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1604년 통제영의 12공방이 설치된 이후 전통 미술활동 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 통제 영이 폐쇄되고 그 활동은 점점 쇠락하다가 1950년을 전후로 현 대미술활동과 함께 다시 부활하여 현대에 이르렀다. 본 논문 에서는 이 시기의 통영지역 미술활동을 살피고, 그 중, 공예, 한국화, 서양화를 대상으로 활동한 작가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활동상을 파악하여 그 구성원인 작가들의 사승관계를 정리하여 보았다. 이러한 결과는 통영미술의 특징과 통영전통미술의 현 대화 및 그 발달과정을 알 수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향후 통영 미술계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자료로 삼을 수 있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통영미술은 1604년 이후 통제영에 설치된 12공방에서 발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 통영미술이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19c무렵 12 공방이 활성화 되면서 진상품을 비롯한 여러 가지 군관민수용 품인 고급 미술품 제작이 다양한 장르로 생산, 전통미술의 자 리를 공고히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환경은 통영을 다른 도시와는 달리 종합적으로 예술을 발달할 수 있게 하는 초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셋, 통영미술의 현대화 과정은 둘로 나눈다면 그 하나는 신교 육의 실시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발발 후로 지리적 환경으로 인하여 많은 외부 예술인들이 통영에 자리를 잡으며 통영의 전 통미술과 현대미술의 융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 하나는 전 문작가의 출현으로 작품 제작과 전시회를 열어 통영 현대미술 발전의 자극제가 되었다. 넷, 전통미술에서 현대 미술로 이양되는 과정에서 사승관계가 형성되고. 통영미술은 전통을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를 수용, 체 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발달 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2015년 현재, 일부 화단에서 옻칠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형성하 는 과정에 있다. 이는 통영 전통미술을 계승발전 시키는 중대 한 작업으로 통영미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蘇軾은 중국 北宋시기의 문학가, 정치가, 사상가, 서예가이다. 현재 전해지는 그의 그림이 매우 적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畫史 에서 그의 존재를 거의 논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소식 의 畫學사상은 宋代이후의 畫壇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3부분으로 소식의 화학사상을 천명하였다. 첫째, 그는 화가에 대해 ‘人品’을 요구하였다. 그는 고아한 人格이 畫 道의 근본이라는 견해를 제기하고, 회화는 ‘技’에서 ‘道’로 나갈 수 있는 통로하고 천명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회화를 ‘技’에서 ‘道’로 한 단계 끌어 올려 文人畫가 정식으로 확립하는데 중요 한 공헌을 하였다. 둘째, 그는 화가에 대해 ‘涵養’을 요구하여 ‘士人畫’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하였다. 셋째, 그는 회화의 ‘意境’ 이 총체적인 주요사상이라는 것을 제기하였으니, 곧 ‘畫中有詩’ 라는 것이다. 이외에 필자는 明代胡應麟이 열거한 소식의 주요 친구들의 신분분석을 통해 소식의 친구들 중에 화가 혹은 화단과 밀접한 인물들이 50%를 초과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宋代에 출현한 주요 화학 저술은 대부분 소식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식이 畫史에서 지위가 견고한 것은 그가 회화기교가 뛰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가 문단에서 영수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화학사상이 문단에 광범위하게 영 향을 주어 화단에 깊이 침투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중국 문인화의 4개 요소는 ‘人品’, ‘涵養’, ‘意境’, ‘筆墨’인데, 그중에 앞의 3요소는 모두 송대에 이미 형성 된 것으로, 소식 및 그 학파가 이를 처음으로 제창하였다고 할 수 있다. 모종 의의 상에 소식은 중국 문인화 이론의 기초를 다졌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소식은 중국 문인 중에서 특수한 지위와 영향력이 있어 그의 문인화에 관한 이론이 신속하게 화 단의 주요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宋이래 ‘抒情寫意’, ‘筆恣墨韻’을 중시하는 문인화가 되어 魏晉이래 ‘尊神權’, ‘重教 化’, ‘重形似’, ‘勾勒填彩’의 院體風格을 타파하였다. 그 결과 중 국 전통회화예술의 풍격이 크게 전환하는 직접적인 계기를 마 련하였다.
