외에 83種이 있으며 40만권의 책을 소장한 藏書家였다.
본 연구는 예술치료 개념을 도입한 한국형 타로카드를 개발하고자 하 였다. 본 연구의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연구 범위는 다음과 같이 설 정 하였다.
I장에서는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에 대해 설명하고 연구문제의 범위와 방법에 대해 기술하였다.
II장에서는 우리나라 문화, 정서에 맞는 타로개발로 자국의 정체성 확 립과 더불어, 예술치료 현장에서 보조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예술치료 의 개념을 도입한 한국형 타로 카드 78장의 작품 개발의 제작 의도를 밝 혔다. 또한 제작 과정 및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메이저 카드에는 각 카드 마다 이미지를 설명하고 의미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마이너 카드는 이미 지와 간단한 색채와 4원소의 상징에 대해 언급하였다.
III장 결과에서는 한국형 타로가 타로 리딩 현장에서 사례에 제시되었 을 때의 반응에 대해 언급하였고 한국형 타로의 후속 연구에 대한 제언 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위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예술치료 개념을 도입한 한국형 타로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많은 서양식 타로의 발달 속에서 새로운 변화로 성장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 란다. 또한 한국형 타로가 한국인의 사고, 감정, 행동을 이해하고 내면의 표현 도구로 예술치료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보조 매체로서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