본 연구는 양생(養生)에서 주요한 방법인 호흡법의 고찰을 통해 과거 선인들의 건강 인식과 실천을 살펴보고 현대적 의의 를 점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양생에 대한 개념과 선인들의 양생 인식을 시대 상황 속에서 살펴보았다. 양생 중 에서 호흡은 단순히 생명 유지만을 위한 수단이 아닌 건강관리 의 주요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호 흡의 정의와 작용부터 시작하여 역사적으로 호흡법을 실천한 인사들을 다루었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이 지배하여 정신적 가 치를 우위에 두었기에 호흡법을 통해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방 편으로 애용되었다. 특히 주자(朱子)를 신봉하였기에 그가 주장 한 ‘조식잠(調息箴)’은 사대부들 사이에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호흡법은 도가적 색채가 강한 양생인데, 이를 유가들이 적극 수용했다는 사실은 실용적인 이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그들의 탄력적 사고를 보여준다. 호흡법 중 ‘태식(胎息)’은 이들이 가장 중시한 것으로, 일찍이 복식호흡이 지닌 가치를 인식한 증거라 하겠다. 한편으로 ‘태식’은 인간이 자기 존재의 출발점으로 회 귀하려는 본성에 대한 갈망으로 성리학이 추구한 근본사상과 상통되었다. ‘태식’이 지닌 건강학적 가치는 오늘 날에도 여전 히 유효하며, 바쁜 현대인들에게 명상으로 숨 쉬고 있다. 문헌 에 나타난 선인들의 호흡은 그것이 일상이었음을 보여주며, 성 리학의 수양과 맞물려 장려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중국이 호흡방법에 치중하였던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호흡의 자세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호흡 양생법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사상과 종교를 초월한 유⦁불⦁선 이 융합된 동양학의 총체라 하겠다.
한자는 매우 복잡한 문자계통으로, 그 변화과정은 상당히 오 랜 여정을 지나왔다. 한자유형의 결구특징을 분석하고 각 유형 의 한자간 상호관계를 규명함은 물론 각 한자유형의 발생과 발 전의 논리순서를 고찰하고 한자발전사에서의 위치를 추론하였 으니, 이는 줄곧 중국 문자학연구에서 주요과제가 되었다. 이러 한 연구의 전개는 한자의 기원과 華夏文明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모두 중요한 의의가 있다. 漢代3家의 육서명칭에 대한 차이와 是非, 특히 허신의 육서 정의에 대한 曲直과 得失은 이후 약 1,800년 동안의 기나긴 논 쟁을 불려 일으켰고, 이로 인해 중국 문자학연구의 발전을 촉 진시켰다. 20세기에 이르러 唐蘭과 陳夢家는 전통적인 육서조 례의 속박을 타파하고 새로운 ‘三書’로 전통적인 육서이론을 대 체해야 한다고 제창하였다. 漢代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자의 결구방식에 관한 논쟁은 주로 육서의 성격과 조례 두 문제에 집중되었다. 따라서 본고 에서는 전통적인 육서와 새로운 삼서의 명칭에 대한 오류를 명 백하게 분별하고 그 義例의 편차를 규명하여 그 정의의 이견을 정리하고 三組六書의 조례를 새롭게 수립하여 합리적인 분류표 준을 확정하였다. 즉, 제1조는 ‘象物’과 ‘象事’로 ‘形符字’이다. 제 2조는 ‘轉義’와 ‘會意’로 ‘義符字’와 ‘意形兼用字’이다. 제3조는 ‘諧聲’과 ‘形聲’으로 ‘音符字’와 ‘音形兼用字’이다. 더욱 엄밀한 한자결구이론을 어떻게 설계하느냐 하는 문제는 지금의 문자학연구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공공예술이 도시문화에 끼치는 영향과 역할은 점점 두 드러지고 있다. 도시의 건설과 발전에 대한 역사적 발자취에서 보면, 공공예술은 총체적이며 부분적이고, 체계적이면서도 요소 적이고, 사회과학적이면서 인문과학적이다. 본 논문은 “시스템 이론”의 특징을 “공공예술 시스템이론”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한 것으로서, 도시가 현대화 되는 과정에 서 공공예술의 형태를 통하여 도시의 모습과 내용을 설명하고, 객관적인 “시스템 이론”의 특징을 이론적 근거로 삼았다. “일반시스템론”의 창시자인 Ludwig Von Bertalanffy (미국 국 적의 오스트리아 출신)이론의 장점(전체성, 관련성, 동태성, 시 서성, 목적성)을 도시공공예술 영역에 대입하여 본 논문 연구를 위한 이론적 기초로 하였다. 시스템 이론의 특징을 응용한 취지는, 공공예술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내외 도시 건설 중에 건축과 공공시 설에 속하는 공공예술을 분석을 해보면 방대하고 복잡한 도시 시스템은 크게 두 부분으로 귀납 되었다 하나는 ‘건축 시스템’ 이고, 다른 하나는 ‘공공예술 시스템’이다. 건축물을 제외한 공공시설은, 예술의 개발과 창작 행위를 통 해 이루어지며 이는 공공예술 시스템 중의 일부분이다. “도시건설순환시스템”의 생태환경, 인조환경, 인문환경 및 정 서환경을 “도시건설공공예술시스템이론”에 응용하여 더욱 전면 적이고 더욱 완전하게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도시 건설이 되고 자 한다.
허목許穆(1595(선조 28)∼1682(숙종 8)은 본관이 양천陽川, 자는 문보文甫·화보和甫등이고, 호는 미수眉叟〮.태령노인台嶺老人이 다. 허목은 당시 보기 드문 개성적인 자가풍의 전서를 활용해 많은 작품을 남김으로써 후인들이 그의 이런 전서를 두고 ‘미 전眉篆’이라고 칭하였으며, 전서로는 ‘동방제일’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그의 학문은 고학古學이고, 문장은 고문古文이며, 서예 는 고서古書라고 할 수 있다. 허목은 삼대치도三代治道의 이상향을 미전眉篆으로 표현하였 고, 삼대三代를 동경하며 그 때와 같은 태평성대가 실현되기를 기대하였다. 특히 자신이 만든 미전眉篆을 고집한 이유도 여기 에 있었다. 그러나 당색에 따라 그의 전서를 위전僞篆으로 폄 하하기도 하고,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 특히 경북지역 에 산재되어 있는 허목의 전서현판은 빼어난 조형성과 역사성 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예사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지금까지 상세히 연구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경상북도에 산재되어 있는 허목의 미전 으로 걸린 현판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서예사 자료보강에 일조하 고 ‘미전眉篆’의 예술적 가치를 되짚어 보는데 의미를 두었다. 허목의 경북지역 전서를 다루기에 앞서 우선 허목의 생애와 학 통을 검토하였다. 왜냐하면 삶과 학통은 한 사람의 학문성향과 예술환경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강 정구와 퇴계에 이르는 학통에 따라 경북지역 성리학자들과 교류가 있었고, 그 들의 서원이나 별당 혹은 사랑채에 허목의 미전이 걸리게 되었 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아울러 당색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었던 17세기 시대환경에 따라 동색同色의 선비들의 거소居所에 다수 의 미전이 걸렸다는 것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경북지 역 명가들의 서원, 사랑채, 별당에 걸린 허목의 전서현판의 내 용과 예술적 격조를 살펴봄으로써 그 동안 가려졌던 그의 예술 적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봉화의 충재 권벌의 별당에 걸린 <청암수석>현판은 미수의 절필작絶筆作으로 밝혀졌고, 미전의 최종예술성을 지닌 작품으 로 천진한 품격을 보여주어 주목되었다. 영천의 완귀 안증의 정자인 완귀정에 걸린 <완귀정>현판은 주변의 정경과 어울리 게 문자의 편방을 재구성하였고, 각 문자에 맞으면서 전체 장 법을 고려한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 안동 하회마을 서애 류성 룡의 종택에 걸린 <충효당>현판은 이 건물의 당호이며, 서애 의 유시遺詩[후세에 전하다]에서 강조한 충忠자와 효孝자를 넣 어서 만든 현판이다. 충과 효를 강조한 내용을 살리면서도 경 직되지 않고 변화를 모색한 필획미를 느낄 수 있다, 성주의 회 연서원은 미수의 스승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스승을 대하듯이 운필에서 멋과 변화를 줄여 절제되고 정제된 분위기 를 드러낸다. <옥설헌>현판의 옥[귀하게 여김]玉자에 좌우로 길게 드리워진 대칭획이 일품이며, 장법에 있어서도 안정과 대 칭을 중시한 점이 살펴진다. 이와 같이 미전眉篆이 유독 많이 남아있는 경북지역 허목의 전서현판을 통해 한국서예사의 자료발굴에 일조하고, 미전眉篆 의 예술성에 대해서도 접근해 보았다. 아울러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을 통해 한국서예의 새로운 면모를 개척한 허목에 대한 재 평가와 후속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첨단 기술, 네트워크 등의 발전과 지능기반 사회의 변화로 인 간형 로봇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 중에 있다. 특히 일상생활에 서 인간과 자연스럽게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인간 지향적인 개 인서비스 로봇에 대한 연구가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개인서비스 로봇 연구를 살펴보면 기반기술 개발에 치중한 정 부의 지원과 연구로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로봇의 기능이나 형태 등의 로봇 디자인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개인서비스 로봇 디자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 으로 하며, 이를 위해서 로봇의 시장 요구사항 분석, 로봇 시장 트렌드 분석, 소비자 인식 및 요구 분석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개인서비스 로봇이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기능 디 자인과 감성 디자인을 중심으로 개인서비스 로봇의 디자인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서 본 연구는 개 인서비스 로봇의 콘셉트, 기능, 콘텐츠, 외형 등을 디자인하거 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동양화에서 반복되는 주제인 ‘전통의 계승과 혁신’이란 측면에서 김농의 인물화 작품을 통해 전대 양식의 수용과 자기화 과정과 후대에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김농 인물화의 전대 양식의 수용과정을 이공린(李公麟) 을 연상하게 하는 백묘양식과 양해(梁楷)의 감필법(減筆法)과 묵법(墨法), 마화지(馬和之)의 난엽묘(蘭葉描), 곤잔(髡殘)의 도 상(圖象)의 영향으로 세 가지로 분류하여 고찰하고, 자기화 과 정을 거쳐 예체(隸體)를 연상시키는 서법적인 붓질을 이용하여 중국 불화 역사상 가장 독특한 구조를 가진 불상도인 <설색불 상도(設色佛像圖)>의 새로운 창작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특 히 김농의 <달마도>는 청초 개성파 화가인 곤잔의 영향을 받 아 제자 나빙(羅聘)을 거쳐 해상화파 화가인 오창석(吳昌碩)에 게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밝혔다. 인물화는 동서를 막론하고 대단히 오랜 역사적 전통을 지닌 장르이다. 그러하기에 인물화에 관한 조형적 경험과 이론 역시 대단히 폭 넓고 풍부하다. 개괄적으로 정리하자면 서구의 인물 화가 인물의 형태와 색채 등 외형적인 조건에 관심을 두는 것 이라면, 동양의 인물화는 대상이 되는 인물이 지니고 있는 내 적인 내용의 표출에 가치를 두는 것이라 정리할 수 있을 것이 다. 전통적인 동양화론으로서 전신(傳神)은 예술가의 창작개념 에 직접 관여하는 것보다 인물화 작품에 나타나는 정신적인 문 제를 중요시 한다. 그러나 현대미술로서 인물화는 예술가의 창 작주체가 강화되었기 때문에 전통적 전신의 개념과 뜻을 참고 하여 정신표현의 현대적으로 접근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본 논문 금농의 창작 작품 <설색불상도>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
본 논문은 중국 북송시대 화가이자 화론가인 곽희(郭熙, 1020?~1100?)의 『임천고치(林泉高致)』에 나타난 회화이론을 그의 대표작인 <조춘도(早春圖)>에 어떠한 방식으로 실천하였 는지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곽희는『임천고치』에서 송대까지 내려온 모든 산수화론과 기 법을 정리하여 산수화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중국 산수화의 역 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또한『임천고 치』는「산수훈(山水訓)」·「화의(畵意)」·「화결(畵訣)」·「화격 습유(畵格拾遺)」·「화제(畵題)」·「화기(畵記)」의 6편으로 나 누어 경영위치(經營位置)와 필묵(筆墨)의 용법기교(用法技巧) 등 산수화의 실제적 기법 뿐 만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표 현하는 산수 의경(意境)의 창조, 산수를 그릴 때 작가의 정신과 태도, 산수화의 가치와 의의까지 설명하여 높은 미학적 가치를 가진다. 또한 곽희의 이른 봄 산 계곡에 새벽안개 낀 경치를 담담하게 표현한 <조춘도>는 이상적인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현실화하고 산수의 이상경을 효과적으로 창출함으로써 자신의 예술사상을 충실하게 구현해낸 작품이다. <조춘도>는 산수의 구성요소와 각각의 소재들이 주객관계를 이루면서 유기적으로 능숙하게 다 루어져 이른 봄의 생동감과 산수 의경을 환상적으로 창조함으 로써 사의성(寫意性)을 실천한 좋은 예를 보여준다. 또한 산수 자연에 대한 원(遠)의 자각으로 생성된 삼원(三遠)의 이론을 전 개하여, 요산요수(樂山樂水)에 대한 욕구충족을 하고자 하는 사 람들에게 실제 산수에 방불한 이상적인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 주어 감상자로 하여금 정신적 추구를 만족시킬 수 있어 이상적 (理想的) 산수화를 창조하기 위한 기본적 요건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산수자연에 대한 원(遠)의 자각으로 생성된 삼원(三遠)의 이론을 전개하여 아름다운 산수와 그 속에 동화된 인간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이상적인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현 실화하고 아울러 산수의 이상경을 효과적으로 창출하여 그의 예 술사상을 충실하게 작품으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임천고치』에서 밝히고 있는 대상의 표현에 있어 필묵 (筆墨)의 운용이 충실히 실천되어 사실성(寫實性)을 수준 높게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은 지리적인 위치로 인하여 예로부터 문화의 교 류가 빈번하였다. 그 중 옻칠예술은 현재 전해지는 역사자료를 통하여 일본이 중국의 영향을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양국은 당대부터 본격적인 교류를 하였으며, 미술품의 종류와 재료의 쓰임면에서 양국은 밀접한 관계가 있 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일본 옻칠예술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일본 옻칠예술의 고유 양식인 ‘시 회’는 중국 한대이후 발달된 금을 이용한 기법을 토대로 발달 된 일본의 대표적인 장르인데 일본 무로마찌시대 이후, 그 정 교함이 최고조에 달할 때 중국의 옻칠장인들은 일본에 건너가 이를 학습하였고, 본국으로 돌아와 명청시대 발달된 금을 이용 한 많은 칠기들에 응용 하였다. 이는 중ㆍ일 양국간의 상호 영 향으로 옻칠예술의 발달관계를 알 수 있는 좋은 예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발달관계를 문헌과 유물을 통하여 밝 히었다.